이스라엘에는 ‘벧’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지명이 많습니다. ‘베들레헴, 벧세메스, 베다니, 베데스다’ 그리고 ‘벧엘’ 등 성경에 나오는 주요한 지명들에 ‘벧’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 ‘벧’은 ‘집’이라는 뜻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레헴’은 ‘떡’을 가리킵니다. 결국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입니다. 벧세메스라는 지명은 벧트와 쉐메스의 합성어입니다. ‘쉐메스’는 ‘태양’을 가리킵니다. 결국은 ‘태양의 집’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이 자주 방문하셨던 ‘베다니’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벧트’와 ‘아냐’라는 말의 합성어로 ‘아냐’는 슬픔을 가리킵니다. 결국 베다니는 슬픔의 집, 가난한 자의 집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친 연못이 ‘베데스다’입니다. 여기서도 ‘헤스다’는 ‘은혜’, ‘친절’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이란 뜻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루살렘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벧엘입니다. 벧엘 역시 ‘벧트’와 ‘엘’의 합성어인데 엘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벧엘은 곧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성경에는 벧엘과 관련된 사건들이 많습니다. 사사기 4:5에는 여자 사사인 드보라가 벧엘에서 살았다고 나옵니다. 또한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도 벧엘과 연관되어 등장합니다. 창세기 28:19에는 벧엘의 원래 이름이 ‘루스’라고 나오기도 합니다. 오늘날 ‘베이틴’이라고 불리는 벧엘은 예루살렘 북쪽 약 12마일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제단
  지금 ‘베이틴’이라는 아랍인 마을에는 성경의 유적지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단지 마을 끝 부분의 높은 언덕에 비잔틴 시대의 교회 유적이 조금 남아 있을 뿐입니다. 십자군 시대에는 이곳에 성벽을 쌓아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벧엘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곳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정착한 지역은 세겜 땅입니다. 하지만 얼마 후 벧엘로 장막을 옮기게 됩니다. 아마도 세겜이 임시 거처였다면 벧엘은 여러 해를 머물렀던 가나안 첫 거주지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벧엘에 머물던 그때 가나안 땅 전역에 기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 후 다시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도 아브라함이 벧엘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벧엘은 아브라함이 정착해서 살고 싶었던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벧엘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창12:8). 물론 세겜에서도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은 나오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기록은 벧엘에서 처음으로 나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기록은 창세기 4장에 처음으로 나옵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6). ‘비로서’라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으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공식적인 예배가 처음으로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 정해진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결국 벧엘은 아브라함이 가족들, 가솔들과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예배를 시작한 곳입니다.


   야곱의 돌베게
  벧엘 지역에는 ‘야곱의 꿈’이라는 푯말과 함께 야곱이 돌베게를 하고 잠을 자다가 천사가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하는 장면을 보았다는 장소가 있습니다. 물론 고증을 통해 확정된 그런 장소는 아닙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와는 상관 없이 벧엘에서 야곱이 그런 꿈을 꾸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야곱은 가나안 최남단 지역에 있는 브엘세바를 떠나 외삼촌 라반이 사는 밧단아람(하란)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겨우 집을 빠져 나온 야곱은 있는 힘을 다해 에서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는 약 60마일입니다. 야곱이 만약 낙타를 타고 갔다면 전속력을 다해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인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형 에서는 사냥에 능한 사람입니다. 동물을 쫓는데 전문가인 것입니다. 사실 야곱을 잡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것입니다. 야곱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자 기진맥진한 채 돌 위에 쓰러져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 불안한 밤, 단 하루를 견디기도 어려웠던 그 밤 하나님은 야곱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십니다. 꿈 속에서 사닥다리를 보게 됩니다. 자기가 있는 곳에서 하늘까지 연결된 사닥다리였습니다. 천사가 그 사닥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늘 꼭대기에 하나님이 서 계신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이런 반전이 어디에 있습니까? 두려움이 찬란한 소망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극심한 불안이 넘치는 감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자욱한 안개가 걷히고 너무도 선명한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
  야곱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너무도 선명한 하나님의 은혜에 이런 대답을 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28:17). 그는 자기가 베게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삼고 그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성지순례를 하게 되면 기사들이 벧엘에 사람들을 내려 놓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이곳이 벧엘지역입니다. 오늘 당신들이 여기에서 돌베게를 하고 누우면 하늘에서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아무 것도 없는 높은 언덕배기에 위치한 들판일뿐입니다. 미국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황량한 들판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들판이 ‘야곱의 꿈’이라고 불리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야곱이 베게로 삼았다가 성전 기둥이 되게 한 돌베게는 후세 사람들에 의해 스코틀랜드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왕의 대관식 의자 밑에 보관되어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벧엘로 돌아가라
  벧엘에 대한 성경적 사건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20년 동안 하란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가족들과 재산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가 가족들과 처음 정착한 곳이 세겜인 것입니다. 당시 세겜은 문명이 발달한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야곱의 외동딸 디나가 세겜 추장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것 자체도 엄청난 사건이고 야곱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야곱의 아들인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족속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는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딸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아픔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 가족들이 가나안 땅에 더 이상 살 수 없는 중차대한 일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 전체와 전쟁을 벌일 수도 있었습니다. 야곱 가족이 모두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이 사실을 듣고는 얼마나 절망했는 지 모릅니다. 심지어 아들들에게 “너희는 나를 죽이는 자’라고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그때 절망 중에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20년 전 야곱이 꿈을 꾸었던 바로 그 벧엘입니다.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해서 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야곱이 까마득히 잊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에 벧엘에서 은혜를 받았을 때 그는 하나님과 약속을 한 것이 있습니다. 가나안에 다시 돌아오게 되면 제일 먼저 벧엘에서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릴 것이며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벧엘을 야곱의 삶에 영적인 센터로 만들고 믿음의 가정을 세우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 약속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곳, 화려한 곳, 물질적 풍요가 있는 곳 세겜에 정착하고 만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벧엘은 보잘 것 없는 곳이었습니다. 돌들만 무성한 황량한 들판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도 별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기에 좋은 곳이 우리가 갈 곳이 아닙니다. 비록 초라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리라도 은혜가 있는 자리라면 그곳이 우리가 갈 곳입니다. 야곱은 ‘벧엘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듣자마자 가족들을 데리고 벧엘로 갑니다. 다시 은혜의 자리, 약속의 자리로 간 것입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염려했던, 걱정했던 일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그 어느 누구도 야곱을 추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막은 것입니다. 은혜를 먼저 쫓으면 하나님이 우리 삶을 지키십니다. 벧엘은 참 은혜가 넘치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