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2008년 성지 순례를 처음 다녀오면서 받은 은혜가 너무 컸습니다. 순례 기간 중 가장 먼저 2박 3일 지내면서 돌아본 곳이 이집트와 광야였습니다. 출애굽과 광야 생활 이야기는 성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성경 66권 전체의 가장 핵심적인 배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자녀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출애굽 사건입니다. 역사를 알아야 현재를 보는 눈을 정확히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알면서 단지 그림만 그려보던 광야의 모습을 직접 보았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홍해와 마라의 쓴물 그리고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올라갔던 시내산 등 가는 곳곳마다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같이 동행을 했던 목사님들이 시내산 정상에서 함께 불렀던 찬양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500년전 그 당시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국 목사님들이 하도 감동적으로 찬양을 하니 다른 각 나라에서 온 순례객들이 경이로운 눈으로 경청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간 어떻게 그런 뜨꺼운 태양 아래에서 살았는지도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12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그늘이 될만한 나무 하나 없는 뜨거운 불사막이었기 때문입니다. 광야 체험을 한다고 버스를 세우고 광야로 나간 우리들은 단 5분도 밖에서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구름이 태양을 가려주면서 그늘이 만들어지자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비로서 ‘구름 기둥’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저마다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동은 광야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입성을 눈 앞에 두고 있었던 모압평야에서 내려다 본 가나안 땅은 경이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 40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그땅을 바라보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얼마나 감동으로 가득찼을까? 를 생각하며 우리도 감격해했던 생각이 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그저 성 주변을 돌기만 했는데 무너져 내렸던 여리고 성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깨닫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갈릴리 호수는 단지 아름답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던 겟세마네 동산 등 성지는 그야말로 은혜 그 자체였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받은 감동을 되새기며 평생 잊지 않기 위해서 시작했던 것이 바로 성지순례 칼럼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순례를 다녀온 후 교회에서 11주에 걸쳐 성지 세미나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것이 벌써 9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빛과 소금이 창간된 지가 6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전부터 쓰기 시작한 칼럼을 빛과 소금 창간호부터 빠지지 않고 내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교인 뿐만 아니라 덴버에 있는 다른 교민들도 성지순례 칼럼을 빠짐 없이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개신교인들 외에 카톨릭 교인들과 안식교 교인들까지 애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안식교의 장로님이라는 어느 분은 저에게 자주 전화를 해오기도 했습니다. 성지칼럼을 통해 받은 은혜를 나누고 영어로 번역을 해서 출간을 하면 책을 판매하는 것은 본인이 어느 정도 책임까지 지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신학이 다르고 노선이 다르다고 해도 성지에 관한 것은 어느 교회 교단이든 같기 때문입니다.


성지 칼럼을 애독하던 분들 중에 몇 년전부터 성지를 직접 가보자는 이야기들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성지는 평생 한 번은 꼭 가고 싶은데 가는 방법도 잘 모르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지 순례는 여행사마다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10여일이 넘는 기간 동안 모르는 분들과 같이 간다는 것도 어색하고 내키지가 않아 많은 분들이 주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프로그램이 좋은 지도 잘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에 실행에 옮기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덴버에서 이미 잘 알고 있는 분들이 모여서 같이 간다면 똑 가겠다고 하는 분들이 하나 둘 늘어났습니다. 급기야 성지 칼럼을 내보내고 있는 빛과 소금지에 문의가 계속 왔다고 합니다. 신문 편집장이 저에게 부탁을 해왔습니다. 성지순례를 요청하는 분들이 많아 제가 한 번 추진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물어온 것입니다. 저희 교우 중에서도 저에게 직접 관심을 보여온 분들도 많습니다. 담임목사인 제가 추진을 하면 꼭 참여하겠다는 언질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랜 기도와 고민끝에 성지순례를 한 번 추진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제가 조금 주저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성지순례는 좋은 것이고 꼭 필요하지만 추진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처음에 예정했던 것과 실제 상황이 차이가 많이 날 때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돈 문제는 아주 민감합니다. 단체 여행을 하다보면 처음 생각한 것도 다르게 비용이 자꾸 발생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여행의 기쁨이 사라지고 불만만 싹트기도 합니다. 목사인 제가 이런 일에 관여가 되면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빛과 소금이 모든 행정과 재정부분은 다 책임지고 진행해 준다는 조건을 달았던 것입니다. 저는 일체 재정부분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한 여행사에는 처음 계획했던 비용외에는 일체 아무 것도 더 추가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고 계획을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처음에는 성지 순례 광고를 한 달 이상은 하기로 했습니다. 30명을 모집하는 것이 쉬워 보이기는 해도 막상 직접 신청을 할 때 주저할 일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성지순례는 광고를 한 지 한 주만에 마감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덴버 교우들 사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전체 참가 인원은 31명입니다. 그 중 저희 교인들이 17명으로 절반이 넘습니다.


성지순례는 단순한 해외 여행이 아닙니다. 일반 여행은 좋은 지역을 가서 구경을 하고 즐기다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쁘게 살던 일상 생활을 멈추고 새로운 세계를 맛본다는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난 다음에는 일정기간 생각이 나고 추억거리가 된 후에 잊혀지게 됩니다. 그러나 성지는 다릅니다. 다녀온 후에 더 많은 생각이 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늘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 말씀 속에 성지는 항상 배경으로 나옵니다. 성경을 직접 읽으면서도 그 모습을 떠올린다는 것은 은혜 중에 은혜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평생 잊지 못하는 것이 성지순례의 체험입니다. 그러기에 성지순례는 여행이 아니라 공부입니다. 저는 이번 성지순례 참가자들과 함께 7주간의 성지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성지에 대한 역사 공부부터 시작해서 이번에 방문하는 곳들을 미리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지 공부는 곧 성경공부입니다. 성경을 좀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만들어 줍니다.


순례는 영어로 ‘Pilgrimage’라고 합니다. 여행 혹은 관광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큰 흥미거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면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그곳으로 가느냐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간다면 나도 가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순례는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가느냐에 더 중점을 두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예루살렘을 다녀왔어도 마음 가짐에 따라서 한 사람은 관광으로 끝나고 다른 사람은 순례를 다녀온 것일 수 있습니다. 순례는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만나려는 여행입니다. 구약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1년에 반드시 세차례 절기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유월절, 칠칠절 그리고 장막절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나라고 했던 것입니다. 장기간의 여행이었기에 남자들만 가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순례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시편 120편부터 134편을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순례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 불렀던 찬송입니다. 그들은 순례를 통해 단순히 예루살렘 도시를 보고 성전을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들이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현실의 아픔과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마음의 큰 위로와 힘이었습니다. 반드시 성지를 가는 것만이 순례가 아닙니다. 본향을 향해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기는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순례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