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pilgrimage)는 일반적인 여행이나 관광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Pilgrimage라는 영어 단어는 ‘낯선’(foreign) 혹은 ‘타국의’(abroad)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처음 이 단어가 사용될 때는 ‘멀고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을 순례라고 불렀습니다. 옛날에 멀고 낯선 곳을 여행하는 이유는 둘 중 하나였습니다. 첫 번째는 장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라는 도로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나는 실크를 유럽에 팔기위해서 만들어진 길입니다. 요르단에는 ‘왕의 도로’(King’s Way’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 성지순례 중 요르단에서 가장 많이 다녔던 길입니다. 이집트와 요르단 그리고 이스라엘이 만나는 에일랏에서부터 요르단 전 지역을 관통해서 시리아의 다메섹(다마스커스)까지 올라가는 길입니다. 지금도 2차선의 폭이 별로 넓지 않는 길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폭 1.5m정도의 좁은 길이었습니다. 주로 낙타에 물건을 싣고 다니는 거상들이 다녔던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500년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을 들어가기 직전 모압평지를 갈 때도 바로 이 길을 따라 올라간 것입니다. 또 다른 멀고 낯선 땅을 여행하는 이유는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우르를 떠나 가나안까지 오는 길과 같은 의미를 갖는 여행입니다. 야곱 역시 20년간 떠나 있던 하란을 나와 가나안으로 왔습니다. 이미 하란에서 모든 삶의 기반을 잡았습니다. 자녀들 역시 하란에서 태어난 하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반드시 가나안으로 가야만 한다는 뜻이 있었습니다. 결국 가족들과 우양을 이끌고 500마일이 넘는 순례길에 오르게 됩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400년 만에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200만이 넘는 백성들이 여행을 같이 떠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일반적인 여행의 기쁨과 기대만을 가지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입니다. 처음에는 장사나 종교적인 목적 두 가지 모두를 위해 사용하던 ‘순례’라는 말이 점차 종교적인 목적으로 먼 곳을 여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리가 된 것입니다.


성지순례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꿈입니다. 평생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 말씀 구절구절의 역사와 배경을 가진 땅을 밟아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저와 함께 순례 여행에 오른 분들 역시 오랫동안 벼르고 별렸던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기회도 별로 없고 여건도 녹록치가 않아 그동안 생각만 막연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30여명 순례팀들의 평균 연령이 거의 70에 가깝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나아졌지만 여전히 순례는 많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미국 역시 성지와는 먼 곳에 떨어져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사는 덴버에서 출발해서 가려면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이번에도 무려 비행기 시간만 19시간이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쳐보면 30시간 이상이 되어서야 성지에 도착을 했습니다. 적잖은 피로를 동반하는 여행이었습니다. 또한 일정이 그렇게 여유있게 짜여져 있지 않습니다. 한 곳이라도 더 방문을 하려면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 합니다. 하루에 걷는 양만 해도 만 오천보에서 2만보에 가깝습니다. 건강이 여의지 않는 분들에게는 매일 매일이 벅찰 정도입니다. 저는 출발하기 6개월전부터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를 했습니다. 하루에 반드시 만보를 걸어야만 성지순례를 감당할 수 있다고 소개를 했던 것입니다. 이번 순례 기간 중 삼일 째 되던 날 에서의 후손 에돔이 왕국을 이루었던 페트라를 다녀왔습니다. 요르단에서 가장 유명하고 순례객들이 1년 내내 찾는 곳이 바로 페트라입니다. 구약 성경 오바댜서의 직접적 배경이 되는 곳입니다. 입구에서 페트라의 중심부까지가 무려 2.7마일입니다. 왕복을 하게 되면 5.4마일을 걸어야만 합니다. 물론 걸어가면서도 하늘 높이 솟아있는 붉은 바위의 위용을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바위 사이 사이를 뚫고 지나가면 고대 에돔 왕국의 찬란했던 도시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도시 중심부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라야 합니다. 그곳을 다녀오는 시간만 해도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저희 팀에서도 20여분이 도전을 했다가 결국 10명만 정상에 다녀왔습니다. 에돔 왕국의 모습을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것은 또 다른 감동이었습니다. 성지순례는 10여일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만이 아닙니다. 이미 신청을 하는 1년 전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순례의 전통은 각 종교마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슬렘들에게 성지순례는 구원을 얻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다섯 가지 규율가운데 하나입니다. 평생 한 번은 순례를 해야만 합니다. 회교 최고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절기 때가 되면 수백만이 모이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유대인들 역시 예루살렘 순례는 구약시대때부터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1년에 세 번 모든 남자들은 예루살렘을 방문할 것을 권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도 멀리 살던 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디아스포라로 이스라엘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에게는 일 년에 한 번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평생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기에 성지순례에 대한 갈망은 그 어떤 인생의 소원보다도 깊고 진했습니다. 시편 84편은 이 같은 순례의 갈망을 표현한 시입니다. 시온의 성전, 그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한 시인의 열망은 아주 뜨거웠습니다. 5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다” ‘마음이 이미 순례길에 올랐다’는 표현이 바로 순례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입니다. 몸은 아직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고는 싶지만 형편과 여건이 맞지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힘이 들어 계획조차도 세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빠지고 나면 일을 할 사람이 없어 마음뿐인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사실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형편은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순례에 대한 열망만은 모든 사람들이 동일했습니다.


왜 이렇게 예루살렘 순례를 갈망했을까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순례로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과의 만남의 축복과 감동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간직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10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곳이 더 좋습니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하나님 집의 문지기가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순례자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평생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순례길을 마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떠나는 발길이 너무 아쉽고 잘 떨어지가 않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성전을 제 집 삼아 날아다니는 참새와 제비였습니다. 시인은 성전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사는 제비가 부러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산다면 문지기가 아니라 제비나 참새가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사모했던 것입니다.


순례는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여행이 아니라 순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시키시는 분입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성지순례를 준비하던 한 분이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성지순례가 기대가 되면서 솔직히 두렵습니다. 순례를 다녀오고 나면 뭔가 달라져야 할 텐데…. 제 남편이나 자녀들이 저를 보고 ‘순례를 다녀와도 별 소용이 없네’라고 말할까 겁이 납니다. 정말 변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변한 것이 없을까 겁이 납니다.” 순례의 의미를 제대로 아시는 분입니다. 성지 순례는 누구나 소원하는 것이지만 또한 일말의 두려움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다시 제자리면 어떻게 하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간절하게 우리를 갈망하십니다. 우리를 더 가까이서 만나시려고 준비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내가 소원한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변화는 저절로 일어납니다. 순례길이 감사한 것은 오직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 분의 발자취를 느끼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자연스레 세상에 대한 욕심도 고집도 내려놓게 됩니다. 그 자체가 변화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마음으로 평상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인생 자체가 결국은 순례길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매일 우리는 순례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본향을 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