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겜의 지금 이름은 ‘나블로스’(Nablus)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헬라어의 Neo-polis(새로운 도시)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적 중심지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조성되기 시작한 때는 다윗시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이전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정복한 후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로 발전했던 곳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세겜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후, 북 이스라엘의 중심 도시로서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세겜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도로와 동과 서를 연결하는 도로가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합니다. 또한 세겜은 다른 지역에 비해 물이 많고 그로 인하여 땅이 비옥하여 경작하기 좋은 농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겜은 역사적, 신앙적 분기점을 만들었던 도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정복을 시작하면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했던 대로 전 백성들이 세겜에 모여 거룩한 언약식을 갖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으로써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새롭게 다짐한 언약의 도시가 바로 세겜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가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머물렀던 곳이 바로 세겜입니다. 세겜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40마일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벧엘, 동쪽으로는 아이성이 있는 곳입니다. 일반적으로 지금의 터어키 지역인 하란에서 가나안을 오고자 할 때는 이스라엘 북쪽으로 내려오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지역은 산세가 험하고 위험한 계곡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요르단 북쪽 지역을 통과해서 비교적 완만한 평야 지대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하란에서 내려온 아브라함 또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머물던 야곱이 모두 요르단을 거쳐 가나안 중부지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족들을 데리고 요르단 지역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서는 처음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이미 하란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가나안 땅에서 다시 듣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아브라함을 크게 고무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바로 그곳 세겜 땅에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물론 그가 오랜 머물렀던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언약을 받고 제단을 쌓았던 세겜 땅은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들에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와 정착한 곳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지금의 터어키 지역인 밧단 아람으로 가게 됩니다. 이 지역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형제들, 친척들이 살고 있던 곳입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머물면서 큰 가족을 이룬 야곱이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 그가 가족들과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 바로 세겜입니다. 물론 지역적으로 요르단에서 가까워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겜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큰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나 뿐인 딸 디나가 세겜 족속 추장의 아들에 의해 강간을 당하고 맙니다.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야곱의 아들들인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족속을 속인 후 모든 남자들을 죽이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던 곳이 바로 세겜지역입니다. 야곱이 그 소식을 듣고는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야곱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년간 형 에서의 분노의 그늘에 가려 늘 두려움 속에 살았던 야곱입니다. 이제는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에서 그나마 에서와의 관계가 호전되어 마음을 놓았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사방이 다 적이며 더 이상 가나안에서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실망과 절망에 휩싸여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은 벧엘로 가라고 하십니다.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던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그곳,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까지 닿았는데 그곳에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했던 그곳 그 벧엘로 가라고 하십니다. 야곱이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나안에 돌아오면 그 벧엘에서 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굳은 맹세를 했건만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야곱은 세겜을 떠나 벧엘로 가게 됩니다. 그가 믿음의 방향을 바로 잡자 하나님은 그가 가는 길을 평탄케 하셨습니다. 아무도 야곱을 뒤따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비록 야곱에게는 실패와 가슴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지만 하나님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셨던 간증의 도시가 바로 세겜인 것입니다.


   요셉의 뼈가 묻힌 곳
  야곱은 130세에 애굽에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18년을 더 살다가 148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아들이 애굽 최고의 실권을 쥐고 있던 총리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아버지 야곱의 피라미드를 만들어 줄 수도 있었습니다. 피라미드는 왕만이 묻히던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왕족들 뿐만 아니라 귀족들도 자기들의 신분에 걸맞게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야곱의 피라미드는 왕들에 버금갈 정도의 규모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기가 죽거든 반드시 가나안 땅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해 줄 것을 요셉에게 당부하게 됩니다. 아브라함, 사라, 이삭, 리브가가 모두 묻혀있는 믿음의 뿌리가 바로 막벨라 굴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 요셉에게 유언을 합니다.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창48:22). 아브라함이 처음 제단을 쌓았던 곳, 자신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를 받았던 곳 그 세겜에 야곱의 가슴 속에서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세겜 땅을 요셉 자손에게 주겠다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요셉 역시 아버지의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나중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에 돌아가게 될 때 자기 해골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옮겨 달라는 유언을 합니다. 성경에는 요셉이 세겜에 그 뼈를 묻어달라는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야곱에게 들은 그 약속을 분명 자손들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400여년이 흐른 후 출애굽을 하면서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가 세겜 땅에 묻게 된 것입니다. 요셉 자손들은 야곱의 약속대로 세겜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지금도 세겜에는 그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언약의 산: 그리심산, 에발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이 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네 번에 걸친 설교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만 반드시 그곳에서 지켜야 할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축복과 약속의 땅이라 하더라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땅에서 내쳐질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계명을 지켜야만 가나안 땅에서의 축복이 자손대대로 임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즉시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그 말씀을 지키겠다는 언약식을 해야만 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27장에서 바로 세겜 땅에 있는 그리심산과 에발산을 거명하였습니다. 12지파 중에 6지파는 그리심산에 서고, 나머지 6지파는 에발산에 서게 했습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해발 약 900미터 정도의 높은 산이며 세겜 도시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두 산 사이의 거리가 불과 2마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심산에 있는 백성들은 약속의 말씀을 지키면 축복을 받는다는 말씀에 큰 소리로 ‘아멘, 아멘’ 외쳐야만 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이 낭독되면 에발산 쪽에 서 있던 6지파의 사람들도 역시 ‘아멘, 아멘’이라고 외쳐야만 했습니다. 이 모세의 명령을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정복하고 곧이어 아이성을 점령한 후 온 백성들을 인도해서 세겜을 가서 수행하게 됩니다. 여호수아 8장에는 모세가 명령한 그대로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6지파씩을 세운 후 하나님 말씀을 낭독하는 헌신의 언약식을 갖는 장면이 웅장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 언약식이 있은 후부터 지금까지 무려 350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두 산에는 일어났습니다. 그리심산은 나무가 우거지고 산이 아름다운 반면 에발산은 나무가 없고 돌들만 무성한 산으로 변모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호수아 당시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축복의 말씀이 있던 산은 나무와 꽃들 조차도 축복을 받은 반면 저주의 말씀이 있던 곳은 나무도 잘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많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