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는 벧엘 북동쪽 10마일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주변에는 세겜, 사마리아와 더불어 사마리아 산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형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의 가장 중심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곳입니다. 사마리아 산지는 유대 산지보다 높지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가 내리는 지역입니다. 해발 약 2천피트에 위치한 평원으로 농사를 하기에 적절한 비옥한 토지를 갖추고 있습니다. 실로가 성경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에서 유명해지게 된 것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던 시기에 성막을 그곳에다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성경에는 실로라는 말이 참 많이 등장합니다. 가나안 정복부터 사사시대에 이르는 약 400년간 실로는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시절에도 40년간 모든 백성들의 삶은 성막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진을 세울 때도 성막을 먼저 중앙에 세우고 세 지파씩 동서남북으로 포진하였습니다. 민족적인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늘 지도자들이 성막에 모여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에 세워진 후에도 1년에 세차례 절기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으로 모여야만 했습니다. 늘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이런 성막과 성전의 역사를 그대로 이러갔던 곳이 바로 실로인 것입니다. 실로가 이스라엘 역사나 성경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그렇게 컸음에도 지금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마음에서 거의 잊혀져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가나안 정복과 실로
  창세기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던(창49:10) 실로가 성경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은 가나안 정복 전쟁때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와 정복 전쟁을 거의 마무리하게 됩니다. 물론 여전히 구석 구석에 남아 있는 모든 가나안 백성들을 쫓아내지는 못했지만 중부, 남부, 북부에서 벌어진 세 번의 큰 전투에서 승리를 한 후 땅을 지파들에게 분배하게 되었습니다. 요단 동쪽의 땅이 우선 르우벤 지파,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돌아갔습니다. 요단 서쪽에서는 남쪽 지역을 유다 지파가 가장 먼저 할당을 받습니다. 곧이어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이 가나안 중부지역을 제비뽑아 차지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벧엘, 실로, 사마리아 등 사마리아 산지가 에브라임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 반 지파는 에브라임이 차지한 지역부터 위쪽으로 거의 갈릴리 지역에 이르는 방대한 중북부 땅을 받게 되었습니다. 1차 땅 분배는 여기서 멈추게 됩니다. 남은 지역들을 모두 정복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도 얻기를 머뭇거리는 태도가 못마땅했던 여호수아는 모든 백성들은 실로에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다 성막을 세웠습니다(수18:1). 그곳에서 결단의 예배를 드린 후 여호수아는 아직도 땅을 분배받지 못한 7지파에게 세 사람씩 대표를 선정해서 가나안 땅을 그려가지고 오도록 명령을 합니다. 유다와 에브라임 그리고 므낫세가 차지한 땅을 제외한 7지역의 그림을 그려오게 한 후 그것을 놓고 제비를 뽑아 12지파에 대한 땅 분배를 완성하게 됩니다. 가나안 정복과 분배의 대역사를 마치게 했던 곳이 바로 실로입니다. 그때부터 실로는 하나님의 집, 언약궤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중심지가 될 뿐 아니라 행정 수도로서의 역할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렀던 곳
  성막이 세워진 실로는 매일 제사가 드려지던 곳이었습니다. 제사는 곧 하나님을 만나는 종교적 의례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늘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렀습니다. 광야에서 처음으로 성막이 세워질 때도 구름이 성막에 덮혔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다(출40:34)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진하지 않을 때에도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식을 할 때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해서 제사장들조차도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대하7:2). 또한 성전 위에 하나님이 불을 내리시는 것을 백성들이 목격하고 찬양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기도 했습니다. 천막으로 만든 성막이든 대리석으로 만든 대규모의 성전이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곳에 머물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그곳이 어디이든 영광으로 가득차게 되어 있습니다. 실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그곳에 있고 늘 제사가 드려지는 곳이라면 하나님은 그곳을 영광으로 가득 채워셨을 것입니다. 또한 일년에 세 차례 절기 때마다 모든 백성들이 실로에 모였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한 직후이기에 얼마나 그 예배가 감동스러웠을까요? 그 작은 도시에 수십만 명이 운집해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웅장했을까요?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로는 비록 작은 도시이지만 그곳에 있는 돌 하나도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했을 것입니다.


   사무엘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보냈던 곳
  구약에서 예수님을 대신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삼중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왕과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의 역할을 말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 세 직분을 감당할 사람을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세 직분을 동시에 갖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삼중직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진정한 왕이십니다. 곧 우리의 주인이신 것입니다. 또한 선지자로서 하나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주님 스스로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가서 용서를 받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일반 제사장처럼 매일 제사를 드렸던 것은 아닙니다. 단 한 번에 영원한 제사로써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주님의 이 세 직분을 가진 사역때문에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 이런 삼중직을 가진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사무엘인 것입니다. 그는 사사시대의 마지막 사사였습니다. 사사는 곧 왕을 가리킵니다. 또한 사무엘은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동시에 그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를 형성하는데 국부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사무엘입니다. 그가 젖을 떼면서 부모를 떠나 자라나게 된 곳이 바로 실로입니다. 바로 그곳에 제사장 엘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을 했던 한나는 사무엘을 얻게 되자 곧 그 약속을 실천했습니다. 그는 실로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법을 배웠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방종과 불순종의 길을 가고 있는지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실로 하나님의 집에서 민족을 구원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할 꿈과 이상을 만들어간 것입니다. 지금도 실로에는 그 당시 성막터가 있습니다. 비록 건물을 하나도 없고 돌무더기만 남아 있지만 사무엘이 믿음과 꿈을 키워 민족을 살린 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광이 떠나다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찼던 곳이라도 불순종과 죄악이 자리를 잡으면 그 영광은 떠나고 맙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리던 솔로몬 성전도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졌던 역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실로가 그 전조현상이 일어난 곳입니다. 실로의 쇠락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면 솔로몬 성전의 몰락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불레셋은 한창 전쟁중이었습니다. 아벡 전투에서 패하게 된 이스라엘은 언약궤만 전쟁터로 가져오면 승리하게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언약궤를 앞세운 두 번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대패를 하게 됩니다. 더 이상 일어설 힘 조차도 상실하고 맙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언약궤를 불레셋에게 빼앗겨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전쟁을 이끌었던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전쟁에서 죽고맙니다. 전쟁 참패 소식을 들은 엘리 역시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죽어가면서 자신의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영광이 떠났다”(삼상4:21)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언약궤를 빼앗긴 상황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400년간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렀던 실로의 몰락까지도 암시해 주고 있는 말입니다. 불레셋에 빼앗긴 언약궤는 그 후 다시는 실로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불레셋 도시들을 전전한 언약궤는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기는 합니다. 언약궤를 감당할 수 없었던 불레셋은 이스라엘 도시 벧세메스로 보냈으며, 다시 기약여아림으로 옮겨졌습니다. 나중 다윗이 그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예루살렘의 영광시대가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영광이 머무를 때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지금 실로에는 성막 모양을 재현한 ‘미시칸 실로 회당’이 그때의 영광을 아련히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