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사무엘 존슨이 무더운 여름날 장터 한쪽에서 몇 시간을 서 있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슬프고 고뇌에 찬 표정으로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근처에 있던 한 제자가 스승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무슨 슬픈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사무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사실은 오래전 우리 아버지께서 이 자리에서 헌책방을 하셨다네. 그 날도 아버지는 장사를 하기 위해 일어나셨지만, 몸이 안 좋으셨는지 나에게 하루만 대신 장사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으셨었지.” 제자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은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사무엘 존슨은 제자의 질문을 받고도 한참을 눈물만 흘리다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우리 집이 시장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것도 창피한데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냐면서 거절했다네. 그런데 아버지가 너무 무리하셨던 탓인지 그날 이후 몸이 약해지셔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고 말았다네. 오늘은 그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네.”
“그때 그 일을 했더라면…..” “그러지 말았더라면…..” 일평생 살아가면서 한 번쯤 후회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실망하거나 아쉬워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닙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을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후회할 일들은 대개 지금 당장은 느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시간이 지나가야 아쉬움이 생기고 회한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10년 뒤에도 정말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려면 지금부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10년 뒤에는 반드시 후회하게 될 7가지 행동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꿈이 없는 것입니다. 사무엘 울만이 78세에 쓴 ‘청춘’이라는 명시가 있습니다. 그 시에 이런 내용들이 있습니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날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결국 꿈이 없으면 스무 살 청년이라도 결코 청춘이 아닙니다. 하지만 70, 80이 되었어도 꿈이 있다면 늘 푸른 청춘인 것입니다. 꿈은 우리를 젊게 해줍니다. 늘 꿈을 꾸는 인생을 살아가면 몸은 늙어가도 마음은 절대 늙지 않습니다. 결국 10년 후에 우리 인생이 지금보다 초라해 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합니다.


두 번째 후회하게 될 일은 부정적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은 처음에는 흥미롭습니다. 귀를 기울여 듣게 되어 있습니다. 같이 맞장구까지 치게 되면 말하는 사람과 어느 새 친한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결국 남에 대한 비난을 했던 사람은 또 다시 나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댈 날이 곧 올 것입니다. 남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은 그 사람의 성품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나에게 말한 그 친구를 잃게 됩니다. 또한 같이 비난을 나눈 대상인 친구도 잃게 됩니다. 10명의 정탐꾼이 했던 부정적인 보고가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빠르게 전염되었는지를 보십시오. 불과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백성들은 목놓아 울게 됩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고사하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의견이 봇물을 이루고 맙니다. 결국 그 일 때문에 이스라엘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온 날 수대로 하루에 1년씩 40년을 고달픈 광야 생활을 합니다. 부정적인 사람들과 함께 하면 10년 후에 반드시 부정적인 열매를 따게 될 것입니다.


10년 후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세 번째 행동은 변화와 성장을 피하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의 과거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현재 행동을 보면 됩니다. 또한 그 사람의 미래를 보고 싶다면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 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결코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 법입니다. 하루 하루가 쌓여서 1년이 만들어지고, 1년 2년이 쌓여서 10년의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성을 발전시키려면 분명 말씀을 보는 시간을 늘여야 합니다. 기도의 시간도 내용도 많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단지 새벽기도에 나올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만 생각합니다. 마음만 있지 다른 행동은 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보세요. 식당에서 누구를 만날 때 기다리는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DMV에 가도 최소한 30분은 기다립니다. 오일 교환을 하러 가서도 1시간은 기다릴 때가 많습니다. 그 짜투리 시간에만 읽는 성경을 한 번 세팅해 보세요. 스마트폰에도 좋고 작은 성경 하나를 차에 넣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운동을 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동네를 걸을 때도 기도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눈을 감고 기도하라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작은 투자들이 쌓여서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힘들면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상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때마다 실망하고 포기한다면 이룰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업이나 회사들이 직원을 채용할 때 반드시 묻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큰 난관이나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그것을 극복했는지를 말하고 그 결과 인생의 어떤 교훈을 얻게 되었는 지를 기술하시오”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 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힘든 것을 포기할 마음을 가지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은 처음부터 맡지를 않으려고 합니다. 쉬운 일만 하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편안하고 즐거울 지 모릅니다. 그러나 10년 후에는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헤쳐 나온 경험이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것을 그때 깨닫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는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쁘게 살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졀코 문제될 일이 없습니다. 단지 너무 조바심을 내는 것이 문제입니다. 쉴 때는 쉬어야 하는데 쉬지를 못합니다. 깨끗이 잊고 쉬고 나면 마음도 몸도 새로워집니다. 하지만 여행지에 가서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행을 하는 것도 쉬는 것도 아닙니다. 사소한 일에 걱정 근심을 달고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뼈는 시멘튼 건물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쉴 새 없이 칼슘이 뼈에서 빠져 나가기도 하고 들어와 쌓이기도 하는 대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걱정이나 근심 같은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뼈 속의 칼슘이 녹게 됩니다. 또한 뼈가 칼슘을 많이 빼앗기면 뼈가 약해져서 쉽게 골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근심이 뼈를 마르게 한다는 하나님 말씀은 사실인 것입니다. 이 말씀이 기록된 것은 호르몬이나 칼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고대시대였으니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는 다 주께 맡기고 늘 감사하며 사는 것이 후회하지 않을 행동인 것입니다.


여섯 번째 시간을 낭비하면 10년 후에는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시간은 많은 것 같아도 지나고 나면 얼마나 짧은 지 모릅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빠르게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시간입니다. 벤쟈민 프랭클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을 사랑한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왜냐하면 인생이란 시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 자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면서 시간을 낭비한다면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오늘 한 시간, 이 하루가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인생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후회할 것은 나태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떤 일에 실패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태하거나 게으른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유람시키러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성령님을 우리 안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나태하면 성령님이 근심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맡겨주신 사명을 향해 달려갈 때 가장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0년 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오늘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 지를 세심히 관찰하고 고칠 것을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