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온’은 ‘언덕위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북서쪽으로 약 5마일 지점에 있는 현재의 지명은 ‘에즈 집’입니다. 해발 2,370피트로서 산악지대의 구릉지에 세워진 이 성읍이 성경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여호수아에 의한 중부 가나안 정복 전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후 기브온은 성경 역사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태양이 머무르고, 달이 머무는 놀라운 역사의 현장이 바로 기브온이었습니다. 기브온은 하나님의 전무후무한 능력의 역사가 있었던 현장입니다.


   속아서 맺은 언약
  여리고와 아이성의 몰락을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한 기브온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어느 누구도 살려두지 않는다는 이스라엘의 방침을 들은 기브온 사람들은 속임수를 써서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게 됩니다. 그들은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했습니다. 아이성에서 불과 10마일도 떨어져 있지 않은 성읍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행색을 꾸몄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에 곰팡이 난 음식과 헤어진 가죽부대는 누가 보아도 먼 길을 여행온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신중하고 겸손한 지도자입니다. 하지만 기브온 사람들의 속임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그들의 외양만 보고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들의 도에 지나친 칭찬에 속고 만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명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승승장구하는 대단한 민족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전쟁이었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브온은 하나님보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그렇게 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칭찬에 속아 넘어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화친을 해도 되는 지를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브온의 거짓말은 사흘이 되지 못해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은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잘못 처리한 것에 대해 불평을 터트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을 무효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사용한방법은 옳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간 약속은 신성함이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지켜야만 했습니다.


   태양이 머물렀던 기브온 전투
  예루살렘 왕은 비롯한 헤브론 왕, 야르뭇 왕, 라기스 왕 그리고 에글론 왕이 연합을 해서 기브온을 치러 왔습니다.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한 것을 알고 그들을 정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원래는 기브온을 비롯한 아모리 족속들은 서로 연합을 해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기로 이미 조약을 맺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브온이 배신을 하자 기브온부터 치자고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기브온은 즉시로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비록 속아서 화친을 하기는 했어도 이미 동맹국이 된 이스라엘은 기브온을 돕기 위해 대군을 보내게 됩니다. 아모리 연합군과 이스라엘은 기브온 지역에서 대규모의 접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과정은 석연치 않았지만 하나님은 이 상황을 단지 기브온을 돕는 일로 끝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 가운데 대세를 확정짓는 대 승리를 이 전쟁을 통해서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미 여호수아에게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아모리 연합군은 크게 패하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형은 잘 모릅니다. 한 번도 와본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모리 사람들은 대대로 살았던 곳이 바로 기브온 지역입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전쟁을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비장한 기도를 합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수10:12).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이미 그렇게 될 것을 선포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날 여호수아의 기도를 말 그대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태양이 멈추고 달이 멈추는 일이 이스라엘이 아모리 연합군을 전멸하기까지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기도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났던 그 현장, 그 자리는 지금도 기브온 언덕 위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윗 집안과 사울 집안의 기브온 전투
  사울이 죽자 유다 지파에서는 다윗을 즉시 왕으로 추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울의 자손들이 남아 있었고, 그들을 따르는 북쪽 지파들은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이스라엘 2대 왕으로 옹립하게 됩니다. 한 나라에 두 명의 왕이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이스보셋의 군대 장관 아브넬은 다윗을 물리치고 남쪽 지방까지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출정을 했습니다. 이에 다윗도 응전을 하기 위해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 아사헬이 군대를 이끌고 나가 싸우게 했습니다. 이들 두 군대가 마주친 곳이 바로 기브온 못 근처였습니다. 한 편은 못 이쪽에 그리고 다른 편은 못 저쪽에 자리를 잡고 대치하게 됩니다. 그때 아브넬이 군사를 전체가 싸워서 많은 사상자를 내기보다는 각 편의 장수들을 내보내 겨루자고 제의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아브넬 쪽에서는 베냐민 장수 출신 12명이 나서고 요압 쪽에서는 다윗의 부하 장수 12명이 맞서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저마다 상대방의 머리를 붙잡고 칼로 옆구리를 찔러 함께 쓰러졌는데 그래서 그곳을 ‘옆구리 벌판’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 옆구리 벌판이 바로 기브온인 것입니다. 결국 아브넬의 장수들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크게 패배한 후 도주를 하게 됩니다. 요압의 동생 아사헬은 이스보셋의 군대 장관 아브넬을 죽이기 위해 그를 뒤쫓아 갔습니다. 아브넬은 아사헬이 자기의 상대가 안 될 줄 알고 다른 장수를 잡으라고 설득했지만 아사헬은 이를 거부하고 계속 아브넬을 뒤쫓아갔습니다. 결국 아브넬에 의해 아사헬은 목숨을 잃고 맙니다. 나중 아브넬이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주기 위해 찾아왔을 때 다윗 몰래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
  솔로몬이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3대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성전이 아직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기브온에는 큰 산당이 있었습니다. 산당은 우상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지만 성전이 없던 시대에는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도 많았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도 성전이전에는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곤 했는데 그중 기브온 산당이 가장 크고 웅장하였습니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그 유명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3년 간 매일 제사를 드린 것인지, 아니면 천 마리의 양을 제사로 드린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섬기려는 뜨거운 마음을 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정성스런 제사를 얼마나 기뻐하셨으면 그 날 밤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솔로몬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주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솔로몬이 구한 것은 부도, 명예도, 원수들의 정복도 아닌 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 지혜가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겸손과 잘 섬기려는 마음에 감동이 되신 하나님은 그가 구하지 않은 부도, 명예도, 영광도 모두 솔로몬에게 주셨습니다. 왕들 가운데 솔로몬 같은 왕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축복을 베푸셨습니다. 그 축복의 현장이 바로 기브온입니다. 지금은 그 기브온 산당터가 발굴이 되어 기브온을 찾는 순례객들에게 큰 감동과 은혜를 주고 있습니다.


   기브온 못
  1833년 미국의 지리학자 겸 성경학자인 에드워드 로빈슨이 고대 도시 기브온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고증을 통해 추정된 현재의 ‘엘 집’을 찾아가게 됩니다. 처음에는 다른 거의 모든 학자들은 현재의 ‘엘 집’이 고대 기브온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포기하지 않고 기브온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발굴을 시도합니다. 그가 생존한 동안에는 사실 별 성과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한 결과 그의 후대 학자들에게서 큰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임스 프리차드라는 학자가 1956-1962년까지 ‘엡 집’에서 고대 유물을 찾은 끝에 기브온이라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31개의 항아리 손잡이를 발굴하게 됩니다. 그 항아리들이 발견된 곳이 바로 기브온 못이었습니다. 직경이 37피트이며 깊이가 82피트에 달하는 이 못은 원래 물 저장소였습니다. 가나안은 워낙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물 저장소를 만들어 주거지 주위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물 근원을 찾아서 물 저장소까지 물을 끌어들였던 것입니다. 이 기브온 못이 또한 다윗의 군대와 이스보셋의 군대가 접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단지 기브온이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가서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