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남부 지역에 ‘로스 알토스 힐(Los Altos Hills)’이라는 꽃마을이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나무들도 우거져 있고 각양각색의 꽃들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매일 많은 관광객들의 발 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로스 알토스 힐이 이런 아름다운 마을로 알려지기까지는 한 사람의 수고와 따뜻한 마음 때문입니다. 이 마을에는 존 핸드라는 우편 배달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마을 부근의 약 50마일을 매일 오가면서 우편 배달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매일 같은 길은 20년 째 오고 가면서 인생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지만 직업에 대한 무료함도 찾아왔습니다. 일하기가 싫었습니다. 매일 먼지가 이는 이 길을 자전거로 외롭게 달려야 하는 자신이 처량해 보였습니다. 결국 이렇게 자기 인생은 끝나는가에 대한 실망만이 몰려왔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존은 마을로 이어진 거리에서 모래먼지가 뿌옇게 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자피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그것이 매일 반복된다고 해서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그래, 아름다운 마음으로 내 일을 하자!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름답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그는 다음날 부터 주머니에 들꽃 씨앗을 넣어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짬짬히 그 꽃씨들을 먼지만 일어나는 거리에 뿌렸습니다. 그 일은 그가 50여 마일을 오가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면서 그는 그가 뿌린 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늘 궁금해서 유심히 살펴보곤 했습니다. 어느 새 그의 우편 배달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채워졌습니다. 새로 돋아나는 꽃들을 보면서 콧 노래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가 다니던 길 양쪽에는 노랑, 빨강, 초록의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났고 싱싱하게 자라났습니다. 해마다 이른 봄에는 봄꽃들이 활짝 피어났고, 여름에는 싱그런 여름 꽃들이, 가을에는 그윽한 자태를 뽐내는 가을 꽃들이 쉬지 않고 피어났습니다. 그 꽃들을 바라보면서 존은 더 이상 자기의 인생이 무료하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존으로 인해 로스 알토스 힐의 마을 사람들 역시 꽃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도 자기 집 주변에 꽃씨를 뿌렸습니다. 어느샌가 마을 전체라 꽃으로 뒤덮이게 된 것입니다. 결국 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로스 알토스 힐의 꽃마을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사람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서 택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70%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적성에도 맞지 않고 일이 즐겁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회만 주어지면 지금 하는 일을 바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을 바꾼다고 새로워지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지금 하기 싫은 것에 대한 정당성을 스스로 갖기 위해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즐겁지 않은 사람은 다른 일을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을 좋아할까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왕 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그 일에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즐거움을 게속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한 때 ‘번개 철가방’이라는 단어가 신문 지상에 자주 오르 내린 적이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앞에서 짜장면을 배달하는 조태훈이라는 젊은이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학력이라고는 중학교 졸업이 전부인 사람입니다. 그의 성장 과정은 어둡고 우울하기만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주위의 눈을 의식하며 숨죽이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가 다섯 살 때 부모가 이혼을 했습니다. 어머니도 재가를 했고, 아버지도 새 어머니를 맞아들였습니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할 나이에 눈치를 보며 살아야만 한 것입니다. 그는 결국 할머니와 단둘이서 살게 됩니다. 그러다 17세때 친구와 함께 무작정 가출을 했습니다. 서울에만 가면 뭔가 일자리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입니다. 그는 명동의 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배달하는 일을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내성적이고 상처를 쉽게 받는 그에게 배달일 조차도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음식을 담은 철가방을 드는 요령조차 잘 몰라서 길을 가면서 국물을 흘리는 일도 많았습니다. 국물 없이 가져다 준 음식을 받고 온갖 야단을 다 맞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음식점 주인으로부터도 수모를 겪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는 어렵게 그 중국집에서 6년을 버텨냈습니다. 을지로의 음식점에서 3년을 더 버텨 9년 만에 악착 같이 2,800만원을 저금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음식점을 하나 내려는 기대만으로 돈을 모아 간 것입니다. 하지만 음식점을 같이 하자는 친척에게 투자를 했다가 하루아침에 그 돈을 다 날리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친척이 진 빚까지 떠 안게 되는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을 맞게 되었습니다.


몇 달간의 방황 끝에 그는 건설현장의 막 노동 일을 했습니다. 다른 한식집 종업원으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나흘 간격으로 계속 옮겨 다니기만 했습니다. 그는 다시 원래 하던 중국집 음식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안암동에 있는 고대 앞 중국집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 것입니다. 물고기가 다시 물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그는 짜장면 배달을 사명으로 알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왕 하는 것이라면 남들보다 더 잘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엉뚱한 배달 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고대 독문과 사무실에서 시킨 짜장면을 학생회 사무실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학생들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음식점 주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독문과 사무실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야단을 치기보다는 오히려 잘 됐다고 바로 옆 방에 있는 심리학과 학생실로 대신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곧바로 그 방에 들어가 짜장면을 꺼내는데 거기 있던 학생들 모두 갑자기 얼이 빠진 사람처럼 그를 쳐다 보았습니다. 사실은 몇 초 전에 한 명이 음식을 주문하러 공중전화가 있는 곳으로 나갔는데 그 학생이 돌아오기도 전에 조태훈씨가 짜장면을 갖고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학생들 모두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날로 바로 ‘번개’라는 소문이 학교 전체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번개 철가방’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그 이후의 그의 행동입니다.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음식을 시키면 만사를 제쳐주고 달려갔습니다. 번개의 전설을 실제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의 모습도 변신을 거듭했습니다. 선글라스에 해병대 군복을 입고는 ‘번개’라고 새긴 소형 플래카드에 빨간 삼각깃발까지 휘날리며 고대 일대를 누볐습니다. 인사 하나도 남달랐습니다. 짜장면 한 그릇을 가져다 주면서도 그는 다른 배달원과는 차별을 기했습니다. 만나는 학생들에게 “수강신청은 했냐? MT는 다녀왔냐? 이번 시위때 누가 붙들려갔다는데 면회는 가보았냐? 등등 학생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질문은 기본이었습니다. 한문학과에 가면 “하루라도 짜장면을 안 먹으면 죽는다”를 4자 성어로 해보라는 퀴즈를 내고는 탕수육을 상품으로 걸기도 했습니다. 철학과에 가서는 “왜 제군은 짜장면을 시켰을까? 왜 인간은 배가 고플 수 밖에 없는 건가?” 등 끝도 없는 질문을 퍼부으며 학생들과 가까워졌습니다. 한때 한보비리로 온 사회가 들끓을 때는 “철가방 번개가 고려대 모 교수로부터 800원 상당의 뇌물을 받고 그에 대한 대사로 타 교수실보다 먼저 배달을 해주는 등의 특혜를 베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등 신문기사를 패러디해 대자보를 붙인 적도 있었습니다.


조태훈씨는 점점 안암동의 명물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연전때는 학생회의 초청을 받아 식전행사때 모토싸이클을 타고 학생들을 사열하듯 운동장을 한바뀌 돌면서 학생들의 연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그의 철저한 직업의식을 지켜본 고대 어느 교수의 제안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소문은 고대를 넘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습니다. 하루에도 몇 군데씩 전국을 무대로 초청강연을 하는 유명 강사가 된 것입니다. 그는 현재 전국 23개 체인망을 가진 번개반점 사장이자 이름도 기나긴 ‘번개외식경영컨설팅연구소’의 소장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사랑하고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자 그에게 찾아온 결과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사실 짜장면 배달도 우습게 볼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일종의 영업이지요. 하다못해 유치장에서부터 장관실까지 철가방이 배달 안가는데가 없어요.” 그러므로 그는 음식을 배달할 때 무심코 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최대한 정성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느 짜장면 배달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관입니다. 짜장면 배달원들은 백이면 백 모두 다 언젠가는 이 일을 때려치우리라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언젠가는 최고의 배달원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언젠가 그만두겠다는 생각보다는 최선을 다해 그 일을 주신 분께 영광을 돌리자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