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가 쓴 ‘삶의 의미를 찾아서’는 그를 20세기를 빛낸 작가의 반열에 올려주었습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책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는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나온 일로 인해 더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죽음의 감옥에서 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책 출판에 대한 꿈 때문입니다. 프랭클은 이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에 책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출판은 해보지도 못한 채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원고를 보호하기 위해 옷을 뜯어서 그 안에서 넣고 누비기 시작했습니다. 그 옷을 입고 수용소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결국 간수에게 그 옷은 발각이 되었습니다. 생명 같은 책 원고가 그 자리에서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는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일까지 생겨났습니다. 수용소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부터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장티푸스에 걸린 사람이라면 단 하루도 살려두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프랭클은 고열로 신음하면서도 주변에 있는 종이조각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종이에다 기억나는 대로 책을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간이 무려 3년이 넘었습니다. 그에게는 장티푸스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주변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공포와 두려움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책의 내용을 잊어먹기 전에 한 페이지라도 더 쓰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쓰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출판의 꿈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는 늘 삶의 의지가 얼굴에서 뿜어져 나왔습니다.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그를 간수들은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 독일이 연합군에게 항복함으로 2차 대전에 종식이 되었습니다. 프랭클은 기적적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나왔습니다. 그는 나오자마자 그렇게 꿈꾸던 책을 출판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삶의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어려움도 꿈이 있는 사람을 막지는 못합니다. 환경이나 여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꿈이 없으면 홍해는 절대 건널 수 없는 바다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가나안이라는 꿈이 있는 모세와 백성들에게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울에게 골리앗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슴속에 하나님이라는 꿈을 가진 다윗에게는 물맷돌 하나만 가지고도 넘어뜨릴 수 있는 허풍쟁이에 불과했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펼쳐나갈 길을 찾습니다. 결국 그 꿈에 주변 사람들이 동조하기 시작합니다.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방해하는 일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장애를 넘어서 그 꿈이 이루어질 때 그 꿈은 모든 사람들에게 크나큰 혜택을 주게 됩니다. 꿈은 세 단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꿈은 아픈 가슴에서 싹이 트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수산 궁에 살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최고로 성공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사람이었습니다. 포로 출신으로 가장 성공했고 잘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스라엘을 다녀온 몇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로부터 이스라엘의 비참한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 날부터 잠을 자지 못합니다. 주저앉아서 며칠 동안을 울었습니다.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큰 슬픔의 표현은 곡기를 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소식에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는 결국 3차 포로귀환을 주도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영국에 밥 겔도프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1984년 그는 집에 돌아와 우연히 TV를 틀었습니다. BBC 방송에서 이디오피아의 가난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먹지 못해서 수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을 생각할 때 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아픈 마음으로 노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먹이라”(Feed the World)라는 곡이었습니다. 그 노래는 순식간에 영국 음반 시장에서 1위를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곧이어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기 위한 대 공연을 계획했습니다. 수많은 유명가수들이 이 일에 동참을 했습니다. 곧이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We are the World"(우리는 하나의 세상)이라는 곡을 만들어 모든 가수들이 같이 불렀습니다. 1985년 런던의 웸블던 스타디움과 필라델피아의 JFK 스타디움에서 대 공연을 열었습니다. 몇 년 동안의 노력과 수고는 이디오피아의 수 십 만 명을 살릴 수 있는 기금을 조성할 수 있었습니다. 밥 겔도프는 그 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라가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가난과 싸우기 위한 공연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아픈 마음이 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두 번째 꿈은 회개를 통해 깊은 뿌리를 내립니다. 느헤미야는 가슴만 아파하지 않았습니다. 고향에서 온 사람을 통해서 들은 이스라엘의 처참한 상황이 죄 때문이라는 것을 통감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이 어떠한 경우에라도 회개하면 용서를 하십니다. 그러나 죄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죄는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철저하게 회개가 되어야 합니다. 잘못은 인정해야지 둘러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이들의 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 살아본 적도 없고 그들과 함께 죄를 지은 적도 없습니다. 그런대도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했다”고 통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와 잘못을 지적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내가 잘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본성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이 무엇일까요? ‘미안하다’는 말입니다.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이 말을 죽어도 못합니다. 그래서 변명하기 시작합니다. 핑계를 대기 시작합니다.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인정해야 할 때도 ‘부덕의 소치다’ ‘부적절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부적절한 관계다’ 애매모호한 말을 합니다. 잘못을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회개 기도를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느헤미야의 꿈은 뿌리를 깊이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 마음이 불편한 것, 답답한 것은 남의 잘못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을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할 일이 생기는 법입니다.


  마지막으로 꿈은 내가 앞장설 때 이루어집니다. 느헤미야는 아픈 가슴을 안고 죄를 회개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달라진 것입니다. 왕이 그의 수척해진 얼굴을 보고 관심을 보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언제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기도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느헤미야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기도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서 누구를 보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 아무도 일할 사람이 없느냐고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 일을 할 사람인지를 찾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얼마든 지 예루살렘의 자세한 형편을 알아볼 수 있는 지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당연히 일을 할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보내도록 왕에게 요청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성벽을 건축하기 위해서 자기가 가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 마음에 소원을 품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실 때는 그 마음에 소원부터 주십니다. 그래야 일을 하면서도 열정도 있고, 감사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시키실 때는 마음에 소원부터 주십니다. 그 소원이 처음에는 불평으로도 나오고 답답함을 느끼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일도 불평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느헤미야처럼 가슴이 아픈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하겠다는 결심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에게는 성벽 재건이 최종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꿈은 또 다른 꿈을 만들어 내는 법입니다. 아픈 마음으로 기도했던 4개월 동안 그의 가슴은 더 타올랐습니다.  그에게 더 큰 꿈들을 갖게 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라. 그런 다음 당신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것처럼 일하라” 아픈 가슴으로 회개하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모든 책임과 사명이 나에게 있는 것처럼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도 처음에는 꿈이 성벽 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도과 결심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백성들의 예배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삶의 비젼과 꿈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믿음과 용기가 있는 사람들로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가진 꿈은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꿈을 크게 가졌습니다. 그 꿈을 위해 자기가 헌신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그때 느헤미야를 통해 놀라운 꿈이 역사 속에 찬란히 나타났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