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을 앞둔 이맘때면 각종 매체들이 단골로 다루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 날 가족들이 먹을 맛있고 색다른 음식을 만드는 법을 소개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추수감사절 음식을 살 안 찌면서 먹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오늘 교회에서 점심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서 일주일 내내 우리 식탁이 아주 풍성할 것입니다. 하지만 1621년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서 처음 가진 추수감사 모임은 먹는 잔치가 아니었습니다. 1620년 12월 엄동설한에 청교도들은 플리머츠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미국은 풍요의 땅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미 몇 년에 걸친 흉작으로 그 지역에 먹을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미국에 온 첫 해 거처할 오두막 집보다 무덤을 7배나 더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메이플라워에 함께 올랐던 102명 중 절반이나 되는 49명이 첫 해 겨울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남은 53명이 맞이한 첫 추수에 그들은 감격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가진 것이 없었을 때 청교도들은 감사의 전통을 만든 것입니다.


  그들의 식탁에는 물 한 잔과 조개 몇 개일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감사만큼은 얼마나 풍성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바다에 저 넘치는 물고기떼들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옥수수 몇 알갱이를 놓고도 감사는 넘쳐났습니다. “지금은 비록 보이지 않지만 이 땅 속에 감추어진 수많은 보물들로 인해 감사를 드립니다.” 식탁을 대할 때마다 청교도들이 했던 기도내용입니다. 그 후로 청교도들에게 집집마다 감사의 전통이 생겨났습니다. 추수 감사절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옥수수 알 5개를 빈 접시에 올려 놓습니다. 가족들이 한 사람씩 옥수수 한 알갱이를 집어 듭니다. 그리고는 차례대로 1년 동안 감사했던 일들을 나누었습니다. 옥수수 5알갱이로 한끼를 먹었던 선조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하지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청교도 선조들에 비하면 우리 삶은 풍족하고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추수감사절에 다윗이 절대 잊지 말고 감사해야할 은혜 다섯 가지를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시편 103편에 그것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첫 번째 잊어서는 안 되는 은혜는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다윗은 선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한 사람입니다. 정직하고 의로운 길만을 고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죄를 완전히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 죄에 넘어지자 죄는 그를 종으로 삼아버렸습니다. 죄가 이끄는 대로 그는 갔습니다. 밧세바를 범하는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한 순간의 죄가 아닙니다. 여러 달을 죄에 끌려간 결과입니다. 죄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죄는 점점 그 자리를 넓혀갑니다.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더니 우리 마음과 생각을 점령해 버립니다. 다윗 같이 경건한 사람도 죄에게 점령당하고 만 것입니다. 죄는 절대 어느 단계에서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고 감추라고 속삭입니다. 감추기만 하면 죄가 없어질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죄까지 저지른 것입니다. 물론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세상은 모르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죄가 드러나자 다윗은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하고 만 것입니다. 다윗은 죄를 깨닫게 되자 얼마나 회개하면서 통회했는지 모릅니다.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남들보다 그렇게 선한 체 했던 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자기의 행동이 모두 가증스러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회개를 기뻐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용서를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던 것입니다. 평생에 걸친 다윗의 경건한 삶은 바로 여기에서 왔습니다.


  두 번째 잊어서는 안 되는 은혜는 우리 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아프지 않게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날씨만 추워지면 감기 몸살이 찾아옵니다. 만성적인 피로감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전에는 하루만 푹 자고 나면 거뜬했는데 지금은 몸이 전혀 다르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약봉지를 끼고 살기도 합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큰 병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암은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집 건너 한 사람이 암에 걸릴 정도입니다. 정신적 감기라고 말하는 우울증은 어떻습니까? 미국 사람들의 20%가 우울증 환자라고 분류되고 있습니다. 병 하나가 나았다고 병이 완전히 떠난 것도 아닙니다. 또 다른 병이 이미 그 옆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 병을 고치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몸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체질을 가장 정확이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의 병을 고쳐주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우리 질병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 잊어서는 안 되는 은혜는 우리를 인생의 고비에서 건지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여러 번의 고비가 찾아옵니다. 저희 가정에는 아이가 셋이 있습니다. 첫째 아이에게도 교통사고가 크게 난 적이 있습니다. 둘째 아이는 집에 불을 냈습니다. 자기 몸 여러 곳에 화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셋째 아이도 커다란 교통사고를 일으켰습니다. 아이들에게 일이 생길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립니다. 전화가 오면 긴장부터 됩니다. 아이들은 좋을 일로는 별로 전화하지 않습니다. 전화를 하지 않던 아이가 전화를 하면 두 가지 경우입니다. 돈이 떨어졌으니 돈을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사고가 나면 전화합니다. 두 번 다 부모로서는 받고 싶지 않은 전화입니다. 다윗은 이런 고비들을 수도 없이 맞이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을 잡기 위해 파놓은 함정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도대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은 무엇을 말할까요?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당당히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을 고비에서 건지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를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건지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큰 사고를 피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운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내 판단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까지 인도해 오신 것입니다.


  네 번째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은혜는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신 것입니다. ‘인자’는 사랑이며 ‘긍휼’은 하나님의 자비를 말합니다. ‘관을 씌운다’는 것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드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할 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실수하고 넘어졌어도 하나님은 자비의 손길을 거두시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시고야 말 것입니다. 다윗을 왕으로 기름을 부으신 것은 어린 소년 시절입니다. 그것도 8 아들 가운데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기라성같이 건장한 형들에 비하면 보잘것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무엘이 아들을 다 불러오라고 할 때 다윗만큼은 부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무엘도 첫째 엘리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체도 우람했고 총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외모에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급하게 불려온 다윗에게 하나님은 기름을 붓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처음부터 다윗에게 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몇 년 후 불레셋과 전쟁이 벌어집니다. 적장인 골리앗을 이길 사람은 이스라엘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로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의 실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의 마음입니다. 그것만 보시고 그를 높이 올리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은혜는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소원이 있고 기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소원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좋은 것입니다. 내가 소원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부유한 것을 소원했는데 부유해서 하나님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건강하기를 소원했습니다. 하지만 건강해서 죄를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면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여야 합니다. 왕궁에 들어가서 장차 왕이 될 수업을 받아야 합니다. 학문도, 예법도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목동일 때보다 더 험한 인생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가 기대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누구에게 잘못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온갖 핍박과 수모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분명히 소원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누가 그런 어려움을 기대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의 수업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다윗을 통해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갖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입니다. 다윗의 이 은혜를 잊지 않는 다섯 가지 감사가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