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경지에 이른 한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임종시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20대에 나는 세상을 바꾸어 보려고 열심히 기도했고 열심히 뛰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40대가 지나 돌아다보니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나와 가까운 이웃조차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이웃들을 변화시키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내 나이 70줄에 들어 뒤돌아보니 내 이웃들마저도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내 마음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어느 날 내 마음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때서야 내 이웃을 변화시키고 나아가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진리를 좀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의 마음을 먼저 열 때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자신을 먼저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의 문은 꼭꼭 닫아둔 채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자기의 마음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기 마음 밭이 어떤 밭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 길 가 밭입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밭의 사이사이에는 아주 좁고 길다란 길이 나 있습니다. 이 길은 농부들이 씨를 심거나 거름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길입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농부들이 이 길로 다니기 때문에 이 길은 단단하게 굳어져 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씨들은 바로 이 길가에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길가에 떨어진 씨는 얼마 가지 않아서 새들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이 새들을 성경은 마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마귀가 이 씨를 빼앗아 가는 것일까요? 여기서 씨는 하나님 말씀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영원한 생명이 들어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죄를 깨닫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영원히 멸망 받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됩니다. 영원한 하늘나라가 우리를 위해 예비되었다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그냥 우리 마음속에 심겨지게 하겠습니까? 마귀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빼앗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서 충격을 받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형식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는 출석해서 예배를 드리기는 했지만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대하면서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했는데, 설교를 수없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을까? 어떻게 마음에 아무런 감동이나 느낌도 없이 이 자리에 앉아만 있을까?” 그는 어느 날 자기의 마음속에 떨어지는 말씀의 씨를 빼앗아 가는 것이 마귀라는 사실 앞에 놀랬습니다. 지금까지는 피곤해서 말씀이 안 들어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마귀가 내 마음속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간다면, 그래서 내가 말씀에 대한 안목이 없어져서 영적인 소경으로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이라면 분명 자신은 악마에게 속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깨달은 존 번연의 말씀을 듣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진지하게 말씀 앞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결국 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감옥에 갇혀도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핍박도 그의 믿음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감옥에서 성경 다음으로 유명한 책인 천로역정을 쓰게 된 것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은 굳어진 마음, 딱딱한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씨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서 불행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두 번째는 바위 밭입니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밭에 떨어졌습니다. 씨가 떨어지자마자 그 밭은 즉시 흙 속으로 씨를 받아들였습니다. 새들이 아무리 기회를 보고 있어도 그 씨를 빼앗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씨는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곧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불과 땅 속 2-3인치 깊이에 바위가 깔려있었습니다. 더 이상 뿌리를 깊이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뿌리는 약해졌습니다. 습기를 빨아드릴 힘이 없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그 식물은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상태가 바로 바위 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 삶에 다가오는 시험과 어려움은 우리를 약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을 통해서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뿌리가 깊은 사람은 누가 물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땅속의 물을 빨아들입니다. 그럴수록 뿌리도 줄기도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엘살바도르의 한 병원 입원실에 표범이 침입을 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평소에는 한 발자국도 혼자 힘으로는 움직이지 못하던 중환자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표범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어느 환자는 2층에서 뛰어내렸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표범이 사라진 후 병원으로 다시 돌아온 환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 속에서 말씀의 뿌리를 더 든든히 내리실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든 일이 생겼다고 말씀 듣는 것을 중단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말씀을 더 강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세 번째 가시 나무 밭입니다. 농부가 뿌린 씨앗 가운데 어떤 씨는 가시나무가 뒤엉켜 있는 밭에 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밭은 땅도 아주 부드러웠습니다. 금방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새들도 와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땅 속에 바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뿌리도 깊이 내렸습니다. 날마다 쑥쑥 잘 자랐습니다. 그런데 얼마만큼 자란 다음에는 더 이상 자랄 수가 없었습니다. 가시가 자라는 것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가시는 염려와 세상 재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생애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신앙에서 떠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상처를 받아도 자기 신앙은 유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막혀버리고 맙니다. 조금만 앞으로 나가면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바로 그 순간에 주저앉습니다. 내가 지금 봉사하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정해진 선이 있습니다. 이 정도만 신앙생활을 해도 남들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생각을 합니다.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못하겠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봉사도 섬김도 해야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항상 최소한 것만 해 놓고 의무감을 벗으려고 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너무 염려가 많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염려는 내 것만을 너무 챙기는 데서 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하던 일을 내려놓지를 못합니다. 내 것은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하는 또 하나의 장애물은 일락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재미를 말합니다. 물론 아무런 재미없이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아주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가 아니라 그 재미를 위해서 목숨을 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재미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재미 때문에 일하는 것에 게을러져서는 안 됩니다. 재미 때문에 신앙의 성장이 멈추어져서 안 됩니다. 재미는 재미에서 끝나야 합니다. 염려와 재리와 일락을 넘어서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밭입니다. 뿌리도 아주 잘 내렸습니다. 결실을 방해하는 어떤 장애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농사를 지을 때 보통 8배에서 10배의 결실이면 아주 잘된 농사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므로 30, 60, 100배의 결실이라고 하는 것은 대 풍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밭은 착하고 좋은 마음의 소유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 인내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는데 어떤 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힘든 일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문제점을 드러내고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착하고 좋은 마음은 그 문제는 내가 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서로간에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그래 참 형편없는 사람들이네” 그 말을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분들이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상처를 치유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주변 사람들이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분들이 성장하도록 돕고 협력하는 것이 좋은 마음의 밭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좋은 마음의 밭을 갖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딱딱하게 굳어진 밭이라면 조금 아프더라도 갈아엎어야 합니다. 바위가 있는 밭이라면 깨뜨릴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가시나무는 뿌리 채 뽑아야 합니다. 염려와 걱정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재리와 일락이 우리 삶의 우선 순위라면 하나님을 그 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마음의 밭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