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시들마다 홈리스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덴버는 겨울이 춥고 긴 관계로 홈리스의 수가 아주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운타운이 부활하면서 점점 그 숫자가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LA에는 무려 6만 명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가까워오면서 이들을 돕는 손길들도 많아지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입니다. 126년 전인 1891년 겨울 샌프란시스코에는 유난히 홈리스들이 많았습니다. 인근 해안에서 큰 배 한척이 파선하게 되었습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난민 신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는 머무를 수 있는 거처가 없어서 길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덴버와 같은 큰 추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바닷바람이 강해서 겨울에는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배가 파선이 되어서 갑작스럽게 난민이 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추위로 떨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 지역 구세군의 사관이었던 조셉 맥피는 그들의 처지를 몹시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 날만이라도 난민들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따뜻한 식사를 먹게 할 것인가를 고심하다가 떠오른 것이 자선의 솥이었습니다. 그는 구세군의 사관으로 사역을 하기 전 영국에서 선원으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가 일하던 부둣가에는 자선을 위한 솥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솥에 돈을 넣으면 그 돈으로 부둣가 근처에서 가난한게 살던 사람들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는 다음 날 바로 오클랜드 부둣가에 큰 솥을 내걸었습니다. ‘이 솥을 끓게 합시다’라는 문구를 만들어서 솥 위에 걸었습니다. 그 말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들은 지갑을 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동전부터 상당한 금액의 지폐도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크리스마스 1,000명이 넘는 난민들은 따뜻하고 정겨운 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 연말이면 언제나 등장하는 구세군의 자선 냄비는 이렇게 시작이 된 것입니다.


매해 자선 냄비를 걸어 놓고 봉사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몇 가지 재미 있는 현상들이 눈에 띈다고 합니다. 첫째는 없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의 사정을 더 잘 헤아린다는 것입니다. 냄비에 돈을 넣는 손길들을 관찰해 보면 비싼 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보다는 허름한 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또한 말끔하게 차려입은 부유한 사람들보다는 웰페어를 타서 생활하는 것 같은 노인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나 드링크 그리고 빵등을 전해주며 격려하는 분들 역시 돈이 많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둘째 현상은 엄마를 따라 봉사에 나서는 틴에이저 학생들의 모습입니다. 구세군 자선 냄비에 나와서 봉사를 하면 커뮤니티 서비스 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봉사를 나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마지못해 끌려나온 모습들이라고 합니다. 혹시 친구나 아는 사람이 보면 어쩌나 경계를 하면서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자선 냄비 옆에 서 있기가 일쑤입니다. 하지만 봉사를 거듭하다 보면 아이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인사를 하는 목소리, 기부를 부탁하는 목소리부터 달라집니다. 봉사하는 기쁨과 보람을 배우는 산 교육장이 되는 것입니다. 봉사는 삶의 의미와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맥도날드 설립자 레이 크록의 아내이자 상속자인 조안 크록이 지난 2003년 죽은 이후 놀라운 사실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돈을 가진 갑부인데도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매년 걸릴 때부터 거두어질 때까지 수십년간 자원 봉사를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직접 종을 들고 치기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격려해서 자선냄비를 후원금을 넣도록 했습니다. 그는 매해 자선의 솥을 끓게 하는데 마음을 쏟았던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해가 갈수록 그 마음이 줄어든 것이 아닙니다. 더욱 더 커졌고 마음 속으로 더 큰 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003년 75세를 일기로 죽기 직전 그의 전 재산인 15억 달러를 구세군에 기증을 했던 것입니다. 그가 남긴 금액은 역대 개인 구세군 기증액으로 최고였습니다. 그의 유언대로 구세군은 다민족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교회를 지어 주었습니다. 유아원과 교실 체육관들을 비롯한 커뮤니티 센타를 지어서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미국 전역에 있는 한인들도 많은 혜택을 보았습니다. 중국인, 베트남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들이 지금도 그의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는 비록 지금 이 땅에 없지만 그가 끓이는 솥은 지금도 미국 전역에 펄펄 끓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뉴욕 타임즈에 실렸던 감동스런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 39가의 어느 회사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하는 빈센트 존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주 신실한 크리스챤입니다. 그는 3년 동안 출근 길에 매일 구걸하는 홈리스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만날 때마다 동전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커피나 샌드위치를 사주기도 했습니다. 그 홈리스는 아주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존스는 그에게 돈을 줄 때마다 술을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그 말을 지키는 적은 없었습니다. 늘 몽롱한 눈동자로 덜덜 떨고 있는 그 모습이 안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쳐지지도 않는 그에게 매번 돈을 주는 자기 자신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이 사람을 계속 나에게 나타나게 하십니까? 아무리 도와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제발 만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기도를 한 다음 날부터 그 홈리스를 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를 보지 않으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한 자기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결국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그 홈리스는 휄체어를 타고 다시 그 자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존스는 그를 데리고 샌드위치 가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연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자기 이름이 레이몬드 로렌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다른 홈리스에게 신발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에 신발도 없이 길거리에서 자다가 그만 동상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결국 발가락 몇 개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를 한 동안 길거리에서 볼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존스에게는 성령의 강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를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존스는 로렌스의 가족을 먼저 찾아주기로 했습니다. 그는 단 하나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누이동생 캐서린의 전화번호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누이동생도 뉴욕 39번가로 매일 출근을 하고 있었지만 오빠가 그곳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지는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로렌스가 과거에 보스턴에 있는 명문 음대를 나온 재주 피아니스트였다는 것입니다. 로렌스의 어머니의 소재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고향 버지니아의 포츠머스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날마다 교회에 나가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존스는 곧바로 로렌스를 가족들에게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가족에게 보내주어도 적응을 못하면 다시 도망을 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존스는 로렌스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정성을 다해 돌보았습니다. 한 달 동안 술도 끊게 했습니다. 거의 정상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제서야 로렌스를 고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잃었던 아들을 맞은 어머니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존스는 로렌스의 고향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마침 주일이라 그가 다니는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로렌스는 그날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아름다운 선율로 찬송을 연주하자 그것을 따라 부르던 교회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존스도 목이 메어 더 이상 찬송을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 날 예배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찬송은 평생 잊지 못할 감격의 찬송이 되었습니다. 쿼터 하나의 작은 은혜가 커져서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 은혜의 바다가 된 것입니다. 자선의 솥을 끓게 하면 우리 마음도 뜨겁게 끓게 됩니다.


이제 2017년도 몇 주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성탄절도 두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성탄의 기쁨과 축복을 같이 나누는 자선의 솥을 끓이면 마음과 실천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에 내가 도울 사람은 없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따뜻한 손길을 전하는 성탄절, 연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