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사가 환자를 불러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잭, 당신에게 조금 나쁜 소식 한 가지와 매우 나쁜 소식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겁이 났겠습니까? 잠시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은 잭은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선생님, 조금 나쁜 소식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예 조금 나쁜 소식이란,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당신은 앞으로 24시간도 못 산다는 것입니다.” 미리 예감은 했지만 얼마나 충격적인 소식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잭에게는 한 가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만 하루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보다 더 나쁜 소식은 어떤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의 충격이 얼마나 해소되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묻습니다. “그것이 조금 나쁜 소식이라면, 매우 나쁜 소식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의사가 대답했습니다. “매우 나쁜 소식은 그 결과를 어제 알려드렸어야 하는데 이제야 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이란 때로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진실에 따라 행동하면 됩니다. 그때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으로 바뀌도록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약해진다는 것은 나쁜 소식입니다. 사업에 실패할 때 우리는 약해집니다. 내가 이루려고 계획하던 것을 하나도 이루지 못할 때 약해집니다. 몸에 병이 들 때 우리는 한 없이 약해집니다. 인간관계가 힘들 때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생길 때 불안해지고 초조해집니다. 겉으로는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만 그렇지가 못합니다. 얼굴 한 구석에는 이미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어깨는 처져있고 걸음 거리는 경쾌하지가 못합니다. 

우리가 약해진다는 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약함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실패요 부끄러움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 약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가 약할 때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약한 것을 들어서 쓰십니다. 우리는 실패로 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성공으로 보십니다. 아프지 않으면 치유하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프기 때문에 하나님의 치료의 손길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약한 것은 곧 하나님의 강함입니다. 우리의 약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강함으로 바꾸어질 수 있는지 세 가지 과정이 있습니다.
  
첫째로 나의 약함은 나를 겸손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한 번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많은 계시를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은 바울을 부르실 때부터 극적으로 부르셨습니다. 그 후에도 바울은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천국 체험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처음으로 그 천국 체험을 말하는 것이 14년 후의 일입니다. 그것도 자기 이야기가 아닌 제3자의 사건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한 사람을 압니다. 그는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어느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정작 말하려고 하는 것은 천국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자기 몸의 질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심각한 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그것이 무슨 병인지 알지를 못합니다. 바울의 병을 간질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심한 안질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째든 그는 병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기도에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병자를 위해 기도하면 그 병이 즉시로 나았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바울의 손수건만 가지고도 사람들의 병을 고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병은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오래 살자고 고쳐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더 많이 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세 번씩이나 기도했는데도 병은 낫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울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계시를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교만해지는 것을 막는 것이 바로 이 질병이로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병을 고치는 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병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통증이 올 때마다 얼마나 약해지겠습니까? 몸의 통증이 너무 심해지면 그 동안 잘한 것은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내가 잘못 살아왔고 미안하고 죄송한 것만이 떠오르는 법입니다. 바울의 이 아픔과 통증은 바로 그를 겸손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의 강함으로 바꿔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나의 약함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머물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이 몸의 질병 때문에 세 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쳐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바울은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첫 번째는 “아! 이것은 나를 겸손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구나!”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응답을 깨달았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것은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네가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라는 뜻입니다. 열 가지를 잘해주다가도 한 가지만 못해주면 아주 불편하게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항상 못해준 것처럼 불평을 합니다.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얻어야 하겠다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요구하는 것을 가끔 “No!"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아주 속상한 말을 듣습니다. ”엄마, 아빠는 always no! 야“ 들어준 것이 더 많고 잘해준 것이 훨씬 많은데 그것들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다. 살다 보면 좀 안 되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풀리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오해를 받을 때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안 되는 것보다는 되는 일이 더 많았어요. 많은 문제들이 잘 풀려왔습니다. 여러분들이 공부하실 때 최소한 80점 90점은 다 받으셨잖아요. 어쩌다가 한 두 개가 안 풀린 것이지 나머지는 다 풀면서 살아왔습니다. 남들에게 오해를 받을 때는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해보다는 이해를 받으면서 살아온 것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영동 세브란스 병원의 암센타 원장인 이희대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암환자들을 치료하고 수술해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지난 2003년 직장암에 걸렸습니다. 그 후 암은 간과 골반 뼈로 퍼졌습니다. 그 동안 대장을 절제했고 간 수술을 세 차례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는 항암 치료를 계속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분의 얼굴은 어둡지가 않습니다. 늘 밝은 얼굴입니다. 환자들을 치료할 때보다 더 영향력 있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암 특강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암에 걸린 당사자와 가족들이 커다란 힘과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암에 걸리는 것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암을 이겨내면 예전보다 훨씬 체력이 좋아집니다.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갖게 되고 올바른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암에 걸리고 나면 가족 사랑을 확인하게 됩니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은 축복입니다. 암에 걸리면 욕심이 없어집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끔 산을 쳐다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아내의 웃는 모습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자그마한 일상의 행복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왜 모르고 지냈는지 후회가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는 내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내게 약함이 없으면 이 은혜를 알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약함은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차를 운전하다 보면 빨간 불이 나옵니다. 그때는 무조건 멈추어야 합니다. 달려가면 큰 일이 생기고 맙니다. 빨간 불은 멈추라고 있는 것입니다. 빨리는 가야 하는데 빨간 불은 성가시기 짝이 없습니다. 매번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바쁠수록 빨간 불은 더 자주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빨간 불은 우리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정신 없이 내 달리는 바쁜 인생길에 멈추어 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빨간 불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멈추어 서게 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파란 불만 있으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는 빨간 불이 참 낞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실망하기 보다는 감사하십시오. 그 곤란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약한 것들 때문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강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계획이 그 안에 있습니다. 약한 것들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으로 인해 우리를 자랑스럽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이 뜻이 그 곳에 있습니다. 나의 약함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보물을 볼 수 있는 눈을 우리 모두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