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농촌에 나이가 많이 드신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그 노인이 애지중지 하는 말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말은 그 노인의 집에서 온갖 모든 일들을 다했습니다. 농부와 그의 가족들은 말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봄이 오자 노인의 가족들은 말에 가래를 얹고 밭을 경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이 오고 추수를 하게 되면 그 말로 마차를 끌게 해서 곡식을 시장에 가서 팔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이 먼 여행을 떠날 때는 말에 안장을 얹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말을 노인의 집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가족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이 그만 벌에 목을 쏘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말이 놀라서 발작을 하면서 뛰기를 시작했습니다. 말은 마구간을 박차고 나가 버렸습니다. 노인은 말을 잡기 위해 쫓아갔지만 말은 산으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노인은 더 이상 쫓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해가 질 때쯤 아주 절망스런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자녀들에게 말을 잃어버렸다는 슬픈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살던 마을은 아주 작은 동네였기 때문에 노인이 말을 잃어버렸다는 소식이 금방 퍼져 나갔습니다. 그 다음날 부터 만나는 사람들마다 노인에게 “정말 안 되었습니다. 소식을 들었습니다. 말을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세요” 그러나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아쉬움을 이야기 할 줄 알았던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행이다. 행운이다. 글쎄요.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말을 잃어버린 지 6일째 되는 날 잃어버렸던 말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5마리의 야생마와 함께 노인의 집으로 온 것입니다. 잃어버린 말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5마리의 공짜말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은 금방 마을 전체에 알려졌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당신의 집에 행운이 들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말이 5마리의 야생마와 함께 돌아왔다면서요” 그때도 노인은 어깨를 들먹이면서 “행운이다 불행이다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노인의 아들은 새로 들어온 야생마를 보자 너무 좋아서 흥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야생마를 조련시켜서 최고의 명마를 만들 꿈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그 야생마들을 조련시키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발이 세군데나 부러지게 되었습니다. 그 소문 역시 마을에 금방 퍼졌습니다. 다음날부터 이웃집 사람들이 노인을 만나면 “당신의 아들의 다리가 부러졌다지요. 그것도 세군데나!” 그 말을 듣고도 농부는 어깨를 들먹이면서 “불행이다. 행운이다. 글쎄요.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두 주 후 그 나라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50세 미만의 남자들이 군대에 강제로 징집을 당했습니다. 노인의 아들도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군인으로 전쟁터에 끌려나갔을텐데 부상한 다리 때문에 징집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불행이 행운으로 바뀌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운이다 불행이다 글쎄요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안 좋은 일도 당장은 낙심도 되고 힘들기도 하지만 결국은 기쁨의 출발인 경우도 많습니다.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일도 나중에 보면 이미 슬픔의 씨앗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제 다 끝났어. 아무 것도 남은게 없어!”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끝난 것이 아닙니다. 터키의 시인인 나짐 히크메트는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시를 썼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고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고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다.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서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서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내 인생 황금기는 이제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더 이상 큰 기대도 소망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아프지 않고 큰 사건 없이 살아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끝났다고 생각하기에는 멋진 일들이 너무 많아 남아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칠 때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더 이상 인생의 장미빛 꿈도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려는 사명도 다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바로왕의 칼을 피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다 죽는 것이 그가 내린 최선이었습니다. 그는 40년을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살았습니다. 나이도 80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양치는 것외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제 자기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노래하는 최고의 시는 아직 씌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 1장부터 3장까지가 그때까지 80년 동안의 모세 인생 기록입니다. 사실 별로 쓸게 없습니다. 무엇인가 역사에 남을만한 시를 써보려고 하다가 중단한 것밖에는 내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의 가장 멋진 시는 나이 80부터 쓰여지기 시작합니다. 출애굽기 3장부터 40장 끝까지, 레위기 전체, 민수기 전체, 신명기 전체가 모세의 나머지 40년 동안의 기록입니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주옥 같은 인생 시들이 만들어졌는 지 모릅니다. 80에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죽을 날을 기다렸던 것이 모세의 인생의 다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의 인생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대 1의 대결을 벌리는 순간이 엘리야의 생애의 가장 화려한 장면일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선지자는 엘리야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하루종일 칼로 몸을 찢어가면서 불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그들의 간구는 공허한 메아리뿐이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바알의 선지자 850명을 기손 시냇가에서 죽이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의 분노에 대해 듣게 됩니다. 반드시 엘리야를 잡아서 죽이겠다고 선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거인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생쥐처럼 돌변을 합니다. 이세벨을 피해 광야로 도망을 치기 시작합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기진맥진한 채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하소연을 하는 모습으로 추락을 하고 맙니다. 엘리야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더 이상 이세벨을 상대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왔던 것입니다. 자기 주변에는 자기를 도와줄 그 누구도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났습니다. 그래서 “오직 나만 남았다”고 여러 번에 걸쳐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엘리야는 무엇을 해야할 지를 몰랐습니다. 이제 어느 길로 가야할 지도 막막했습니다. 그 순간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도 나를 돕는 사람도 하나 없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부를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떡과 고기를 가져다 주시면서 위로하십니다. 그리고는 엘리야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7천명이 남겨져 있다고 하십니다. 혼자 싸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7천 명이 엘리야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 7천 명이 밤을 새워 엘리야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그가 해야 할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후계자인 엘리사를 세우게 하십니다. 내가 천년만년 살 것이 아닙니다. 내 대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나갈 사람을 세우는 것은 더 크게 빛나는 별을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엘리야는 그 말씀을 듣고 엘리사를 훈련시킵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에서 스승보다 더 큰 기적과 능력을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 힘차게 증거하는 선지자가 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만들어 낸 빛나는 하나님의 별입니다. 또 한 가지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게 하십니다. 아합을 대신할 왕이 필요합니다. 정치 지도자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나라 전체에 끼치는 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전역이 바알 우상 숭배에 빠진 것도 아합과 이세벨이라는 잘못된 지도자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늘 인접한 지역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아람의 왕도 엘리야가 세우게 하십니다. 모든 세상의 통치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를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가 가장 멋진 여행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어떤 환경도, 사건도, 결정도 우리 인생을 그대로 끝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끝났다고 하실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