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는다. 부름을 받은 순간부터 복음에 대한 열망에 가득찼던 바울은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지만 시작도 제대로 못하고 쫓겨나게 된다. 그 후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 가서 3년 동안 기도와 말씀으로 철저하게 영성 훈련을 거친다. 그후 다시 다메섹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만 이미 유대인들의 블랙리스트에 그의 이름이 올라갔기 때문에 살해의 위협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메섹에 있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쓰레기 자루에 들어간 상태로 성밖에 버리워져서 살아날 수 있었다. 다메섹 성을 빠져나온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간다. 그곳에 가서 제자들을 만나 교제를 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아직도 바울이 회심을 한 것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은 그를 멀리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그때 혜성같이 나타난 바울의 조력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바나바였다. 이미 초대교회에서 그 이름과 명성이 자자했던 바나바는 바울을 데리고 제자들에게 가서 그가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의 도움으로 제자들과 믿음의 교제를 하기 시작한 바울은 다시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로 내려가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초대교회에 핍박이 점점 강해지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을 떠나 다른 나라로 피신을 하게 된다. 그때 바나바도 동역자들과 함께 수리아의 안디옥에 가서 교회를 세운다. 그 교회가 바로 이방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안디옥 교회이다. 안디옥 교회 담임목사로 목회사역을 하던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바울을 다시 만나게 된다. 같이 안디옥 교회에서 섬기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바나바는 바울을 데리고 와서는 안디옥 교회 담임목사직을 그에게 넘겨주고 그의 사역을 후원하는 자리로 내려간다. 결국 얼마 후 안디옥 교회는 세계 최초로 이방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놀라운 금자탑을 세운다. 그때 파송되는 선교사가 바로 바울과 바나바였던 것이다.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역사적인 제1차 선교여행을 출발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안디옥 교회를 떠나 가장 먼저 도착한 선교지가 바로 구브로 섬인 것이다.

구브로의 파란만장한 역사
구브로는 지금의 사이프러스 공화국(Republic of Cyprus)을 의미한다. 지중해 거의 동쪽 끝에 위치한 사이프러스는 위쪽으로는 터키가 있고 동쪽으로는 시리아와 가까운 곳에 있다. 지중해의 가장 아름다운 섬 중에 하나로 고대로부터 세계 열강들이 서로 차지하고 싶었던 섬이다. 또한 유럽의 제국들, 아프리카 와 중동사이에 항상 중요한 무역의 거점이었기에 이곳을 두고 수많은 전쟁들이 치러졌다. 알렉산더 이전에도 페니키아인, 이집트인, 앗시리아인 그리고 페르시아인들이 앞다투어 차지해왔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들을 몰아냈으며 곧이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300년 이상 주인 행세를 하였다. 그후 BC 58년 로마가 새로운 주인이 되었으며 7세기 들어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제국이 서로 이곳을 놓고 3세기에 걸치는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곧이어 십자군들이 통치한 후 이슬람이 다시 차지하게 된다. 베니스인들이 이슬람을 몰아내면서 잠시 주인이 되기도 했지만 당시 팽창하고 있던 오스만 터키제국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근 400여년 동안 사이프러스를 차지하고 있던 오스만 터키는 1925년 영국에게 새로운 주인자리를 내주게 된다. 다행히 1960년 오랜 피지배의 역사 끝에 독립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사이프러스 남부지역에 살던 그리스계 주민들과 북부지역에 터전을 갖고 있던 터키계 주민들간에 분쟁이 일어나고 만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비무장지대로 완전히 갈려진 나라가 되었다. 서로 왕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남쪽 그리스계 사이프러스 공화국으로 입국을 하면 그래도 하루는 북쪽 지역을 가볼 수 있다. 하지만 북쪽 터키계 지역으로 입국을 하면 남부를 갈 수가 없다. 구브로인 이 사이프러스는 이스라엘과 아랍분쟁에 이어 두번째로 심각한 중동 분쟁국가인 셈이다. 그리스 터키 성지순례 일정 중에 이 구브로 지역이 거의 들어가 있지 않아서 안타까움이 많다. 하지만 이 구브로에는 중요한 성경역사와 초대 기독교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바나바의 고향인 살라미스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여행의 첫 기착지인 구브로에 가서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바로 살라미스였다. 성경에는 살라미로 나와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행13:4-5). 바나바의 고향이 바로 구브로 섬이었던 것이다. 바나바는 고향 사람들을 제일 먼저 전도하고 싶었다. 이것은 인지상정이다. 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유대인 동족들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표현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이다. 위치적으로 살라미는 지금 북사이프러스 지역이기에 방문하기가 그렇게 쉬운 곳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 가면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성경 외적인 아주 중요한 정보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의 선교 사역을 다 마친 후 은퇴해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바로 이 살라미 지역에서 고향 사람들에게 끝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 폭동때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그때 고향 사람들이 그를 바로 이 살라미 지역에 묻게 된다. 조카 마가 문제 때문에 바울과 갈라진 후 마가를 데리고 2차 선교 여행을 온 곳도 바로 이곳 살라미였다. 그래서 이 살라미 지역에는 바나바 무덤 위에 세워진 바나바 기념교회가 있다. 

로마 총독을 회심시킨 바보(Paphos)
살라미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 일행의 두 번째로 방문한 구브로 섬의 또 다른 지역은 바로 바보라는 도시이다. 이 바보는 남사이프러스 가장 최남단에 있는 도시로서 그 당시 구브로의 수도 역할을 하던 곳이다. 지금도 바보는 유럽인들의 가장 많이 찾는 제일의 휴양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때 당시 구브로를 통치하던 로마 총독은 서기오 바울이었다. 바울이 힘있게 복음을 전하자 로마 총독인 서기오 바울은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복음의 방해자들은 항상 나타난다. 엘루마라고 하는 마술사가 바울의 활동을 끈질기게 방해를 하였다. 더구나 총독이 복음의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그가 믿지 못하도록 온갖 술수를 다 쓰게 된다. 아마도 자기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총독을 이용해 많은 이득을 차리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령에 충만했던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이 마술사 엘루마를 향해서 이렇게 외친다.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행13:10-11). 그러자 곧 그의 눈이 멀게 되었다. 이 놀라운 광경을 총독 서기오 바울이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는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되었고 복음을 받아들여 신실한 크리스챤이 된다. 사이프러스 최고 통치자인 로마 총독이 기독교인이 된 것이다. 바보는 고고학자들에 의해 AD 300년 경에 건축된 바울 기념 교회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많은 유적들 가운데 바울이 묶여서 채찍에 맞았다고 전해지는 돌기둥도 있어서 마음을 아련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사로 무덤교회
그리스계 지역인 남 사이프러스의 라나카라는 지역에 나사로 무덤교회가 있다. 나사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마다 늘 만나셨던 친한 친구이다. 그의 누이 동생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이다. 그런 나사로의 무덤이 구브로 섬에 있다는 것이 참 의아하게 들려진다. 나사로가 중병에 걸려 죽자 당시의 장례 관습에 따라 동굴 무덤에 안치해 놓았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전갈을 받은 예수님은 그의 무덤으로 가셨다. 하지만 이미 죽은지 나흘이 되어 벌써 시체에서 썩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죽은 나사로의 시신을 향하여 크게 외치셨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러자 나사로 벌떡 일어나 무덤에서 걸어나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지금도 예루살렘 근처의 벳바게에는 나사로의 첫번째 무덤이 있다. 그렇다면 구브로의 나사로 무덤은 또 무엇일까? 벳바게에서 다시 살아난 후 나사로의 행적에 대해서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전승에 의하면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구브로까지 갔다고 전해진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라나카에서 죽게 된다. 그래서 9세기경에 후대 라나카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지역에 있는 나사로의 전승을 보존하기 위해서 나사로 기념교회 짓게 된 것이다. 교회 강단 옆 지하에 있는 나사로 석관 위에는 주님이 나사로의 죽음 소식을 듣고 말씀하신 구절이 그대로 적혀져 있다. “친구 나사로가 잠들다”(요11:11). 하지마 주님은 나사로가 계속 잠들게 두시지 않았다. 친구 나사로가 지금 잠들어 있지만 그를 깨우러 간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를 그대로 잠들게 두시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깨우러 오실 것이다. 부활의 능력과 기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하는 곳이 바로 남부 사이프러스에 있는 나사로의 무덤교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