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습관이 있는 반면 나쁜 습관도 있습니다. 나쁜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더 이상 성장도 발전도 하지 못합니다.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 생각 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습관만 바꿔도 우리 삶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습니다. 습관을 바꾸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생각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두 가지의 질문으로 가능합니다. 집에만 가면 습관적으로 TV를 켜는 습관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때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답을 찾으면 찾으면 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내가 왜 TV를 켜고 있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하면 됩니다. 무엇인가 좋지 않은 습관을 하려고 할 때마다 이 두 가지 질문을 하면 됩니다.

이런 질문을 하면 우리 삶에 세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첫번째는 우리 삶에 다양한 대안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 일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실패를 하게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낙담을 하게 됩니다. 환경을 탓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도 “내가 왜 이렇게 낙담만 하고 있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는 것입니다. 반드시 어떤 대안이 떠오를 것입니다. 1991년 일본 아이모리 현을 태풍이 휩쓸고 갔습니다. 그곳에는 사과를 재배하는 과수원이 많았습니다. 수확을 앞둔 사과의 90%가 떨어지는 막대한 피해가 일어났습니다. 대부분의 농민들이 낙담을 하고 한숨을 지었습니다. 1년 농사를 다 망쳤다고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태풍을 제대로 예보하지 않은 기상청을 탓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한 사람만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왜 좌절만 하고 있지?” 그러자 떨어지지 않은 10%의 사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일본에 입시철이 다가올 때였습니다. 그는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는 이름으로 수험생 가족들을 겨냥해서 특별 상품을 내놓았습니다. 가격도 10배 이상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습니다. 이 사람 덕에 낙담한 하고 있던 다른 농민들도 다른 해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미 지나간 사건은 낙담한다고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낙담과 실망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물이 엎질러진 김에 청소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얼마나 편할까요?

종종 어떤 날은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신경이 많이 쓰인 날이나 카페인이 든 커피나 티를 저녁에 마시게 되면 더욱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런 날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입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일 때가 많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내가 잠을 못자고 시간을 허송하고 있지?” 그리고는 다른 대안을 찾아보았습니다. 불을 키고 다시 앉게 되면 아예 그 밤을 잠을 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날 활동이 지장이 생깁니다. 잠을 못자는 시간도 유용하게 쓰고 단 두 세시간이라도 잠을 잔다면 다음 날에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은 것입니다. 저는 저에게 가장 좋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듣기 성경을 틀어 놓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아직 중국을 다녀온 시차때문에 잠을 못 잤습니다. 그때 호세아서 13장을 다 들었습니다. 생각을 집중해서 한 구절 한 구절을 따라갔습니다. 약 30분 정도가 지났는데 호세아서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잠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얼마나 유익한 방법인지 모릅니다. 

두 번째 질문을 통한 삶의 변화는 내 삶에 대한 통제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 지능 전문가인 트래비스 브래드베리 박사가 현대인이 반드시 고쳐야 하는 나쁜 습관 10가지를 정리한 것이 있습니다. 침대에서 스마트폰 사용하기, 충동적인 웹서핑, 대화중 전화기 확인하기, 전화기 알림 여러개 쓰기, 거절해야 할 일 승낙하기, 화나게 하는 사람들 생각하기, 회의 중 다른 일 병행하기, 남에 대해 험담하기, 성공이 확실할 때까지 행동하지 않고 기다리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기입니다. 매일의 일상 생활 중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습관들입니다. 워렌 버핏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습관들을 없애기에 너무 무거워질 때까지는 너무 가벼워서 느껴지지 않는다” 위에 나오는 10가지 습관들이 무겁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통제력은 우리 몸의 근육과도 같은 것입니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이 써야 합니다. 이런 습관들이 나올 때마다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침대에서 전화기를 쓰면 수면에 방해가 되고 수면의 질도 떨어뜨린다는데 내가 꼭 할 필요가 있을까?” “웹서핑을 해서 얻는 유익이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불행에서 기쁨을 얻는 것으로 내가 행복할까?”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부자는 사실 그 시대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성실했고 근면했습니다. 남들보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매해 그의 소출을 급성장을 했습니다. 새로운 창고를 지어도 지어도 부족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십니다. 왜 그가 어리석은 사람일까요? 그는 시간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오늘 밤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고 내일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시간을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해진 시간만큼 사는 것뿐입니다. 이 부자로 몰랐던 또 하나는 영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 인생 역시 내 것이 아닙니다. 나를 이 땅에 보낸 분이 있고 다시 부르실 분이 계십니다. 그는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물었어야 합니다. 그 동안 열심히 쌓아 놓은 재물 역시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 내가 벌었다고 내가 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재물의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신 분도 여호와요 가져가시는 분도 여호와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사실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삶의 통제력입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통한 삶의 변화는 사소한 일에 대한 의사결정을 연습함으로써 중요한 일을 효과적으로 결정하는 능력을 터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북 정주에 있던 오산학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집니다. 당시 그 동네에는 아주 똑똑한 청년이 살았는데 그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집안이 가난하여 머슴살이를 하고는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일 중에 하나가 주인의 요강을 매일 닦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요강을 비우고 닦는 일을 매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머슴일지라도 불평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건성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누가 보더라도 기쁨으로 그 일을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이 머슴의 자세를 지켜 본 주인은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학자금을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마침내 청년은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오산학교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롤 유명한 조만식 선생입니다. 그는 항상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비결을 물을 때마다 이렇게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 요강을 잘 닦으려고 했던 것은 그의 작은 의사결정이었습니다. 사소한 일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민족적인 일, 나라의 일을 결정하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우리는 ‘왜?’라고 묻는 질문에 익숙합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지?” “왜 나만 이 일을 해야 하나?” 하지만 바른 질문은 ‘왜?’ 보다는 ‘어떻게 하면?’이라고 묻는 것입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라고 물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좌절이 아니라 희망을 품게 됩니다. “이 문제는 왜 이렇게 어렵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해 보십시오. 대안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새로운 길이 개척되는 것입니다. 아픔을 소망으로 바꾸는 사람이 됩니다. 슬픔이 있는 곳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적절한 질문으로 나와 이웃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