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박사가 세상에 점점 알려지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미국 전역에 있는 대학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아인슈타인 곁에는 늘 같이 동행하는 제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오랫 동안 아인슈타인 곁에 있다 보니 외모도, 말하는 억양도 스승과 점점 닮아져 갔습니다. 한 번은 어느 대학의 요청을 받고 강연을 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 제자가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오랫 동안 따라다니다 보니 선생님이 하시는 모든 강연 내용을 다 외우게 되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제가 해보면 안 될까요?” 아인슈타인은 처음에 그 제자의 제안을 받고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말도 안되는 요청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재미있을 것 같은 생각에 한 번 해보라고 허락을 했습니다. 

  대학 강당에는 수많은 학생들과 교수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제자는 자기가 확신한 대로 강연을 아주 잘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강의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재연을 해냈습니다. 강당 뒷자리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얼굴에 아주 흐믓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제자가 강연을 마치는 시간에 어느 교수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그 소리를 듣자 뒤에 있는 아인슈타인 머리가 쭈빗 섰습니다. 제자가 망신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질문 내용은 깊은 학문적 실력을 가진 사람이나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질문을 받는 제자에게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교수의 질문이 끝나자 제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교수님의 질문 잘 들었습니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대답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 뒤에 있는 제 조교도 충분히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자, 뒤에 있는 조교 나와서 이 질문에 대답을 해 주시오.”

  믿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든든한 것입니다. 내가 몰라도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가장 정확하고 분명하게 대답해 줄 사람이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있는 가장 축복된 말씀 중에 하나는 우리에게 좋으신 하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입니다(마7:7-11). 우리는 이 땅에서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좋으신 하늘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는 한 어떤 일을 만나도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좋으신 하늘 아버지라는 것은 ‘그러면’이라는 약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아주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이 구절에는 기도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중간에 ‘그러면’이라는 접속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구하는 것과 구한 것을 받는 것을 연결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찾는 것을 얻을 때도 ‘그러면’이 들어가 있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것과 그 문이 열리는 것에도 ‘그러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관계 접속사입니다. 구하는 우리와 구한 것을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기도는 절대적으로 관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배가 아픕니다. 고쳐주세요.” “하나님 오늘 5백불이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것이 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는 이 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를 다닐 때 하루는 이렇게 요청을 했습니다. “아빠, 점심값을 줘!” “그래, 벌써 점심비가 떨어졌구나. 그래 요즈음 학교에서 점심은 무엇을 먹니?” “아빠, 학교 점심이 형편이 없어졌어. 먹을 것이 없어. 종류는 줄고 값만 올라갔어!” “아마 점심회사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그럴거야. 그러면 점심을 집에서 준비해 가는 것이 어떻겠니?” “응 좋아.” 아이가 점심 값을 요구한 것을 통해 학교 점심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학교 점심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 알게 됩니다. 집에서 점심을 만들어주면서 자녀와의 관계가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 구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은 아주 기쁘게 응답하십니다. 우리와 대화를 시작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하는 것은 시작입니다. 기도의 끝이 아닙니다. 두 번째 기도의 단계가 ‘찾는 것’입니다. 구하는 것이 말로 하는 것이라면 찾는 것은 행동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직장을 구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에는 직장을 찾아 다녀야 합니다. 제가 대학 1학년 2학기때 장학금이 꼭 필요했습니다.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저의 사정을 낱낱이 고백을 했습니다. 때마다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공부도 최선을 다해서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장학금을 주는 성적의 기준이 3.7입니다. 평균 A학점을 받아야 장학금을 받는 대상에 들 수 있습니다. 저는 그때 열심히는 했지만 3.7에 조금 못 미쳤습니다. 장학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에게 풀 스칼라 쉽이 나온 것입니다. 2학기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저보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여럿이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등록금의 일부분을 장학금으로 받았습니다. 3.7이 되어서도 못 받은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전액 장학금이 주어진 것입니다. 구하고 찾는 저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저는 그 일로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다음 단계는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구하고 찾는 사람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문이 열릴때까지 지속적으로 두드리는 것입니다. 한 과부가 재판장에게 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호소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재판장은 과부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도 하인들을 시켜서 집밖으로 내 좇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과부는 계속해서 재판장을 찾아갔습니다. 결국 재판장은 그 여인의 원한을 풀어주었습니다. 계속 찾아오니까 귀찮아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마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불의한 재판장도 계속 두드리는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당 나라에 ‘노생’이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성공해 보겠다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상경을 했습니다. 그가 하루는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큰 공을 세우고 부잣집 딸과 결혼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나라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병에 걸려 죽는 순간 꿈에서 깨어납니다. 노생은 마지막 남은 조로 죽을 끓여먹습니다. 그리고는 “부귀공명도 별 것 아니구나”고 한탄하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꿈만 꾸다가 포기하는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 소련의 솔제니친은 600만명의 정치범이 갇혀 있는 수용소의 내막을 고발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공산당의 서슬이 퍼랬던 시절입니다. 그는 감시와 억압을 수시로 받았습니다. 고문으로 엄청난 고통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27명의 생생한 증언를 수집했습니다. 내용은 스탈린 뿐만 아니라 레닌까지도 규탄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드디어 26만 단어에 달하는 대작인 ‘수용소 군도’를 썼습니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7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소련이 붕괴되는 정신적 기초를 쌓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결국 소련은 그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수용소에 보내지도 못했습니다. 나라밖으로 추방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진 것을 깡그리 빼앗아 버렸을 때는, 그 사람을 더 이상 다스릴 수가 없다. 그는 자유민이기 때문이다” 그는 끝까지 두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겨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그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 삶은 채워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러면’을 믿고 기도하면 됩니다. 문제가 너무 깊어서 헤어나올 수 있는 길이 없을 때 ‘그러면’을 믿고 찾으면 됩니다. 내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상황이 닥칠 때 ‘그러면’을 믿고 두드리면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것으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