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유럽지역인 네압볼리에 가장 먼저 발을 디뎠지만 그의 목적지는 빌립보였다. 사실 네압볼리는 빌립보시에 속한 항구였다. 빌립보로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네압볼리 항구에서 배를 탔던 것이다. 아시아와 빌립보와의 교역도 네압볼리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네압볼리는 빌립보를 위해서 건설되었다고 보아도 별로 틀린 해석이 아니다. 네압볼리에서 빌립보는 10여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바울은 유럽지역에서는 최초로 이곳 빌립보에 교회를 세우게 된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는 그 후에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바울이 빌립보를 여러 번에 걸쳐서 들렸을 뿐만 아니라 바울 선교의 가장 헌신적인 후원 교회가 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가는 곳곳마다 빌립보 교회에 대한 소개를 한다. 그리고 그들의 헌신과 후원에 감사를 하고 있다. 유럽이 복음화되는데는 빌립보 교회의 후원이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빌립보 교회는 유럽 선교의 어머니 같은 역할을 했으며 교두보로서 그 위치가 아주 견고하다.

빌립보의 역사와 지리적 위치
빌립보는 BC 359년 아테네에서 추방당했던 정치가 칼리스트라토스가 타소스 섬에 살고 있던 그리스 사람들과 함께 건설한 도시이다. 빌립보 주변에는 샘이 많다. 그래서 처음에는 샘이란 뜻의 ‘크레니데스’라는 지명으로 불리워졌다. 하지만 불과 몇년 지나지 않은 BC 356년 알렉산더 대왕은 부친인 마게도냐의 왕 빌립 2세가 이 도시를 지배하면서 도시의 이름을 ‘크레니데스’ 대신 자신의 이름을 따라 ‘빌립보’(Philippi)로 개명한 것이다. 그 후 BC 168년 마게도냐가 로마의 속주가 된 이래, 빌립보는 로마와 동방, 아시아를 연결하는 국제도로상에 위치한 교통 요지가 되었다. 1세기 중엽 빌립보는 로마 제국이 건설한 국제 포장도록인 ‘비아 에그나티아’가 지나가는 도로상에 위치하게 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고대 빌립보의 지리적 위치를 살펴보면 그리스 북부 서편의 드라게 지방과 마게도냐 지방의 으뜸가는 성으로(행16:2) 비옥한 다토스 평원의 펼쳐져 있어서 어떤 나라라도 탐낼만한 도시이다. 

빌립보 전투
빌립보가 역사의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은 BC 42년 그곳에서 벌어졌던 유명한 전투때문이다.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율리우스 케사르(줄리어스 시저)는 공화정치가 펼쳐지는 로마에서 권력을 잡았지만 황제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공화정을 주장하는 삼두정치의 다른 두 인물인 부르투스와 카시우스가 케사르를 암살하게 된다. 하지만 로마 시민들은 이에 항거하는 폭동을 일으키게 되었고 케사르 암살자들의 주변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기에 이르렀다. 암살의 주역이던 부르투스와 카시우스는 겨우 국외로 달아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세력을 규합해서 케사르를 따르던 부대와 대결을 벌이게 된다. 바로 케사르의 양자였던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이 둘의 연합군과 전투를 벌이던 곳이 바로 빌립보였던 것이다. 결국 이들의 대결에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군대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 케사르를 암살했던 부르투스와 카시우스는 자살하고 말았다. 이 전쟁을 빌립보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전쟁을 계기로 로마의 대규모 군대가 빌립보에 주둔하게 되었다. 또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편에 섰던 빌립보 사람들에게 승전을 기념해서 로마의 특별시민권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자연히 로마의 시민권을 노리는 사람들이 빌립보에 모여들게 되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어 도시 규모나 로마 제국내에서의 위치가 견고해지게 되었다.

로마 시민권 & 하늘 시민권
빌립보 전투가 일어난 지 11년이 지난 BC 31년 같은 편이었던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간에 로마 권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역사적으로 유명한 악티움 해전이 벌어지게 된다. 안토니우스는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와 손을 잡고 옥타비아누스와 혈전을 치르지만 결국 패배하고 만다. 옥타비아누스는 마지막 남은 적수였던 안토니우스를 물리치면서 로마 제국의 명실상부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는 이름을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고 바꾸었다. 이 이름의 뜻은 ‘존엄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로마 최초의 황제가 된 것이다. 예수님이 태어나던 당시 로마 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호적으로 하라고 명한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눅2:1)가 바로 이 아우구스투스인 것이다. 아우구스투스는 황제가 된 후 로마 본토에 주둔하던 안토니우스의 핵심군대(시위대)의 지휘관들에게 빌립보 땅을 하사하게 된다. 비록 자기가 물리친 적대자의 군대일지라도 같은 로마 제국의 백전노장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대하면 또 다른 반역의 불씨가 타오를 수 있었다. 그러기에 최대한 환대 정책을 펴게 된 것이다. 그때 퇴역한 군인 수만 500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 가족들과 종들을 포함하면 최소한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빌립보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이들에게는 로마의 동일한 특권을 부여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지방 자치 도시 중에서 빌립보는 최고의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들은 얼마든지 개인 소유의 재산을 가질 수 있었고 거래에 있어서도 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되었다. 민사 소송을 제기해서 자기 권리를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었으며, 인두세와 토지세를 면제받는 등 세금에서도 특별한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로마 총독의 간섭 없이 자치적으로 행정을 꾸려갈 수 있는 행정 특구의 혜택도 받았던 도시가 바로 빌립보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빌립보 시민들은 자신들이 로마의 특권을 누리며 로마의 관습과 법을 따르는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바울이 빌립보서를 쓰면서 이런 말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로마의 시민권이 가진 특권을 마음껏 누리고 있던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이 말을 무엇을 뜻하는 지 금방 깨달았을 것이다. 로마 시민권에 대한 감동, 기쁨, 축복보다 더 큰 것은 우리가 바로 하늘 시민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 시민권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니다. 잠시 이 땅에서 편리함을 가지는 것 뿐이다. 그러나 하늘 시민권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준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가 바로 하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다. 다른 그 어떤 지역보다도 하늘 시민권의 감격과 감동이 흘러 넘쳤던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였던 것이다.

유럽에서 얻은 맏아들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시기인 AD 50-52년경 실라와 디모데, 그리고 누가와 동행하여 빌립보에 교회를 세우게 된다. 빌립보에서 바울은 먼저 유대인들이 모여서 기도를 드리던 기도처소에 가서 말씀을 전하고 루디아에게 세례를 베풀게 된다. 루디아의 온 가족이 그때 복음을 받아들였고, 루디아의 집은 교회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반대자들의 고소로 관가에 투옥되고 만다. 하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손길로 감옥에서 풀려난 후 간수와 그 가족들에게 세례를 베풀므로써 빌립보 교회는 짧은 시간 안에 크게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빌립보 치안관들이 간절한 요청으로 바울 일행이 빌립보를 떠나지만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있어서 ‘유럽에서 얻은 맏아들’이었다. 바울은 이 교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이렇게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빌4:1). 얼마나 사랑이 넘쳐 흐르는 말인가? 그의 사랑 표현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 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1:8). 바울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는 사람들이 바로 빌립보 교인들이었던 것이다. 바울은 3차 선교여행 때도 빌립보를 두 번씩이나 방문한다. 빌립보 교인들 역시 바울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보여주고 있다. 바울의 선교 활동에 필요한 물질적 도움을 끊임없이 주었다. 바울이 힘들고 지쳐할 때는 사람을 보내서 그를 끝까지 돌보도록 하였다. 마치 든든한 맏아들을 바라보는 바울의 마음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성경이 바로 빌립보서인 것이다. 빌립보서는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 간의 뜨거운 사랑의 편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참 부러운 목회자와 성도들의 관계이다. 삭막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까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