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수퍼마켙 체인인 페니(Penny)에서 지난 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감동스런 광고를 내보냈습니다. 한 중년부인이 주인공입니다. 저녁 어둠이 깔리는 시간에 부인은 조용히 서서 바깥을 내다봅니다. 그리고는 오랫 동안 문이 닫혀있던 빈방으로 들어갑니다. 오래 전 그 방안에서 벌어졌던 일이 스크린에 펼쳐집니다. 엄마와 딸은 격렬하게 싸웁니다. 결국 딸은 만삭의 몸으로 집을 나갑니다. 그 옛날을 회상하던 부인은 결심한 듯 집을 나섭니다. 세상은 온통 폭설로 뒤덮혀 있습니다. 부인은 발을 잘못 디뎌서 물에 빠집니다. 산속에서 늑대를 만나 죽을 고비도 넘깁니다. 하지만 사력을 다해 거센 바람을 헤치고 어딘가를 향해 갑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옛날 집을 나간 딸의 집이었던 것입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딸이 문을 엽니다. 엄마를 보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딸은 오래도록 엄마를 끌어 안습니다. 오랜 세월 엄마와 딸은 인연을 끊고 살았던 것입니다. 진짜 클라이막스는 그 다음에 등장합니다. 카메라가 멀리 물러나면서 엄마와 딸의 두 집이 나란이 잡힙니다. 엄마와 딸의 집은 사실 몇 십미터도 안 떨어진 이웃집이었던 것입니다. 엄마가 산 넘고 물을 건넜던 험난한 여정은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났던 격량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실망과 분노, 미움과 배신감으로 한 번 마음의 문이 닫히면 다시 열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화면 마지막에 나오는 메시지는 이런 뜻입니다. “그 길이 아무리 멀여 보여도, 지금은 크리스마스, 화해할 때입니다.”


성탄절의 가장 큰 의미가 바로 화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를 화해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원수였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화해를 위해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해만이 아닙니다. 서로 원수가 되고 미움의 대상이던 우리 서로를 화해시키는 것이 또한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주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됩니다.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서로 하나가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허물어지지 않을 벽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메시아를 ‘평강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9:6). 왕은 주인을 말합니다.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항상 주는 사람입니다.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평강의 주인이십니다. 평강은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 성탄절에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좋은 소식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종종 이런 말들을 합니다. “뭐 좀 좋은 소식 없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듣고 싶은 소식은 ‘경기 호전’이라고 합니다. 경기가 좋아지고, 장사가 잘 되고, 돈이 잘 벌리는 것 이것만한 좋은 소식이 없는 것입니다. 로또 당첨은 좋은 소식이기는 하지만 너무 확률이 낮아서 별로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이 월급이 올라갔다는 소식입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에게 연말이 되면 늘 기대하는 소식 중에 하나입니다. 승진을 했다는 소식 역시 듣고 싶어합니다. 한국에는 직장을 잡지 못한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씩 취업 준비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청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거짓말이라도 한 번 들어보고 싶은 것이 회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입니다.” 직장인들이 또 하나 듣고 싶은 것은 “오늘 출근하지 말라”는 소식이라고 합니다. 좋은 소식을 들으면 마음에 기쁨이 생깁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소식 가운데 가장 기쁜 소식은 2천 년 전 천사가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전해 준 소식입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신 구주가 오셨다는 소식입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 하늘까지도 영광으로 가득찼습니다. 대통령이 좋은 소식을 시민들에게 전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그 주변에 부통령을 비롯해서 백악관 참모들, 상하원 의원들이 빼곡하게 둘러서서 대통령의 말끝마다 박수를 치면서 좋아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늘에 천군과 천사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하모니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세상의 소식들은 아무리 좋은 소식도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최저 임금이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켈리포니아는 2020년까지 시간당 15불로 올리는 것을 법으로 통과시켰습니다. 현재 매년 13%씩 올리고 있습니다. 19개 주가 단계적 인상을 결의했습니다. 일을 하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반기는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업주 입장에서는 그것처럼 고역이 없습니다. 매상은 그대로인데 인건비만 계속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한쪽 편에는 좋은 소식이지만 다른 편에서는 나쁜 소식인 것입니다. 중국에서 몇 년 전 중대한 결정을 하나 내린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30년간 중국은 1자녀 갖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단순히 계몽 운동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자녀들 둘 이상을 낳으면 모든 사회적 혜택을 받지를 못합니다. 공직에 나갈 수도 없습니다. 의료보험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시민들은 둘을 낳으면 둘째는 아예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1자녀 갖기 의무 제도를 폐지한 것입니다. 중국도 인구가 이제 더 이상 늘어나지 않습니다. 부부 중 한 쪽이라도 외동아들이나 외동딸이면 두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법을 개정한 것입니다. 그러자 뉴질랜드 달러가치가 치솟았습니다. 뉴질랜드는 중국에 수입분유 90%를 수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옥수수 농장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피아노 제조회사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저귀 회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릅니다. 하지만 피임약 회사들은 주가가 곤두박질쳤습니다. 정말 기쁜 소식은 누구에게도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성탄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오늘 처음 이 소식을 들었던 목자들을 보십시오. 이렇게 좋은 소식을 들을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당시 가장 천민에 속하던 사람들입니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평생 양 몇 마리 키우면서 이곳 저곳을 떠돌아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성전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믿음을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늘의 놀라운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성탄 소식이 제일 먼저 알려진 것입니다. 세상의 기쁜 소식은 목자들에게까지 들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소식은 바로 목자들에게 먼저 들린 것입니다.


  천사가 그 소식을 전하고 떠났습니다. 그 순간 목자들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으로 가기로 결심을 합니다. 한 밤중입니다. 들에는 자기들이 치던 양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쁜 나머지 그들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 밤 중에 어느 집에 가서 아기 예수를 찾겠습니까? 집집마다 기웃거립니다. 문을 두드립니다. 곤한 잠을 깨웠다고 욕을 먹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오직 아기 예수를 만나는 기쁨만이 그들에게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은 지금 억지로 찾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닙니다.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신이 나서 하는 일입니다. 마음에 솟아오르는 기쁨을 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말구유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찾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만 왕의 왕이신 주님에게 가장 먼저 경배를 드리는 사람이 바로 목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왕이 이름 없는 천민의 인사를 제일 먼저 받겠습니까?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 줄을 이어서 인사를 합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장 앞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목자들은 평생 한 번도 왕궁 근처에도 가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달랐습니다. 목자들의 예배를 가장 먼저 받으셨습니다. 세상의 소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진정 기쁜 소식은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들을 수 있는 소식이어야 합니다. 누구라도 먼저 듣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소식이어야 합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은 목자들의 삶은 그 본질부터가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신분이 달라진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더 이상 남의 것을 도둑질 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두 눈으로 하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은 그 후에도 힘든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천군 천사의 찬양이 다시 그들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때마다 말할 수 없는 평강이 그들의 마음을 채웠을 것입니다. 비록 성전에서 여전히 예배를 드리지 못할 지 모릅니다.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천대받고 무시 받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화도 나지 않습니다. 왜요? 주님을 직접 보고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영광스런 주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그들은 다시 평강이 넘치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놀라운 기쁨의 큰 소식을 우리 모두가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