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떡을 하면 조선 사람이 다 먹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말로는 못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에게 언행이 일치한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공자는 군자라고 불렀습니다. 야고보서의 저자인 야고보는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결정적 키가 무엇일까요? 실천입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과 꿈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년 새벽기도에 나와 열심히 기도하고 올 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부터 하나도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1년은 또 흘러가고 말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실천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됩니다. 거울을 보았습니다. 얼굴에 김치 국물이 묻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냄새도 나고 보기에도 흉합니다. 그런데 보고서 닦지를 않습니다. 그냥 회사에 나갑니다. 이것이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고보서 1:25절은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실천하는 사람은 그 행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습니다. 결국 사람의 차이는 실력의 차이가 아닙니다. 배경의 차이도 아닙니다. 실천력의 차이일 뿐입니다.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복을 받습니다. 하지만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매일 자신을 속이다가 끝이 나고 말 것입니다. 아무런 변화도 성장도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어떻게 하면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지 두 가지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실천을 잘 하려면 환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실천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운동을 하기로 결심을 했으면 일주일에 최소한 3-4회는 운동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력을 안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우리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 나는 의지력이 없는게 틀림없어! 역시 나는 안돼!” 결국 실패의 원인을 나약한 자기의 의지력에 돌려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의지력의 문제보다 실천하지 못하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환경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체로 우리가 처한 환경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우리가 처한 환경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미국의 국가적인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 환경을 바꾸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의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게 만드는 내 삶의 환경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결심했다면 맛있는 음식을 눈 앞에 두고 무작정 참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냉장고를 건강한 음식으로 채워두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책을 보거나 공부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면 방해요소부터 제거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자꾸 만지작 거린다면 스마트폰을 아예 가방에 넣어두고 한 동안 꺼내지 않는 것입니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페이스북에 자꾸 관심이 간다면 페이스북 어플을 아예 삭제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곳에 신경쓸 고민 거리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실천하지 못하는 원인을 자신의 나약한 의지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없습니까? 오늘 이 말씀이 바로 그 분들을 위한 복음입니다. 문제의 원인은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때문입니다. 우리가 변화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 야 합니다. 그때 실천의 기쁨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히브리서 11:22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서 집약해 놓은 성경이 바로 히브리서 11장입니다. 아담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믿음의 위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단 한 구절로 그의 일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에 대해 쓰여진 책만도 수천권이 넘을 것입니다. 드라마틱한 그의 이야기는 영화로 연극으로 뮤지컬로 수도 없이 나와 있습니다. 그에 대한 설교만도 지난 수천년 동안 강단마다 흘러 넘쳤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마디로 그의 생애를 정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구절을 보면서 히브리서 기자의 탁월한 안목에 감동을 했습니. 요셉은 한 마디로 환경을 변화시킨 사람입니다. 그는 임종시에 유언으로 두 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애굽을 떠나라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한 곳에 머물다 보면 그곳에 익숙해 집니다. 애굽에서 벌써 3세, 4세가 태어났습니다. 무려 4백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떠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환경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애굽에서는 안 됩니다.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적인 성공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늘 백성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환경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셉은 백성들에게만 그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도 애굽에 있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자기 뼈를 반드시 가나안으로 가져 가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요셉은 총리대신입니다. 애굽을 기아에서 건진 인물입니다. 세계 최강의 나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로가 자기 보다 높은 것은 단지 왕관 하나뿐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무덤은 어느 왕보다도 크고 화려한 피라미드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좋은 환경을 포기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세겜에 가면 그의 무덤이 아주 초라하게 남아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는 사람들도 요셉의 무덤에는 잘 가지 않습니다. 전혀 관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덤의 크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화려함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수천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과 감동을 주었는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의지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경을 바꾸는 것입니다. 올해는 배운 것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부터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실천을 잘하려면 끝까지 버티기를 잘해야 합니다. 실천을 잘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과제에 마침표를 찍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한 달에 5파운드를 빼기로 결심을 했다면 정말 한 달에 그 과제를 완성하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때 자신감도 생기고 성취의 기쁨도 넘쳐납니다. 다음에 또 다른 계획을 세워도 성취할 확률이 점점 높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계획에 마침표를 찍어본 경험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부담감만 점점 높아지게 됩니다. 결국은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포기해 버리고 맙니다. 어떤 과제도 쉽게 빨리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이 시간이 걸립니다. 비지니스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3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사람을 아는 것도 만나자 마자 되는 것이 아닙니다. 100번 이상 밥을 같이 먹어야 그 사람이 누군지를 압니다. 새벽 기도를 습관화 시키려면 3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 기간 동안 버티는 것입니다. 잘 되고 안 되고는 나중 문제입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35살에 늦각이로 배우로 데뷔를 했습니다. 처음 할리우드에 입문했을 때 아무도 그를 거들떠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더스틴 호프만, 알파치노 등 체구가 작고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미남 배우들이 각광을 받던 시대였습니다. 나중에 그가 유명한 배우가 된 후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결국 마지막에 이기는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 줄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모두가 살을 빼고 금발 미남처럼 보이려고 할 때 내가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들처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한 것은 그저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제작자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팝콘이나 먹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놀드 대중들이 잘 생기고 매끈한 배우에게 점점 식상해 질 때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처음 영화를 계약했습니다. 코미디 감독과의 계약입니다. 식당에 앉아 냅킨 위에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출연료는 공짜였습니다. 단 이익이 나면 런닝개런티를 받기로 한 것입니다. 그 영화가 바로 트윈스 였습니다.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나중에 무려 3천만 달러를 개런티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불레셋에 두 번씩이나 피신을 갑니다.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미친체를 하기 시작합니다. 머리를 풀어 제치고 침을 흘리며 대문짝에 기대어 가려운데를 긁습니다.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면서 버티는 것입니다. 무려 2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힘들어도 참아야 합니다. 끝까지 버터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변화는 그냥 온 것이 아닙니다. 올해 우리 모두에게 힘든 일도 끝까지 버티는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