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에는 비교적 유적지가 많이 보존되어 있다. 도시 주변에 온천과 금광이 많아 경제적으로 매우 풍족했으며, 시민들 역시 로마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많아 화려한 건물들을 세울 수 있었다. 현재 이 고대 도시 빌립보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주전 356년 레카니스 산 위에 세워진 아크로폴리스, 비잔틴 시대 산 중턱에 세워진 길이 3.5km의 성벽 일부, 성문 밖에 있는 루디아 기념교회, 그리고 주전 4세기 빌립 왕 때 세워졌다가 주후 2세기에 확장된 원형극장 등 여러 개가 남아 있다. 또한 주후 2세기 로마의 포럼과 5세기 비잔틴 시대에 건축된 교회들, 그리고 바울이 갇혔던 ‘사도 바울의 감옥’ 유적까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바울의 감옥터 위에 있는 원형극장에 서면 대부분의 순례객들이 그곳에서 합창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만큼 공명이 잘 될 뿐만 아니라 바울의 고난과 아픔을 기억하면서 찬양을 하기 때문에 은혜가 더욱 넘쳐나기도 한다. CRC 목회자들도 그곳에서 바울이 갇혀 있던 감옥의 고통을 생각하며 찬양을 불렀다.

사도 바울의 감옥
빌립보 유적지에 들어서면 약간 언덕 위에서 로마 시대의 고대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된다. 이 고대 시가지는 가운데 도로를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도로 윗쪽 부분은 로마시대의 야외 원형극장, 5세기에 세워진 교회터가 있고 극장 아래부분에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이 있다. 도로 아랫쪽으로는 아고라라는 큰 광장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곳에서 후대에 교회로 사용되었던 신전터와 바울이 전도여행을 했던 로마행 국도인 비아 에그냐티아 도로 일부가 있다. 바울과 실라는 이곳 아고라 광장에서 복음을 전하다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게 된다. 그는 점쟁이로 돈을 많이 벌어 주인에게 큰 수입을 가져다 주었던 사람이다. 바울은 귀신 들린 여종을 불쌍히 여겨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었다. 그러자 그를 통해 점을 치고 돈을 벌던 사람들이 수입원이 끊어지자 바울을 이교를 전한다는 명목으로 고소를 하기에 이른다. 빌립보 법에 따라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들은 감옥에서 불평하기 보다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을 오히려 기쁘게 여기고 그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이다. 그러자 감옥의 옥터가 흔들리고 차꼬가 풀어졌다. 간수는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달아난 줄 알았다. 그는 큰 책임을 느끼고 자결하려고 했지만 바울이 그를 만류했다. 일반적으로 죄수들은 탈출한 기회가 생기면 멀리 도망을 칠 것이다. 하지만 옥문이 열렸는데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자기 앞에 서 있는 바울을 보고 그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그 사건은 결국 그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간수는 바울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기에 이른다. 그는 곧 자기 가족들과 친구들을 모아놓고 바울을 초정해서 말씀을 듣게 된다. 빌립보에서 집단 회개와 세례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 역사적 현장이 바로 바울이 갇혔던 감옥이었던 것이다. 암석을 파서 만든 엉성한 감옥이지만 그곳에 서면 바울과 실라의 찬양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게 느껴진다.

동역자 루디아
빌립보 교회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루디아이다. 루디아는 빌립보에 살면서 자주 옷감 장사를 하는 여성 사업가였다. 그의 고향은 소아시아의 두아디라이다. 두아디라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초대교회 가운데 하나가 있던 지역이다. 두아디라는 중국의 비단이 유럽으로 건너가는 무역로인 비단길(Silk Road)이 거쳐가는 길목으로 소아시아 염색 공업의 중심도시였다. 자주 장사는 바로 이 중국산 비단을 자주색으로 염색하여 유럽에 판매했던 것이다. 자주색은 열대 뿔고동이나 조개 혹은 특수한 식물의 뿌리에서 채집되는 당시에는 아주 값비싼 염료로써 로마 귀족들이나 고급 장교들만이 입을 수 있는 최고의 옷감이었다. 빌립보는 로마 귀족들이나 군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에 자주 옷감 장사에게는 최적의 환경이었던 것이다. 루디아가 어느 경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 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경건한 신앙심을 가진 여인이었다. 당시 빌립보에는 유대인들이 거의 없었다. 유대인 남자 10명만 있어도 회당을 설립할 수 있는 것이 당시 유대인들의 관습이었다. 그러므로 어디를 가나 남자 10명만 되면 그 지역에 어김없이 회당이 세웠다. 하지만 빌립보에는 불과 몇 가정밖에 유대인들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몇명의 유대 여인들이 강가의 기도처소에 모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그 주 회원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루디아였다.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하자 마자 바로 그 기도처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바울은 가는 곳곳마다 제일 먼저 유대인들이 모여 있는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하였다.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는 관계로 기도처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그때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말씀을 주의 깊에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그는 유럽에서 첫 번째로 회심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회심 후 루디아와 온 집안이 다 바울로부터 세례를 받아 빌립보에 첫번째 교회를 세우게 된다. 간수 가족과 루디아 가족이 빌립보 교회의 개척 교인들이 된 것이다.

루디아 기념교회
빌립보의 유적지인 아크로폴리스에서 북쪽으로 약 1.5마일 떨어진 곳에 루디아 기념교회가 있다. 이 루디아 기념교회는 바울이 루디아 여인을 만난 것과 그에게 세례를 준 것을 기념해서 그리스 정교회에서 1974년에 세운 교회이다. 교회를 세운 장소는 루디아가 강가의 기도처소에서 바울이 전한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은 강기테스 강가 바로 곁이다. 기념교회에서 약 70피트 떨어진 곳에 강물이라고 말하기에는 협소하지만 한 겨울에도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다. 그리고 그 개울 한 가운데는 세례터가 마련되어 있어서 루디아의 세례를 기념하고 있다. 루디아 기념교회를 세운 그리스 동방 정교회에서는 매년 5월 20일을 루디아의 축일로 지켜오고 있다. 교회는 마을 사람들이 기금을 모아 직접 건축한 것이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1972년 루디아를 성인으로 추대하였다. 기념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윗쪽 중앙에 커다란 돔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선명하게 보이는 모자이크는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하늘로부터 비둘기가 내려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천장뿐만 아니라 입구와 바닥에도 성화가 가득하다.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교회이기에 그림도 훼손된 부분 없이 정갈하고 깨끗하다. 지금도 계속 교회 안에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고 한다. 

바실리카 교회터
빌립보의 유적지 바울의 감옥 위쪽으로 가면 바실리카 회당식 교회터가 나온다. 이 교회는 AD 5세기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서 바울이 빌립보에 복음을 전하고 난 후 빌립보에서 복음 전도 활동이 얼마나 활발하게 일어났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교회이다. 지금은 비록 기둥들만 남았고 내부의 구조들을 파악할 정도의 형태만 남았지만 건물의 규모로 보아 모이는 성도들의 수가 상당히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교회의 규모는 폭이 150피트이며 길이가 무려 400피트가 넘는다. 수천명은 들어갈 수 있는 아주 큰 규모의 교회이다. 교회 안의 구조는 개신교회 구조와는 다르게 앞쪽에 강단이 있고 그 뒤에 작게 지성소가 구분되어 있다. 지성소의 방향은 성소피아 성당을 향하도록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스에 있는 도시들의 초대교회들은 지성소가 성 소피아를 향하도록 지었기 때문이다. 성 소피아는 지금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으며, 과거 오스탄 투르크가 지배하기 전에는 동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부른 곳에 있었다. 그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예루살렘과 같은 성지였으며 성 소피아 성당은 교회 중 어머니 교회로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성소 안에는 돌로 만든 궤가 있고 그 안에는 면직물로 싼 시편 말씀을 적은 조각들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성전 가운데에는 설교단이 있고, 성전 문과 성전 안 사이에 지금 교회 건물로는 로비쯤에 해당하는 자리가 있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성전 안에는 세례 받은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었기에 교회 정면 입구와 본당 사에에 좁고 긴 현관을 꾸며 본당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회개하로 온 사람들의 예배 장소로 삼았다. 또 건물의 북쪽에는 교회 내부와 벽을 두고 세례를 위한 별도의 공간, 세례실과 세례 준비실이 있었다. 교회 기둥도 하트 모양이며 십자가 문양들도 많이 새겨져 있다. 물론 바울이 복음을 전한지 약 400년 후에 세워진 교회이지만 빌립보에서 바울의 전도가 얼마나 많은 열매를 오랜 세월 맺었었는 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