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년 이상 우리 교회에서는 천로역정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될 것입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천로역정을 강해할 것이며, 또한 여러 교우들이 책을 사서 읽을 것입니다. 금요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우들은 강해 CD를 구해서 틈나는 대로 경청을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천로역정에 대한 이야기는 한 동안 멈추지 않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어떤 형태이든 이번 기회에 한 번은 천로역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무슨 내용인지를 묵상하는 것도 우리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천로역정을 저술한 존 번연에 대한 생애를 한 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을 꼽으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저 없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신학자들 중에는 존 번연이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약 20년) ‘청교도 혁명’을 ‘존 번연 혁명’이라 불렀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평가들은 2천 년 기독교 역사에 존 번연의 위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인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대 선배인 존 번연을 살펴보고 그의 일생을 더듬어 보는 것도 우리 각자의 신앙에도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존 번연은 1628년 영국 베드포드에 있는 엘스토우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놋쇠 세공사(땜쟁이)였습니다. 가게가 번듯하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이곳 저곳 부르는 곳을 돌아다니며 항아리나 주전자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고쳐주기도 하면서 살았습니다. 번연은 맏아들로 태어나서 아버지의 가난을 물려받게 됩니다. 그는 어린 시절 빈민 소작농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시골 학교에서 읽는 법과 쓰는 법을 배웠지만 10살의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 두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가 혼자 버는 돈으로는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번연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땜쟁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7살까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책을 통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어린 어깨에는 늘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었습니다. 땜질을 하기 위한 도구였지만 그 짐은 벗어날 수 없었던 인생의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무거운 짐을 어깨에 매고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울부짖고 있는 것은 번연 자신의 인생고요, 삶의 탄식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케임브리지 근처 스타워브리지에서 정기적으로 열렸던 큰 시장은 천로역정에서 ‘허영의 시장’의 모티브가 됩니다. 우리가 지나온 삶은 힘들고 편하고를 떠나서 결국 우리 인생의 굵은 자국을 남기게 됩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우리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는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 틴에이저 시절의 가난과 삶의 무게는 그를 반항아로 만들어갔습니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부정적인 생각이 그의 마음에서 싹터 올랐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누구를 향해서나 욕을 해댔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로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의 모습은 마치 고삐풀린 망아지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본성 한 가운데 있는 지적 호기심은 닥치는 대로 많은 책들을 접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장에 가면 언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모험담이 담긴 책들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또한 여러 지방의 민담집과 전승들에 관한 책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17세 때 가정의 불행한 일들을 연이어 겪게 됩니다. 1644년 6월에는 어머니가 죽었고, 곧이어 7월에는 누이동생 마거릿이 죽었습니다. 8월에는 아버지가 새로운 아내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 영국에는 내란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청교도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최초의 시민혁명으로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신앙의 자유와 시민이 자유롭게 통치하는 정부를 꿈꾸는 의회파(청교도)와 군국주의적인 왕정과 영국국교회를 지향하는 왕당파간이 전쟁이었습니다. 

번연은 17세의 나이에 의회군에 징집되어 뉴포트의 파그넬에 있는 수비대의 보충병으로 배치가 되었습니다. 번연은 그곳에서 1647년 7월까지 약 3년 동안 군복무를 하게 됩니다. 큰 전쟁을 직접 치러 본 적은 없지만 지역 전투에서 바로 옆에 있는 동료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을 목격하면서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그는 나중에 이 일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로 살아났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가정과 나라의 큰 위기 속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군에서 제대를 한 번연은 20세의 나이에 독실한 기독교인 아내를 맞아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는 자서전 ‘넘치는 은혜’에서 자기와 아내는 “접시나 숟가락 같은 가재도구도 없을만큼 매우 가난한 상태에서 서로 만났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결혼생활은 궁색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결혼 지참금이나 가재 도구 대신에 아더 덴트의 ‘평범한 사람이 하늘에 이르는 좁은 길’과 루이스 베일리의 ‘경건 훈련’이라는 두 권의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번연은 아내가 가져온 책들을 통독하면서 신앙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그 동안 예배에도 참석하고 있지 않던 그는 다시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신앙의 세계로 발 걸음 옮기던 그는 어느 날 자기 집 문 옆에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가난한 여인들의 대화를 듣고는 감격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됩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 그들은 온통 기쁨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매우 즐겁게 성경에 대해 이야기했고 마치 새로운 세계라도 발견한 사람 같았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번연의 고백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대화나 삶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을 섬기면서 신앙의 기쁨이 없고 행복이 없다면 우리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신앙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얼굴에 기쁨이 충만하고 대화의 내용이 감사와 격려, 칭찬으로 가득차 있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마치 신세계를 발견하는 도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번연은 25세때부터 노방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의회파가 주도하는 정치 상황(청교도 혁명의 성공)이었기 때문에 평신도이지만 그는 자유롭게 5년 동안 전도하며 설교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660년 왕정이 다시 들어서면서 찰스 2세가 명을 내려 인가받지 못한자의 설교를 금하게 됩니다. 영국 국교회 소속이 아니면 설교도 전도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성령의 역사로 마음이 불타 올랐던 번연은 설교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며 설교를 하러 다녔습니다. 결국 번연은 1661년 1월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당국은 그를 회유했습니다. 설교만 하지 않겠다고 서명을 하면 석방시켜준다는 제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짓말로 당국의 제의를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설교에 대한 그의 강렬한 열망을 스스로가 억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려 12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 부당한 일이었고, 정치 상황의 희생양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얼마든지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할 수 있었지만 번연은 감옥을 인생 최고의 도서관으로 바꾸었습니다. 처음 5년 동안의 옥살이 중에는 그의 첫 작품인 ‘명상의 유익’을 썼습니다. 곧이어 ‘신자의 행위’를 집필했으며, 자신의 자서전인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를 내놓았습니다. 감옥 생활 후반기은 1667-1672년 사이에는 불후의 명작인 ‘천로 역정’를 저술하게 됩니다. 만약 그가 12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설교가로서 많은 명성을 남겼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3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천로역정이라는 책은 남기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부당한 감옥 생활이었고,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감옥을 번연만의 도서관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섭리는 놀랍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 역시 감옥에서 4권의 옥중서신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미리 판단할 것은 어떤 것도 없습니다. 끝까지 가보아야 압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상황을 어떻게 바꾸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1672년 감옥에서 나온 번연은 베드포드 교회의 목회자로 순회 설교가로 16년을 달려가다가 1688년 60세에 하나님의 품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불후의 명작인 천로역정 뿐만 아니라 60여권의 신앙서적을 남기는 놀라운 업적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불꽃을 아낌없이 태우다가 간 신앙의 큰 선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