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새벽 예배 시간에 구약 성경인 에스겔을 강해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유다 멸망을 전후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회개와 소망을 메시지입니다. 에스겔이 보는 환상과 상징들이 많아 읽기가 그렇게 쉬운 성경은 아닙니다. 하지만 에스겔서에는 모든 교인들이 잘 알고 있는 두 가지 사건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에스겔 37장에 나오는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된다는 에스겔 환상입니다. 또 하나는 에스겔 47장에 나오는 성전 문에서 나오는 물이 온 세상을 낙원으로 바꾼다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아무리 절망 중에 있다 하더라도 은혜의 생수만 부어진다면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변화된다는 희망과 꿈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강을 인류의 젖줄이라고 부릅니다. 인류의 문명이 강줄기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4대 문명은 모두 강을 끼고 시작되었습니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을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의 선물이었습니다.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 강을 배경으로 꽃을 피운 것입니다. 중국의 황하 문명은 역시 황하라는 거대한 강을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강은 그 주변에 비옥한 땅을 사람들에게 선물했습니다. 또한 배를 띄워 무역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강을 끼고 사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 역시 그 중심에 강줄기가 흘러내립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계22:1) 천국에도 생명수 강이 흐릅니다. 그 물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흐르기 시작합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물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도 강은 생명을 선물합니다.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생명수 강변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물고기들이 물을 떠나면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의 강을 떠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강변에 엄청난 축복들을 약속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의 강은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합니다. 천사가 에스겔을 환상 중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선지자입니다. 이미 성전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파괴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예배가 드려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무도 살지 않는 적막한 땅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무너진 성전 터 위에는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꿈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나라 잃은 슬픔과 고통만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꿈의 시작을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환상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를 되찾는 비전을 가졌습니다. 허물어진 성전이 다시 우뚝 세워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성전에서 감동적인 예배가 드려지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황폐화된 땅에 다시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꿈은 얼마 후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포로 귀환을 통해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로 돌아오자 마자 성전을 중건하기 시작합니다. 완공된 성전에서 감격적인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모인 가운데 에스라가 설교를 하기 시작합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무려 6시간에 걸친 설교였습니다. 말씀에 감동을 받은 백성들이 울기 시작합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은혜의 저수지가 터진 것입니다. 그 새로운 꿈의 시작은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말씀을 통해 회개가 있고 새로운 결심이 있는 곳입니다. 성전에서 은혜의 저수지가 터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스며 나오기 시작합니다. 물은 희망입니다. 생명의 시작입니다. 그 물을 따라가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축복과 능력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물이 막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스며나오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겔47:2) 생수는 처음에 다 스며나옵니다.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생수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말씀 한 번 더 듣는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예배 한 번 빠졌다고 무슨 큰 일이라도 납니까?” “예배 한 번 늦었다고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은혜가 갑자기 쏟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스며 나오는 것입니다. 언제 성령이 우리를 감동하실지 모릅니다. 제가 처음 교회 개척을 한 후 처음 선교사로 파송한 부부 선교사가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메디컬 닥터입니다. 연대 의대를 졸업하고는 캐나다 켈거리로 유학을 왔습니다. 신앙이 깊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일 예배도 한 달에 한 두 번 출석했습니다. 앞으로 유명한 의사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꿈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주일 예배도 잘 참석하지 않는데 수요예배에 관심이 있었겠습니까? 새벽 예배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비가 오는 수요일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는 책을 보고 있는데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오늘 수요예배나 가볼까?” 그들 부부 생전 처음으로 수요예배에 나왔습니다. 

  그날 따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 하나가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유학 온 학생이었습니다. 1990년 대 초의 일입니다. 아직 중국이 개방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그 학생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새벽 4시만 되면 어머니가 뒷마당에 있는 장독대로 나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몰래 어머니 뒤를 따라갔습니다. 장독대 중간에 있는 독을 하나 열더니 그곳에서 무슨 책을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호롱불을 가지고 한 동안 그 책을 읽은 다음 다시 독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대학생인 아들에게 과거 집안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4대째 철저한 기독교 집안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산당이 집권을 하면서 할아버지는 순교를 당했고 아버지도 감옥에서 온갖 고생을 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가정은 한 사람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독 안에 감춘 것은 성경책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그 말에 감동을 받은 아들은 그때부터 공산주의를 버리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똑똑했던 아들은 유학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는 의사가 되어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려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 유일한 꿈은 복음이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중국에 다시 갈 것이라는 간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간증에 이들 부부는 큰 감동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큰 돈을 벌겠다는 자기들의 꿈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날 그 부부는 하나님께 헌신을 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살겠다고 말입니다. 얼마 후 모교인 연세대 회지가 그 집에 배달이 되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의 100주년 기념 사업에 대한 기사가 난 것입니다. 미국 선교사들의 헌신과 세브란스 박사의 헌금으로 세워진 병원이었습니다. 이제 그들도 낙후된 몽골에 세브란스 친선 병원을 세우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 병원에 처음으로 가서 자원봉사를 할 동문 의사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났습니다. 가능하면 부부이면 더 좋겠다는 내용까지 있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이 기사를 보고는 바로 그 대상자가 자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학교에 연락을 했고, 이들이 처음 자원 의사로 파송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들 부부를 LA에 있는 탈봇 신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 만났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이제 개척한 교회이지만 저희 교회가 파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몽골로 파송된 후 이들이 이루어간 간 역사를 말로 다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몽골에서 명예 시민이 될 정도로 몽골 국가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하던 몽골에 전염병을 몰아내는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몽골 의대생들을 복음으로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7년 후 중국 심양 의과대학으로 옮겨 간 그들은 동남아에서 유학을 온 500여명의 의대생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지금은 그들이 가르친 동남아의 의사들을 통해 그 나라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일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모든 기적과 은혜의 역사가 어디서 시작된 것입니까? “오늘 비가 오고 그러는데 수요 예배나 가볼까?”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어디서 은혜의 생수가 스며나올 지 모릅니다. 작은 시작, 작은 변화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