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덴버는 겨울이 긴편입니다. 11월부터 겨울이 시작되어서 3월 말까지 약 5개월 동안 겨울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역들은 3월이면 꽃도 피고 잔디도 파랗게 올라옵니다. 하지만 덴버는 4월 초순인 지금도 꽃 구경을 못하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도 쌀쌀해서 겨울 옷도 옷장에 넣어둘 수가 없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교회로 올 때 아직도 잠바 주머니에는 장갑이 그대로 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핸들이 차가워서 그 장갑을 꺼내 쓰기도 합니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온 편이었습니다. 지난 3월에도 큰 눈이 두 번씩이나 내렸습니다. 온 세상을 눈으로 덮어버렸습니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눈이 쌓인 곳은 20인치 이상 되기도 했습니다. 그 날 오후 3시에 교회에서 집으로 들어갔는데 도로에 다니는 차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조심 조심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다가서 거라지로 들어가려고 드라이브웨이로 올라가는데 차가 눈에 빠져서 꼼짝을 하지 않았습니다. 4륜 구동차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집 앞에 와서 차가 빠진 것이었습니다. 집에서 삽을 꺼내서 주변에 있는 눈을 치운 다음에야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이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 저기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직도 가끔 내리는 눈을 대지는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 지 모릅니다. 눈이 서서히 녹을 때 땅 아래에서는 그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모든 나무 가지들은 잎들을 모두 내어 주었습니다. 가지까지 올라오는 수액줄기도 다 막아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수액관이 열려 있는 것 같습니다. 뿌리에서부터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며칠 만 지나면 한껏 머금은 물로 푸른 잎들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매섭고 찬 바람 소리와 봄 기운이 있는 바람 소리는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겨울 바람은 그 소리가 더 앙칼지고 고성처럼 들려옵니다. 그러나 봄바람 소리는 아주 부드럽습니다. 작은 소리로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이해인 시인의 봄을 노래하는 시가 있습니다.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 몸으로 피워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매일 새소리를 듣고 싶다. 산에서 바다에서 정원에서 고운 목청 돋우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봄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나는 바쁘고 힘든 삶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의 은빛 날개 하나를 내 영혼에 달아주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조금은 들뜨게 되는 마음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더욱 기쁘게 명량하게 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유리창을 맑게 닭아 하늘과 나무와 연못이 잘 보이게 하고 또 하나의 창문을 마음에 달고 싶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생동감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아름다운 봄의 시입니다. 한 겨울에는 봄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봄은 어느 날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움추러들었던 우리 몸과 마음이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어깨를 활짝 펴고 하늘을 향해 뛰어 오르는 날이 바로 봄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깊은 겨울 속에서도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춥고 외롭고 지쳐있을 때 우리의 손을 더욱 굳게 잡아주십니다. 그리고 겨우 내내 우리와 같이 기다려 주십니다. 추운 겨운 매서운 사람이 불 때 우리는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귓가에 봄 소리를 들려주십니다. 희망과 꿈을 주시는 것입니다. 몸은 비록 추위에 떨고 있어도 영혼은 봄의 날개를 펼 수 있도록 말입니다. 봄이 오는 소리를 가장 선명하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바로 이사야 35장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 깨끗하지 못하는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리의 영혼이 봄을 경험하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입니다. 메마른 사막에서 물이 솟고, 풀한포기 없었던 황무지에 꽃이 만발하며, 그곳에서 동물과 사람들이 기뻐하며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만들어가시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도 이 봄에 이런 생명의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BBC 방송의 명작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살아 있는 지구’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중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뜨겁고 먼지 나는 불모지부터 장면이 시작이 됩니다. 동물들도 별로 눈이 띄지 않습니다. 간혹 한 두 마리가 힘없이 거닐고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도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동물들은 굶주려 있고 목이 말라 거의 미쳐있습니다. 한 떼의 코끼리들이 물을 찾아 절박한 몸짓으로 이곳 저곳을 헤매고 다닙니다. 그 중에 힘이 없는 코끼리들은 가다가 쓰려져 죽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 멀리서 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립니다. 앙골라의 고원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이 사막에 작은 물줄기를 내고 있는 소리입니다. 이때부터 화면의 속도가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 지 모릅니다. 순간 눈 앞에 기적이 펼쳐집니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곧 시내가 됩니다. 시내는 빠른 속도로 강이 됩니다. 큰 물줄기가 된 강은 바닥을 깊게 파내다가 결국은 흘러 넘쳐 사방으로 물이 흩어지게 됩니다. 그 메말랐던 사막과 광야에 물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강물이 닿는 곳마다 풀이 돋아납니다. 죽은 것만 같았던 나무들이 활짝 피어납니다. 갑자기 온 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메마랐던 대지가 햇빛에 반짝거리는 거대한 습지가 됩니다. 어디나 죽음이었는데 이제는 어디를 보아도 생명력이 용솟음치는 곳으로 바뀐 것입니다. 

  곧이어 그곳에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칼라하리가 한 때는 사막이었다는 어디서도 찾아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사막이 수중 놀이터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갈대가 무성하게 펼쳐집니다. 그 기슭을 따라 양서류 동물들이 즐비하게 노닐고 있습니다. 비비들은 마치 나들이 옷을 입은 차림으로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려는 듯이 뛰뚱뒤뚱 오가고 있습니다. 다리가 길쭉하고 부리가 가위처럼 생긴 새들이 얕은 물가에서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다가 번개처럼 빠르게 물고기를 건져 올립니다. 새의 입에 물린 물고기가 햇빛에 반사되면서 보석처럼 반짝거립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수중 놀이터의 장관은 바로 코끼리들입니다. 한 때는 메마른 사막에서 물을 찾아 지친 몸을 이끌고 있던 그 코끼리떼가 맞나 싶습니다. 그 같은 코끼리들이 수달처럼 물속에서 놀고 있습니다. 코로 물을 뿜어내면서 기쁨의 팡파르를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믿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불과 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아니 몇 주 전까지도 풀 한포기 없는 광야였습니다. 물 한 방울도 찾을 수 없는 깊은 사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죽었던 땅이 새로운 희망과 꿈의 땅으로 바뀐 것입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모습을 이렇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광경은 그 어디도 없을 것입니다. 

  에스겔 48장에도 똑같은 그림이 펼쳐집니다.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처음에는 발목에 차더니 무릎에 차기 시작합니다. 그 물은 허리에 차고 결국에는 수영을 할 수밖에 없는 큰 강물로 바뀝니다. 그 강물이 성전 밖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풀 한포기 나지 않았던 유대 광야로 그 물이 흘러가자 그 강 주변으로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결국 풍성한 각종 과일이 주렁주렁 열립니다. 그 물은 사해바다로 흘러들어갑니다. 죽은 바다, 생명체는 하나도 없는 바다가 사해바다입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나온 물이 사해바다로 흘러가자 물고기가 노닐기 시작합니다. 자취를 감추었던 어부들이 그 바다에서 다시 흥겹게 고기를 잡습니다. 죽음이 생명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봄입니다. 봄은 희망입니다. 봄은 생명입니다. 봄은 작게 시작하지만 큰 강을 이루고 큰 바다를 이룹니다. 이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오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