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은 만남으로 만들어져 갑니다. 만남은 보자기 안에 담겨 있는 비밀스런 보물과도 같습니다. 그것이 펼쳐지기 전까지는 무엇이 들어있는 지를 모릅니다. 만남은 우리의 눈을 열어줍니다. 새로운 만남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 속으로 이끌어줍니다.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이전에 알지 못했던 아름다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만남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활력을 얻습니다. 인생의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남을 통해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만남은 우리 안에 있는 가능성을 찾아가게 해줍니다. 특별히 축복된 만남들이 있습니다. 인생의 절망과 좌절의 순간에 찾아오는 만남입니다. 사방으로 막혀있는 길을 열어주는 만남입니다. 새로운 소망과 힘을 주는 만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축복된 만남은 식은 가슴에 불을 붙여 줍니다. 얼어붙은 감정을 녹여줍니다. 꺼져가는 등불을 다시 타오르게 합니다.


  헬렌 켈러와 설리반 선생님의 만남이 바로 이런 만남입니다. 1880년 알라바마에서 태어난 헬렌 켈러는 2살 때 겪은 열병의 충격으로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손으로 음식을 먹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엇이든 집어 던지는 야수 같은 아이로 자라갔습니다. 그런 아이가 설리반이라는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오랜 인내와 정성으로 헬렌을 키워냈습니다. 결국은 헬렌을 가르쳐서 하버드 대학에 입학을 시키고야 맙니다. 대학에서도 설리반은 강의마다 동행하면서 필기를 해주고 집에 돌아와서는 점자로 바꾸어주기까지 해주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거의 50년 간이나 설리반은 헬렌 켈러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헬렌 켈러가 전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된 것은 설리반과의 만남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가장 실력 있는 음악가 중의 한 사람인 스티비 원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조산아로 태어났습니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지만 산소과다공급으로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눈이 보이는 않는 가난한 흑인으로 무시당하고 차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에게 아무런 희망도 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수업 중에 교실에 쥐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교실은 순간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은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서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절대 소리를 내지 말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스티비 원더에게 쥐가 있는 곳을 찾아내 보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결국 스티비 원더는 쥐가 있는 곳을 발견했고 그 쥐를 잡게 되었습니다. 모든 분위기가 차분해 지고 수업을 다시 시작되는 자리에서 선생님은 이런 말을 스티비 원더에게 했습니다. “넌 우리 반의 어떤 아이도 갖지 못한 능력을 갖고 있어. 바로 너의 특별한 귀란다” 선생님의 이 따뜻한 한 마디가 스티비 원더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신에게는 남들이 갖지 않는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감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그 재능을 개발시켜서 미국 최고의 음악가 반열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스티비 원더에게 선생님과의 만남은 꺼져 가는 그의 인생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축복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 인생의 실망이 소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12제자 가운데 들던 사람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아주 가까이서 따르던 사람입니다. 제자들과도 친하게 지냈습니다. 주님이 고난 당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도 멀리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이틀 밤을 예루살렘에서 숨어 있었습니다. 주일 아침 날이 밝자 아무 미련 없이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이제 모든 것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대가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운명하시기 직전까지만 해도 기적이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셔서 대적자들을 진멸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 힘없이 운명하시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통해 이루려던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짐을 꾸렸습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7마일 떨어진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몰론 엠마오가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론지 떠나야만 하는 실패자였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머물 곳이 없었습니다. 더 있어야 하는 이유도 없었습니다. 꿈도 희망도 모든 잃은 방랑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고개를 떨어뜨린 채 실망하며 걷고 있는 그 제자들에게 주님이 다가오셨습니다. 처음에는 주님인줄 몰랐습니다. 예루살렘에 일어났던 일을 설명합니다. 주님에 대해 실망했다는 하소연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하소연을 끝까지 들으셨습니다. 불편해 하지도 않습니다. 다윗은 힘들 때마다 하나님에게 얼마나 불평을 쏟아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한 번도 불편해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지셨습니다. 다윗이 실망할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실망이 소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머리로만 듣던 말씀이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자기들 이야기를 다 하고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제자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머리로만 들었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씀이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심장박동이 빨라졌습니다. 말씀이 더 듣고 싶어졌습니다. 주님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날은 벌써 어두워졌습니다. 그때가지 이들은 자기들과 대화를 나누는 분이 주님이신 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지나가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것입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들었을 뿐입니다. 그것은 구약에 예언된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미 전부터 알고 있던 말씀입니다. 수없이 들었던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것은 이번에는 그 말씀이 가슴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만약 그전처럼 말씀을 머리로만 받아들였다면 부활한 주님을 만나는 축복은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다른 데로 가시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말씀을 더 들으려고 예수님을 붙잡지 않았다면 그들은 평생의 한을 남겨두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엠마오의 여관으로 억지로 끌여 들였습니다. 같이 저녁식사를 나누었습니다. 더 많은 말씀을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순간입니다. 말씀이 가슴을 뜨겁게 하는 순간 그 분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늘 듣던 말씀이 우리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세 번째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무기력하던 신앙이 활력이 넘치는 신앙으로 바뀌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 그들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밖은 이미 깊은 어둠에 잠겼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어둠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는 다시 7마일입니다. 이미 하루 종일 걸어서 피곤해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피곤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여전히 공포의 도가니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자들의 손에 묻은 피가 아직 마르지도 않았습니다. 언제 어떻게 그들에게 잡힐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숨에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습니다. 숨어 있던 11명의 제자들을 만납니다. 자기들이 엠마오 길에서 만났던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실망하던 사람들입니다. 얼굴에 깊은 수심이 가득 찼던 사람들입니다. 무기력해져서 아무 일도 못할 것 같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보고 들은 것을 확신 있게 증거합니다. 활력이 넘치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중국 한자 중에 ‘심기혈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마음이 있으면 ‘기’가 생깁니다. ‘기’는 곧 에너지를 가리킵니다. 그 에너지가 혈액을 모아서 일을 이루게 한다는 뜻입니다. 마음 가는 곳에 에너지는 반드시 흐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없어서 힘이 빠지는 것입니다. 마음만 있다면 에너지는 만들어집니다. 두 제자들이 어떻게 갑자기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에게 마음을 뜨겁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뜨거운 마음이 바로 넘치는 에너지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 앞에 문이 아무리 많아도 열지 않으면 모든 것이 벽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일어나서 열면 모든 것이 문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막혀 있는 벽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열 수 있는 문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오는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