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항구에 커다란 상선이 정박해 있었습니다. 선원들은 삼삼오오 모처럼의 안식과 쉼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장의 아들은 원숭이와 어울려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숭이가 소년의 모자를 낚아채 돛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소년은 모자를 빼앗기 위해 정신 없이 원숭이를 뒤쫓았습니다. 소년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발 밑을 내려다 본 소년은 겁에 질려 더 이상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년은 공포에 몸을 떨며 밧줄을 잡은 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매우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는 단 1분도 견디기 어려운 듯이 보였습니다. 그때 선장이 높은 돛대 위에서 울고 있는 아들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습니다. “아들아 밧줄을 놓고 빨리 바다로 뛰어내려라. 그렇지 않으면 이 총으로 너를 쏘겠다.” 소년에게 아빠가 이때처럼 무서운 적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정말 자기를 쏠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자기에게 저러실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빠의 태도가 워낙 강경해서 소년은 두 눈을 감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로 뛰어내렸습니다. 모든 겁과 두려움, 아빠에 대한 아쉬움이 순간적으로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물 속에서 올라왔을 때는 이미 아버지의 넓은 품에 안겨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비로서 소년은 아빠에게 미안한 듯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Thank you. 아빠. 그때는 아빠가 저를 정말 쏘시는 줄 알았어요.”

 

 우리는 종종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이해를 시키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무뚝뚝합니다. 정말 자녀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갈 때도 많습니다. 특별히 옛날 아버지들은 더했습니다. 버스가 오는 정거장까지 그렇게 먼 길을 짐을 날라다 주시면서도 다정하게 말 한 마디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아프셔도 자녀들 앞에서 아픈 척을 하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슬퍼도 눈물 한 번 흘리시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약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일까 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자기의 마음을 쉽게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면 그 가슴이 그렇게 넓게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둘째는 왠지 모르게 집에 있는 것을 불편하게 느꼈습니다. 아버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형에 대해서도 아주 반항적이었습니다. 언제까지나 간섭을 받아가면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밖에 나가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둘째 아들은 몸은 집에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밖에 있었습니다. 그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아무리 잘해주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들의 마음은 점점 아버지에게서 멀어져만 갔습니다.


  집을 나가기로 작정을 한 둘째 아들이 하루는 아버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 저는 이제 집을 나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제 나가면 다시는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에게 주실 유산을 미리 주십시오.” 일반적으로 유대의 유산 상속법은 아들이 여럿이면 큰아들에게 절반을 줍니다. 그리고는 다른 아들들에게는 나머지 절반을 가지고 균등하게 나누도록 되어있습니다. 아들이 둘인 경우에는 큰아들에게 3분의 2를 주고 작은아들에게는 3분의 1를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산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동안에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에게 죽으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직도 아버지가 시퍼렇게 살아 계시는데 어떻게 유산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도 중동의 시골지역에 가서 이 비유를 설명해 주면 그들은 굉장히 화를 낸다고 합니다. 그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망나니의 짓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을 보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기 시작합니다. 다시 한번 아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가 말을 하기도 전에 난동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는 유학까지 한 대학교수가 유산을 차지하려고 아버지를 불로 태워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아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무거운 마음으로 재산을 정리해서는 아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을 집에서 떠나가게 했습니다. 아들이 언덕을 넘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자 결국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하염없는 눈물을 터뜨립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아버지의 눈물을 보지 못합니다. 그는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한 환희와 기대만이 그의 눈에 어른거릴 뿐입니다. 그의 손에 잡히는 두둑한 돈주머니만이 그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우리 중에 어떤 분은 이런 생각을 할 지 모릅니다. “잘못될 것이 뻔한데 왜 아버지는 아들을 막지 못했습니까? 말로 해서 안되면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아들을 눌러 앉혀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론적으로는 맞습니다. 누구나 문제를 그렇게 해결해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세상에 문제 있는 가정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아무리 집에 가두어 두어도 언젠가는 또 나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막기 위해서 선악과 주변에 철조망을 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담장만 높게 치셨더라도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잠시 뿐입니다. 죄에 대한 유혹은 막고 안 막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이 일단 유혹을 받아들이면 담장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들을 내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지금은 아픈 마음으로 아들을 집에서 떠나 보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영원히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길임을 간절히 기대하면서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들에게는 돈주머니가 넉넉했습니다. 돈 냄새를 맡은 무리들이 그의 주변에 끝도 없이 몰려듭니다. 친구들과 함께 그는 먹고 싶은 것은 마음껏 먹었습니다. 가고 싶은 데는 어디든지 갑니다. 가지고 싶은 것은 어떤 것도 가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맙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을 나오기를 잘했다고 그는 생각합니다. “그 지긋 지긋한 집, 왜 그렇게 간섭이 많은지. 이것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 이제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든지 누리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리고 집에 대한 기억은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결심을 합니다. 둘째 아들에게는 매일이 잔치의 연속입니다. 밤마다 흥청망청입니다. 그러나 자기 주머니에 항상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돈이 갑자기 얇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정신 좀 차려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언제 썼는지도 모르는 청구서들이 날아들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돈이 다 없어졌습니다. 끝까지 내편이 되어줄 줄 알았던 친구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급한 김에 나가서 노동이라도 해볼 생각을 하지만 가뭄이 전 나라에 닥쳐왔습니다. 일거리가 없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이제서야 아버지 집을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아들이 이렇게 사는 동안 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들은 비록 아버지를 생각에서부터 지워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비어 있는 아들의 방을 볼 때마다 그에 대한 기억이 몰려옵니다. 하루도 아들 생각에 밤잠을 편히 자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아들이 돌아올까 봐 수저 한번 힘있게 들지를 못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떠난 지평선을 눈물로 바라보던 어느 날 오후 갑자기 조금만 점 하나가 나타납니다. 그는 아들임을 직감하고는 그대로 달려나갑니다. 아들을 덥석 끌어안습니다. 입을 맞춥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합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간섭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아버지를 생각하는 순간이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아버지 날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겉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아도 깊습니다. 말로는 냉정한 것 같아도 속은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눈물은 흘리지 않아도 마음에서 흐르는 눈물은 강을 이루고 있습니다. 탕자를 사랑하고 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오늘 모든 아버지의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