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이 싸움닭을 훈련시키는 기성자라는 사람에게 닭 한 마리를 훈련시키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열흘이 지나자 왕은 “이제 싸움을 시켜도 되겠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기성자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멀었습니다. 저돌적인 살기를 드러내며 싸울 놈만을 찾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 열흘이 지났습니다. 왕이 닭을 훈련시키는 기성자가 또 물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거나 그림자만 스쳐도 난리를 칩니다” 왕은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참기로 했습니다. “그래. 훈련을 철저히 잘 시키게” 그렇게 열흘이 또 흘렀습니다. “지금은 됐는가?” 그러나 기성자의 대답은 여전했습니다. “아닙니다. 다른 놈들을 노려보거나 지지 않으려 거품을 물고 있습니다” 

또 한 번의 열흘이 지나자 왕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훈련이 다 됐겠지?” 그 말투에는 더 이상은 참기 어렵다는 뜻이 들어있었습니다. 그제서야 기성자의 얼굴에 살며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어떤 놈이 아무리 소리치고 발광을 해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동요하지 않는 것이 멀리서 보면 마치 목계(나무로 깍아 만든 닭)과 같습니다. 어떤 닭도 이 모습을 보면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곧 꼬리를 내리거나 도망을 칠 것입니다.

바로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목계’의 고사입니다. 진정으로 잘 싸우는 싸움닭이라면 함부로 전투적인 모습을 내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잔잔한 평정심이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일들이 매일 발생하는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고사입니다. 조금 어려운 일만 생기면 마치 큰 일이 벌어진 것처럼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누가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소리를 한 마디만 해도 분이 나서 참지 못해서도 안 됩니다. 목계와 같이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세상의 어떤 으르렁거림에도 끄떡하지 않는 ‘초연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 중 이 목계와 같이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은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중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을 위치임에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들 중에 다윗만이 목동이었습니다. 당시에 양을 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초목이 많은 지역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지역들이 메말라 있었고 돌이 많았습니다. 양을 먹이려면 먼 곳으로 돌아다니면서 풀을 찾아야 합니다. 적게는 일주일 많게는 한 달 두 달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양과 함께 들판에서 생활하는 것이 보통 목자의 삶이었습니다. 사회적 신분에서도 목자는 아주 낮은 계층에 속했습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직업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오죽하면 목자는 법원에서 증인으로도 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디를 가나 거짓말을 잘하고 신뢰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에게 그런 목자의 일을 시킨 것은 그가 형제들 가운데서도 따돌림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였습니다. 가족들에게 그런 하잖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어린 다윗의 마음을 얼마든지 흔들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집을 뛰쳐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런 취급에 동요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목자의 생활을 즐겼습니다. 얼마나 마음을 다해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지 모릅니다. 양들과 함께 들판에서 잠을 자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맹수가 달려들 때 양들을 지키기 위해 물맷돌 던지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억지로 목자의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좋아서 사명으로 감당한 것입니다. 그가 집안에서 머슴 취급을 하는 것에 화를 내고 대충 목자의 일을 감당했다면 골리앗을 물리치는 역사적 사건은 그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 나에게 어떤 취급을 하든 신경쓰지 않았기에 그는 자기가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골리앗을 그 물맷돌로 물리치게 하심으로써 나라를 지키는 영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골리앗을 물리친 것만이 목자 시절의 유익이 아닙니다. 그가 양을 치는 목자의 일을 감사해 하고 즐겼다는 것은 그가 쓴 시편들을 통해서 얼마나 생생하게 드러나는 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애송하고 있는 시편 23편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자기가 목자로서 양을 돌볼 때 하나님이 바로 이 목자와 같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양은 목자가 없이는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입니다. 겁이 많습니다. 불안해합니다. 얕은 시냇물 조차도 건너지를 못합니다.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양을 두렵게 하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그런 연약한 양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바로 이런 양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일 일을 모릅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견뎌야 할 지를 모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시상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때 만들어진 것이 그 유명한 목자 시편입니다. 다윗은 그 들판에서 양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그의 믿음과 세밀한 감수성은 그 시절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목자 시절에 연마된 믿음은 그가 사울에게 쫓기는 순간에도 빛을 발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쫓기는 중에도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돌보고 위로하는 것을 보세요. 민감한 감수성은 주변 사람들을 평안하게 하고 위로하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목자 일을 시킨 것에 계속 불만을 품고 흔들리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면 그에게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초연함과 평정심이 그를 큰 그릇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었던 일은 목자 일을 시킨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울 왕을 버리시고 그 다음 왕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사무엘에게 명령을 하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이새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여덟 아들들 가운에서 한 명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새는 사무엘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자기 집을 방문한다는 것에 대해 전갈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흥분되는 일입니까? 자기 아들 가운데서 왕이 나온다니 너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오기 전에 아들들을 모아 놓고 교육을 단단히 시키지 않았을까요? 아들들 역시 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큰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다윗에게만은 그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 다윗은 집에 없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는 중이었습니다. 아무리 막내 아들이지만 그에게도 알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어떤 일에 자기만 빼놓은 것에 대해 분노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분을 삭이지를 못합니다. 중요한 일을 의논할 때 나의 의견을 들어주지만 않아도 속이 상합니다. 왕에게 기름을 붓는 대상이 된다는 자체만도 대단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다윗은 빼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이새의 가정에 어떤 아들이 있는지조차도 모릅니다. 7명의 아들이 그의 앞으로 하나 하나 다가올 때도 그들에 대해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들이 다가왔을 때 사무엘은 그의 건장한 풍채를 보고 하나님이 정하신 왕이라고 생각해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7아들이 다 똑같은 방법으로 지나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들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누군가를 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제서야 이새에게 묻습니다. 아들이 더 이상은 없느냐고 말입니다. 그때 이새는 마지 못해 대답을 합니다. 막내가 있기는 하지만 그는 지금 양을 치고 있고, 그는 볼 필요도 없다고 말입니다. 

이런 사실을 다윗은 나중에서야 알게 됩니다. 어떻게 다윗만 그 자리에 빼놓을 수 있는 것입니까? 펄펄뛸 수 있는 순간입니다. 마치 자기를 투명인간 취급한 것이라고 왜 생각이 안들겠습니까?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그 일에 마음이 흔들렸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형들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내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사울을 피해 도망다니는 중에도 가족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십시오. 다윗 때문에 가족들이 다칠 수 있었습니다. 혼자 피신을 다니는 것도 힘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보모와 형제들을 나몰라라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모압 왕에게까지 부탁을 해서 가족들을 끝까지 보호하는 것을 봅니다. 평생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아픔이요 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평정심이 얼마나 드러나는 지 모릅니다. 조그만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그냥 두면 마음에 걷잡을 수 없이 세찬 풍랑이 몰아닥칠 것입니다. 목계와 같은 평정심을 갖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