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어느 가게에서 우연히 한 미국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골든 시티에 살고 있는 69세의 은퇴자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자신은 과학자로써 뉴욕 주정부의 공무원으로 평생을 일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쓴 논문만도 20여편이 된다는 자랑 아닌 자랑도 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저에게 낯선 질문 하나를 했습니다. 저보고 은퇴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늘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는 중국 선교의 일을 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는 너무 좋겠다고 하면서 자기의 하소연을 했습니다. 은퇴한 지 7-8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쇼셜 시큐리티가 나오기 시작하는 62세에 은퇴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열심히 일을 했고 직업에 대한 성취도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은퇴 후의 삶이 너무 단조롭다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아내와 함께 마켙에 가고 아내가 가는 곳 몇 군데 라이드를 해주는 것이 전부라면서 짧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아마 그도 한참 일을 할 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은퇴생활인 것 같았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처음에 은퇴하고 나서 몇 군데 다녀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행도 그리 만족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 분과 헤어지고 난 후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동안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이야기는 아닙니다.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나시는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평균 수명은 전에 비해 훨씬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매년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100세 인생이라는 말이 벌써 20여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년이 되어 은퇴를 하고서도 최소한 30년은 넘게 더 살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는 하지만 막상 은퇴하기 전까지 세밀한 노후 생활을 준비한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 나이가 되었고 전과는 전혀 다른 하루 일상이 낯설기만 한 것입니다. 지난 주일 오후 선교기금마련 골프대회에서 은퇴 연령이 이미 넘으신 어느 집사님과 대화를 한 것이 있습니다. “집사님, 연령도 되셨는데 언제 은퇴하실 생각이세요?” 그 분 대답이 아직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은퇴하면 뭐해요. 할 일도 없는데…” 하셨습니다. 그 집사님 만의 대답이 아닙니다. 은퇴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우리 모두의 대답일 것입니다.

은퇴 후에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건강과 할 일입니다. “오래 살고 싶으세요?”라고 질문을 하면 당연히 “Yes”라고 대답할 것 같은데 의외로 “No”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래 살아봤자 추해지기만 하지… 병들고 늙어봐요. 얼마나 초라한지… 거기다 돈까지 없어봐요.” 우리 시대는 분명히 장수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당연히 오래살기를 바라고 기뻐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장수에 대해 오히려 고민이 많고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습니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보면 비슷한 고민이 나옵니다. 불멸의 인간 스트룰드브루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걸리버는 오래 살게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90세가 되면 그들은 치아와 머리카락이 모두 빠진다. 음식의 맛을 구별할 수 없지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맛도 모르고 식욕도 없으면서 먹고 마신다. 그들의 지병은 악화되거나 차도를 보이지 않고 여전히 계속된다. 말을 할 때 그들은 사물의 일반적 명칭과 사람들의 이름, 심지어는 가장 친한 친구들, 가장 가까운 친척들의 이름조차 잊어버린다” 걸리버 여행기는 조나단 스위프트가 1726년에 출간한 소설입니다. 의사 걸리버가 선의(배안에서 근무하는 의사)로 취직해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쓴 기행문 형식의 소설입니다. 무려 3백년 전 소설이지만 요즈음 장수시대의 모습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 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병은 자연히 따라오는 법입니다. 문제는 큰 질병이 없는데도 몸이 제대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허약곡선이라고 합니다. 지구촌에서 고령화 사회를 가정 먼저 맞이한 일본에서는 이 허약곡선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40에서 75세까지를 자립이라고 명명을 합니다. 특별한 병이 없는 한 모든 활동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별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습니다. 75세에서 80살까지를 허약체질이라고 합니다. 병은 없는데 몸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계단도 잘 오르내리지를 못합니다. 야외활동도 선뜻 나서지를 못합니다. 집에만 머물게 되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것입니다. 80세에서 90세까지를 허약화라고 말합니다. 병이 없기 때문에 병원에 가지는 않습니다. 요양원이나 간병을 받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삶의 의욕도 나지 않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내 몸 하나 지탱하지를 못하는데 누구를 도와주거나 거들 일도 없습니다. 삶의 의미가 없는 기간이 바로 허약화의 모습입니다. 90세 이상으로는 양로원이나 양로병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바로 허약곡선입니다. 은퇴하고 나이가 들면 당연히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운동도 해야 하고 음식도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 허약곡선을 건강곡선으로 바꾸는 것이 100세 시대의 해법인 것입니다.  

허약곡선이 건강곡선으로 바뀌어가는 지름길이 바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일을 놓는 순간 정신적, 신체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희 아버님도 70세 목회에서 은퇴하신 후에 많은 수술을 하셨습니다. 은퇴 전까지는 건강에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병원에 입원하신 적도,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은퇴하신 다음해부터 뇌수술, 심장수술을 연차적으로 하셔야만 했습니다. 그 후에는 전립선 암 투병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리 몸은 어느 정도의 긴장이 필요합니다. 긴장을 놓고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짧은 기간만 유익합니다.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것이 진정한 휴식입니다. 무슨 일이든 매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적당한 일을 할 때 정신도 맑아지고 신체도 힘을 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72년간 MTA 버스 청소부로 일하다가 은퇴한 지 한 달만에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아더 윈스턴의 이야기를 기사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클라호마 농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버스 기사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인종차별로 그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버스 청소부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렇게라도 버스를 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려 72년간 그 일을 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아내가 사망했을 때 하루를 빼고는 단 한 번도 결근이나 지각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치 루소의 글을 읽다가 한 번 늦은 때를 빼고는 시계보다 정확히 산책을 했던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간트처럼 말입니다. 아더 윈스턴은 은퇴 말년까지 어찌 보면 하찮게 보일 수도 있는 청소 일을 당당하고 자신에 찬 모습으로 즐겁고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남들처럼 특별히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사람들은 그의 조언을 듣기 위해 늘 몰려들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인생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장수의 비결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쉬지 않고 일하는 것입니다” 30년째 같은 차를 타고 출근한 그는 빚을 져가면서 비싼 차를 타는 것을 몹시 안타깝게 여졌습니다. 연방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 역사상 그 처럼 오랫동안 일한 직장인은 없었다고 합니다. MTA에는 그를 기념해서 그가 일하던 버스 야드 이름을 아더 윈스턴 야드라고 명명했습니다. 큰 부를 쌓거나 이름을 날리거나 획기적인 업적을 이루는 것만이 성공적인 삶은 아닌 것입니다. 아더 윈스턴처럼 지극히 평범한 일생일지라도 얼마든지 값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상 제조업자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상당히 부유한 집안의 상속자였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여행 중에 하란에서 죽는 것을 보면 가업을 이어받아서 많은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생의 가장 정점에 서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전혀 낯선 땅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해서 모든 삶의 기반을 버리고 가나안으로 갑니다. 바르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한 결단을 내리는데 75세가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는 75세에 새로운 시작한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후 100년 동안 하나님의 종으로 충실한 삶을 살다가 숨을 거두게 됩니다. 100년 간의 가나안에서의 삶이 결코 쉽거나 평탄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편한 것보다는 순종을 택했습니다.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삶에 기준이었습니다. 마지막 우리 인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하시라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순종이 있을 때 우리의 노후는 건강과 가치를 지닌 멋진 기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