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에서 온 유대인들에게 쫓기던 바울은 베뢰아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 최남단 도시인 아테네로 가게 된다. 아테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서 이 도시의 역사는 무려 3,400년에 이른다. 고대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도시 국가였다. 스파르타의 용맹은 지금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스파르타는 강인한 정신력만 남아 있을 뿐 후대에 남겨놓은 유산이 거의 없다. 그러나 아테네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갔다. 국가를 지키는 단순한 힘외에도 예술, 학문, 철학, 문학 등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유산을 만들어갔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들이 마음껏 제자들을 키우며 학문을 정진시켜 나갔다. 또한 호모와 헤로도투스 등 문학과 역사의 거장들도 많이 배출해냈다. 또한 아테네에서는 BC 6세기부터 평민세력이 등장하면서 솔론을 통한 민주주의 개혁이 일어난다. BC 5세기 걸출한 지도자인 페리클레스에 의해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게 된다. 그 이후 2,500년의 역사의 수레바퀴속에서 민주주의를 일구어낸 나라들은 모두 아테네 민주주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아테네는 서구 유럽 문명의 요람이며 뿌리이며 민주주의의 고향이다. 사도 바울이 바로 이 아테네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오직 복음의 횃불 하나를 들고서…..

아크로폴리스
  그리스 도시국가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가 바로 아크로폴리스이다. ‘아크로’는 ‘높다’라는 말이며, ‘폴리스’는 ‘도시’라는 뜻이다. 결국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곳에 있는 도시’라는 말이다. 아테네나 스파르타 등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은 자기 지역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도시를 세웠다. 물론 모든 시민들이 그곳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시민들은 아크로폴리스 아래에 있는 지역에서 살았다. 평상시에는 사제들이나 일부의 군인들, 관리인들이 살았다. 하지만 도시의 대부분의 중요한 행사들은 아크로폴리스에서 행해졌다. 아크로폴리스에는 그 도시를 지켜준다고 믿었던 신전이 세워져있고, 시민들은 전쟁이 나면 마지막으로 그곳에 들어가서 결사항전을 하였다. 절벽위에 세워진 도시였기 때문에 적군을 방어하기에는 그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었을 것이다. 이번 성지순례팀이 가서 본 아크로폴리스도 현관을 제외한 3면이 90%가 넘는 절벽위에 세워진 것을 보았다. 누가 과연 이곳을 침범할 수 있을까 의문이 갈 정도였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BC 6세기에 건설이 되었다. 아테네는 대부분 지역이 평지이다. 그 평지 한 가운데 150m 높이의 높은 언덕이 있는데 그곳에 아크로폴리스가 건설된 것이다. 아테네 시민들은 어느 장소에서건 아크로폴리스를 바라볼 수 있었고 마음의 의지가 되었던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
  아크로폴리스의 현관격인 프로필라이아 문을 지나게 되면 오른쪽으로 커다란 바위 위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의 웅장한 모습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이 파르테논 신전은 페르시아와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가 가장 전성기였던 BC447년부터 BC438년까지 약 10년 간에 걸쳐서 지은 건축물이다.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과 전쟁의 신인 아테나 중에 누구를 아테네의 신으로 정할 것인가를 놓고 경합을 벌여 아테나로 결정이 되었다. 조그만 도시국가 아테네가 거대한 제국인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전쟁의 신인 아테나를 기념하기 위해서 지은 것이 바로 파르테논 신전인 것이다. 그 동안 수 많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 일부가 파괴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의 원형이 남아있어서 지금도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길이는 약 70m이며 폭은 31m이다. 10.45m 높이에 46개의 기둥이 세워져있다. 또한 신전을 보다 웅장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그 당시에 이미 착시효과를 이용했다고 한다. 실제로 가장자리에 세워진 기둥들은 한 가운데 세워진 기둥들보다 더 가까운 간격으로 세워져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세계 문화 유산 제1호로 등재되어있다. 세계 도처에 있는 많은 문화 유적들 중에서 제1호로 선정된 이유는 세계 역사의 중심지였으며, 문화, 철학의 출발지였던 아테네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모든 고대 유물들은 왕이나 나라에 의해서 건축되고 세워졌지만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모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노동을 제공하거나 물자를 공급하여 건축되어진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 각국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들은 거의 모두 파르테논 신전을 본따서 세워졌다. 그만큼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다.

아레오바고 언덕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 바로 아래 쪽에 순 대리석으로 된 작은 바위 산이 하나 있다. 그 언덕의 이름이 바로 아레오바고이다. 이 언덕은 재판관과 원로들이 모여서 역사, 철학, 종교에 관한 문제들을 토론하고 규명하던 곳이다. 죄를 지은 신들에 대한 최초의 재판이 열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리스 철학의 시조인 소크라테스도 이곳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판결을 받았다. 유명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인 제논은 이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토론을 하거나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는데, 이것 때문에 그의 제자들은 ‘스토아 철학자’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지금도 그리스 대법정을 ‘아레오파고스’라고 부르고 있어서 그 역사적 유래가 얼마나 뜻깊은 지 모른다.
  아테네는 돌들이 참 많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에는 지하에 식당이 있는데 그곳으로 내려가다가 유리관 속에 보관되어 있는 돌들을 보았다. 가까이 가서 안내문을 읽어보니 BC 462년 아테네의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가 아테네를 방어하기 위해 성벽을 쌓았는데 그 중의 일부라는 설명이 있었다. 바로 그 성벽 위에 세워진 호텔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할 뿐 아니라 호텔을 광고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돌이 채석장에서 운반될 때마다 이 도시에 새로운 신이 하나씩 생긴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록 아테네는 신상들이 아주 많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져 있는 단도 보게 되었다. 바울이 아테네에 도착해서 처음 느꼈던 심정이 어때했을까? 물론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문화 유산들로 남아있지만 사실은 모든 우상들이었던 것이다. 바울은 도시 전체가 잡신을 섬기는 우상들도 가득차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의분을 느꼈다. 그리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솟아오르게 된 것이다. 바울은 500마일이 넘는 고된 항해에도 불구하고 쉴새 없이 회당으로 시장(아고라)으로 달려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급기야 그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고 재판을 하는 이 아레오바고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다. 그는 언덕 위에 서서 아래에 가득 모여 있는 에피큐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했다. 
  우리 모든 순례팀원들이 바울이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했던 아레오바고 언덕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바울이 2천년 전에 증거했던 말씀을 읽고 합심해서 뜨겁게 기도했다.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정과 헌신 그 수고를 우리도 이어받게 해달라고 간절히 간구했다. 참 은혜가 되는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스토아 철학자들과 그 자리에 있던 아테네 시민들은 바울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새로운 가르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쉽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도 했다. 물론 그 복음을 듣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영접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레오바고 시의회의 의원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와 그 밖에 몇 사람이 더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단 몇 사람으로 시작된 아테네 복음 전파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디오누시오는 그 날 가족들과 함께 바울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나중 박해기간에 순교당했지만 복음에 대한 열정은 바울을 꼭 빼어닮았었다고 한다. 그는 아테네 그리스도인이 1호가 된다. 오늘날 아테네의 그리스도인(정교)은 무려 98%가 넘는다. 지금 그는 그리스 정교회의 성인으로 추대되어있다. 바울의 복음을 듣고 디오누시오를 비롯한 몇 사람이 주님을 영접했지만 한 사람을 변화시킨 것이 결국은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꾸어 놓게 된 것이다. 지금도 매년 사도바울 기념일인 6월 29일에는 이 아레오바고 언덕을 온 시민들이 가득메운다고 한다. 그 날은 바울이 2천년 전 이곳에서 설교를 했던 사도행전 17:22-31을 온 시민들이 같이 읽고 설교자의 설교를 듣는다. 한 번 기회가 된다면 6월 29일 이 아레오바고 언덕을 다시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