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가 있습니다. 절대로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암담한 시기가 오는 법입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욥은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욥3:26). 욥은 자기에게도 인생 최악의 날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막다른 골목을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큰 그림을 한 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 이야기는 죽음과 무덤, 부활의 3막극입니다. 지금 우리가 죽을 것 같고, 무덤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지만 낙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죽음과 무덤 후에 오는 부활의 승리를 기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절대 실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황무지에서 열매가 맺힙니다. 묶었던 종들이 풀려납니다. 잃어버렸던 약속의 땅을 결국은 찾습니다. 성전을 다시 재건합니다.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는 메시아가 나타납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죽은 자들이 일어납니다. 영원한 천국이 펼쳐집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이 왜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을까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최악의 시기가 올 수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놓인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바로 성경입니다. 하나님 만이 우리를 그 절망에서 건져주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잘 풀리지 않는 인생 숙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풀리지 않는 숙제는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고민입니다.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내에 대한 배려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둘이서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결국 엘가나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둘째 부인을 맞이하게 됩니다. 둘째 부인 브닌나는 엘가나의 집에 들어오자 마자 자식들을 줄지어 낳기 시작합니다. 온 집안의 관심이 온통 브닌나에게만 쏠리게 됩니다. 한나에게는 말도 다할 수 없는 절망감이 몰려왔을 것입니다. 아이를 가지려고 왜 노력하지 않았겠습니까? 남편도 열심히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좋은 음식도 먹고 효험이 있다는 약도 먹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소용이 없습니다. “남은 아이를 잘도 낳는데 나는 왜 이럴까?” “왜 내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을까?”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브닌나 품에는 자식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한나에게도 아무 자식도 없습니다. 결국 한나에게는 열등감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남은 많은데 나는 하나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결국 나는 저 사람 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은 절대 가만히 참고 있지 않습니다. 참는 것 자체가 열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한나를 보십시오. 참지 않습니다. 때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닙니다. 시도 때도 없이 웁니다. 대성통곡을 합니다.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가족들에게 가장 걱정을 끼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먹지 않는 것입니다. 애들도 화가 나면 먹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요구 조건이 들어지지 않으면 먹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설교가인 찰스 스윈돌의 친구 중에 아주 특별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얼굴 한 쪽 면이 붉은 반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반점은 코와 입술, 목에서도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보는 이마다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보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아주 밝고 명랑했습니다. 얼굴에 나 있는 반점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찰스 목사님은 어느 날 용기를 내서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우리 아버지 때문이야!”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너의 얼굴은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천사가 네게 키스를 했음이 틀림없어. 얘야, 너의 이 반점은 아빠를 위한 표란다. 네가 내 아들임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지. 하나님께서는 네 얼굴에 표를 남기셔서 네가 내 아들임을 언제나 상기시켜 주신단다. 너는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하고 특별한 아이란다.” 그 친구는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기 얼굴에 반점이 없는 사람들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우리가 남들보다 갖지 못한 것은 우리가 못나서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실 일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 풀리지 않는 숙제는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교우가 저에게 이런 기도부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의 따님이 직장을 다니는데 바로 위에 있는 상사가 그렇게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를 올려도 얼마나 따지는지 밤잠을 자지 못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직장도 마음에 들고 보수도 괜찮은데 그 한 사람 때문에 너무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만약 직장을 그만 둘 계획이 아니라면 최대한 그 상사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했습니다. 힘들어도 한 번 볼 것을 두 세 번 보라고 했습니다.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보고서도 만들고 일을 완전하게 처리하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그 상사가 좋아서도 아니고 일을 못해서도 아닙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하나님이 다른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상사를 옮겨줄 수도 있고, 본인이 다른 부서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 일을 처리하는 능력은 더 커져서 인정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생각나는 대로 열심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한 두 달 정도 지났을까요? 기도 부탁을 한 분이 다시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기도 응답이 되었습니다.” 괴롭히던 상사가 다른 근무처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자리를 따님이 들어갔습니다. 더 높은 보스가 사실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갈등을 해결하는 법도 주시했던 것입니다. 그 사이에 일에 대한 능력이 커져서 오히려 직급이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사실 모든 관계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다른 생각,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이 힘들어서 하던 일을 그만 두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갈등 때문에 그만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갈등이 없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갈등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을 성숙시키기 때문입니다. 갈등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갑니다. 또한 갈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키가 190cm 가 넘는 아버지를 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그와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자 친구의 아버지를 볼 때마다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 아버지의 보폭이 유난히도 짧다는 것입니다. 그런 키라면 성큼 성큼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주 잔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하지만 여자 친구의 어머니를 보고는 그 의문점이 풀렸습니다. 어머니의 키는 150cm 도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평생 어머니의 보폭에 맞춰 걷는 법을 배웠던 것입니다. 같이 살려면 보조를 맞춰 걷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김재진의 ‘섬’이라는 짧은 시가 하나 있습니다. “배가 정박할 수 있을 땐 섬이다. 그러나 배가 부딪쳐 깨어지는 순간 그것은 암초가 되고 만다.” 우리는 서로가 정박할 수 있는 섬이 되어야 합니다. 가까이 왔을 때 배를 깨뜨리는 암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배를 안전하게 받아주는 항구가 되어야 합니다. 

  잘 풀리지 않는 숙제는 오직 하나님 만이 풀어주실 수 있습니다. 야곱에게 영원히 풀리지 않았던 숙제는 형 에서였습니다.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야곱을 만나러 옵니다. 사실 야곱을 죽이겠다고 온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을 보는 순간 그를 얼싸안고 울고 맙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그의 완고한 마음을 무너뜨리셨습니다. 20년 동안 칼을 갈았던 그의 분노를 눈 녹듯이 녹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지혜가 아닙니다. 그가 가진 재물 때문도 아닙니다. 다른 누군가가 도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하신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우리를가로 막고 있습니까?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아픔은 어떤 것입니까? 가족과 이웃과의 갈등이 너무 깊어서 전혀 손을 못쓰고 있지는 않은지요? 야곱처럼 하나님 만을 붙잡으면 됩니다. 비록 허벅지 관절이 부러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으면 됩니다. 그때 인생의 풀리지 않는 숙제가 하나님 앞에서 해결되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