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무려 365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전 노장인 여호수아도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는지 모릅니다. 모세를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것도 두려워했습니다. 여리고 성을 앞에 두고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뛰어났던 다윗도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누구를 무서워하리오” 다윗이 늘 고백했던 말입니다. 그만큼 두려움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두려워했습니다. 부활주신 주님이 제자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하신 첫 마디가 “두려워하지 말라”였습니다. “나는 아무 두려움도 없습니다”라고 자신만만해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딘 마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보여주시오. 그러면 내가 심하게 얻어터진 바보를 보여주겠소” 바보나 두려움이 없다고 말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안전에 대한 걱정과 불안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크게 두려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롯을 구출하기 위해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동맹군과 전쟁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대 승리였습니다. 엄청난 전과를 올렸습니다. 조카 롯을 구출했습니다. 소돔 사람들도 모두 구출했습니다. 빼앗겼던 재물도 모두 찾아왔습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소돔 왕이 발 벗고 나와 맞이할 정도로 아브라함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습니다. 무명의 인사가 갑자기 가나안 땅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소돔 왕도 다시 소돔으로 갔습니다. 곳곳에 걸렸던 아브라함을 축하하는 현수막도 다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때 아브라함에게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지금 누구와 싸운 거지?” 바쁠 때는 몰랐습니다. 롯을 구하겠다는 의분이 일어날 때는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군사들을 소집했고 밤새 달려갔습니다. 롯을 구하는 순간에도 몰랐습니다. 소돔 왕을 만났을 때도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돌아갔습니다. 혼자 있는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두려움이 몰려온 것입니다. 아직 그돌라오멜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한 밤중에 술에 취해있을 때 쳐들어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갑자기 당했지만 가만히 있을 그돌라오멜이 아닙니다. 소돔을 치기까지 수십 개의 나라들을 정복했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나라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냥 나그네 삶을 사는 뜨내기에 불과합니다. 자존심이 있는 대로 상했습니다.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군사들을 이끌고 지금이라도 온다면 과연 이번에도 이길 수 있을까? 그돌라오멜은 집요한 사람입니다. 한 번 졌다고 절대 포기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공격을 과연 내가 막아낼 수 있을까? 어쩌다 한 번은 이겼지만 다시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자신도 없습니다. 이때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겉 잡을 수가 없습니다. 피하고 싶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하나님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는 ‘두려워하지 말라’ 어깨를 감싸주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요? 안전에 대한 불안때문입니다. 어쩌다 한 번은 이겼지만 다시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자신도 없습니다. 이때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겉 잡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나는 네 방패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적군과 칼을 창을 막을 수 있는 무기가 바로 방패입니다. 우리 안전을 위협하는 칼과 창이 사방에서 날라옵니다. 방패가 없이는 한 순간도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전을 한 번만 막아주신 것이 아닙니다. 겨우 한 번만 그돌라오멜을 이기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 방패를 한 번 주시고 한 번 힘껏 막아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이십니다. 

두 번째 두려움은 따돌림을 당할 것 같은 불안에서 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내린 가장 큰 용기 있는 결단 중에 하나가 소돔 왕의 재물을 거절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물질 앞에서 약해집니다. 아브라함의 기사에서 보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롯입니다. 처음에 소돔 근처에 간 것도 물질의 욕심 때문입니다.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것이 롯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소돔이요 세상 물질이었습니다. 그돌라오멜에게 죽을 뻔한 고생을 했는데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구출이 된 다음에도 그는 다시 소돔으로 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후에도 롯은 가나안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은 그만큼 내려 놓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소돔 왕이 주는 엄청난 재물을 거절했습니다. 대단한 결단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 첫 번째도 바로 물질입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비록 40일을 금식하고 배가 심히 고프셨지만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대응하셨습니다. 물질이 필요하지만 물질이 우리의 생명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질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를 단지 조금 편하게 할 뿐입니다.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는 것은 말씀입니다. 세상을 이기게 하는 것도 물질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도 말씀입니다.

  문제는 세상이 이런 믿음의 결단을 박수 쳐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돔 왕이 아브라함을 끝까지 존경하겠습니까? 그를 인정하고 따를까요? 아닙니다 정 반대입니다.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합니다. 그를 따돌리고 말 것입니다. ‘왕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저 혼자 잘 났나! 그래 잘해 봐라!’ 소돔 왕은 당장 돌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브라함과 어떤 관계도 맺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여성 경영인으로 가장 인정받는 사람 중에 ‘성주 D&D’의 김성주 회장이라고 있습니다. 2009년 한국의 경영자상을 받았습니다. 창조경영인 선정위원회가 뽑은 ‘가치경영 창조경영자’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기업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룹 수익의 10%는 무조건 사회에 기부합니다. 자기 개인 수입의 30%를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내 놓고 있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한국 정부에 여성 가족부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한국보다도 사실 외국에서 더 많이 알려진 인물입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주목할만한 여성 기업인 50인에 김성주 회장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한 후 한국에 들어가 패션회사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 3가지 현실이 너무나 슬펐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뇌물 문화입니다. 뇌물을 주지 않고는 백화점 매장 하나 얻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가 접대 문화입니다. 술을 대접하고 향응을 제공하지 않으면 다 되던 일도 틀어졌습니다. 세 번째가 세금을 다 내고는 회사가 망한다는 문화였습니다. 하지만 김성주 회장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비록 회사가 망한다고 해도 이 세 가지를 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뇌물 대신에 실력으로 평가해 달라고 했습니다. 접대 대신에 더 많은 수익을 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세금을 다 내고도 성장하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주변에서 그를 다 미쳤다고 했습니다.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고서도 잘 되나 보자” 철저히 왕따를 시켰습니다. 그는 나중에 이런 책을 썼습니다.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 여기서 왕따는 따돌림을 당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신 왕을 위해 따로 구별된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세상은 그를 왕따 시켰습니다. 멀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에게 큰 상급이 되어주셨습니다. 그의 회사는 지금도 매출 순위보다 세금 내는 순위가 훨씬 앞서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두려워했던 것이 바로 이 따돌림이었습니다. 버선 발로 뛰어 나왔던 소돔 왕은 아브라함을 무시했습니다. 나중에 소돔이 멸망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소돔 왕이 기도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찾아온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소돔과 자기를 위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데도 거들떠도 보지 않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그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침울했던 것입니다.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세상에서 따돌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은 얻었는데, 인정은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걱정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이 되어주시면 그것이 승리하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