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종교개혁지 탐방을 떠나면서 미리 살펴보고 공부를 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교회 일정으로 처음 며칠은 참여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빠진 부분에 대한 신앙의 선배들의 행적들을 미리 알고 가려고 살펴본 것이 있습니다. 루터나 칼빈의 종교개혁은 누구나 알고 있는 가장 중요한 종교개혁 사건입니다. 그러나 잔 후스의 종교개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100년 전 이미 종교 개혁의 기운이 조용히 싹트고 있었습니다. 종교 개혁은 루터나 칼빈에 의해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의 역사는 루터 이전의 개혁자들의 신앙적 시냇물이 흘러서 루터나 칼빈 등으로 하여금 큰 개혁의 강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종교 개혁의 이전의 개혁자들은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입니다. 선구자들인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거의 모두  순교의 피를 흘리게 됩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개혁의 물결이 일어난 것입니다. 

종교 개혁 이전의 개혁자들은 John Wyclif (1324-1384)와 John Huss (1373-1415)와 같이 신앙적으로 개혁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시에 Girolamo Savonarola (1452-1498)와 Peter Waldo와 같은 실제적인 개혁자들과 Meister Eckhart (1260-1327)와 Thomas A Kempes (1381-1471), John Wessel과 같은 신비적인 개혁자들이 있습니다. 영국의 Balliol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존 위클리프는 왕실의 전속 목사가 된 후에 부패한 성직자들을 비판했습니다. 또한 부와 정치적 힘이 교회를 부패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런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교회는 가난해야 하며 사도 시대의 순수성으로 돌아 가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위클리프는 교회의 법률은 오직 성경 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당시 라틴어로만 번역되어 있던 성경을 일반 신자들이 읽을 수 있게 영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라틴어는 일반 시민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사장된 언어로서 학문으로만 가치가 있던 언어입니다. 결국 평신도들은 성경을 직접 읽지 못하고 사제들이 읽어주거나 해석해 주는 것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교황 정치의 잘못을 공격했습니다. 카톨릭 교회의 성만찬의 화체설이 성경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는다는 교회의 무오성을 부인했습니다. 천국과 지옥 중간에 있다는 연옥 신앙도 비성경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반드시 성지순례를 해야 천국에 간다는 사상과 성자 숭배 및 유물 숭배를 모두 비성경적이라고 배격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모든 개혁 사상들이 사실 존 위클리프의 입을 통해 종교 개혁 150년전부터 선포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런던 대회 때 로마 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되고 말았습니다.

  위클리프의 개혁 사상을 적극 받아 들인 사람이 보헤미아 출신인 프라하 대학 총장인 잔 후스(Jan Huss)였습니다. 그는 위클리프의 저서를 읽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미 그의 마음은 카톨릭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는 곧이어 성직자들의 부패에 항거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처음에는 위클리프의 의견에 동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과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단적인 사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일체의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화체설, 면죄부 등 구체적인 교리들을 열거해 가면서 자신의 정통적 입장을 천명하였습니다. 위클리프의 사상을 부분적으로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왕에 의해 파견된 John Stokes가 보헤미아에서 널리 호응을 받고 있던 위클리프를 이단자로 취급하는 것에 몹시 격앙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보헤미야 지방에서 면죄부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자 후스는 면죄부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대중 앞에서 설교를 통해 가르침을 설파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라고 촉구했습니다. 또한 그는 교회의 재산권을 박탈해서 청빈한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것은 소수의 기득권 권력자들에게 소외를 받고 있던 소귀족들과 도시 민중 등 대중의 지지를 받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온화하게 시작되었던 그의 주장은 점점 강하고 격렬해 졌습니다. 후스는 단지 교회의 실제적인 도덕 문제 뿐만 아니라 교회 자체의 교리 개혁을 요구하는 선지자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이며 교황들과 감독들은 교회의 통치에 불필요하다고 역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교회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또한 면죄부를 파는 것은 성경 교훈에 위배되는 지독히 미워할 예배 의식으로 정죄하였습니다. 교회의 부와 사치스러움은 사악함의 표징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교회가 온갖 비싼 성화들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비판했으며, 성직자들의 예전복과 종을 사용하여 행하는 예식들을 비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로마 교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잔 후스를 교황은 즉시로 파면하였고 후스는 그의 파문에 대해 그것이 무효이며 헛되다고 선포하고 종교 회의에 교황을 고소하기가지 했습니다. 1414년 후스는 콘스탄스 종교 회의에 소환되었습니다.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인 지기스문트로부터 신변 안전 보호를 약속받고 출두하였습니다. 하지만 교황과 추기경들의 모략에 걸려 토굴에 감금 당한채 8개월이상이나 신문과 고문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1415년 7월 6일에 이단으로 직분을 박탈당하고 높은 기둥에 매달려 화형에 처하여졌습니다. 잔 후스는 죽기 직전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오늘 당신들은 한 마리의 거위를 태우지만 100년 뒤에는 백조 한 마리가 나타날 것인데 당신들은 그 백조를 결코 구워 먹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은 꼭 100년 후에 일어날 루터의 종교개혁을 예언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루터파 교회에서는 이 말이 하나의 상징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는 화형을 당하면서 “나는 기독교의 복음 진리와 교부들의 교훈을 따라 쓰고 가르쳤다”고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저는 당신의 복음과 거룩한 말씀을 가르치기 위하여 이 무섭고 부끄러운 잔학한 죽음을 인내와 겸손으로써 참습니다. 오!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처럼 그의 얼굴은 천사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태연히 죽어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후스가 살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보헤미안인들은 분개하게 되었고 체코 땅에는 혁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잔 후스를 추종한 후스파와 로마 카톨릭 교회를 권위를 따르는 여러 군주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1419년 부터 1434년까지 지속된 전쟁을 후스 전쟁이라고 후대 사람들은 부르고 있습니다. 그 전쟁 중에 일어났던 사건 중에 특히 창밖 투척 사건은 아주 유명합니다. 1419년에 후스를 따르던 후스주의자들이 다른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이를 거절하는 시의회 의원들을 시청사 건물 창밖으로 던져 버린 사건입니다. 후스파 수감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도중 시청 창문에서 누가 돌을 던졌고 젤립스키라는 사람이 그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격분한 군중들이 시청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 가서 판사와 시장을 비롯한 시의원 7명을 창문으로 집어 던진 것입니다. 투척당한 7명은 모두 추락사했습니다. 며칠 후에 신성로마 황제 지기스문트의 형인 보헤미아의 국왕 바츨라프  4세가 죽자 후스주의자들은 보헤미아를 장악하게 됩니다. 이 창밖 투척 사건은 후스 전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황과 교회 세력에 끝까지 대항해서 싸우던 개혁자들은 1451년 가을, 콘스탄츠 공의회의 결정을 거부한다는 결의문을 발표하고 후스의 가르침에 따라 체코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수호하겠다는 선언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한 도전과 봉기의 신호였고 프라하 대학 교수들과 체코 대중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 개혁의 정신은 독일에서 종교 개혁이 시작될 때까지 도도히 살아 있게 된 것입니다. 후스는 성직자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에 해당된다면 교황에게 대항하라고 설교 했습니다. 첫째, 만일 교황이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을 아는 경건한 자들을 무시하고 인간적인 전통에만 눈을 돌린다면 교황에게 대항해야 합니다. 둘째, 교황과 영적인 지위층들이 경건한 삶을 벗어나서 세상적인 일에 얽매여 산다면 교황을 대항해야 합니다. 셋째, 교황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세상의 장사꾼을 내세우고 자신의 세속적인 삶에만 욕심을 낸다면 대항해야 합니다. 넷쩨, 만일 교황이 자신의 명령서를 통하여 구원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탈취한다면 그때도 교황에 대항해야 합니다. 체코 프라하의 종교개혁 광장에 서 있는 잔 후스의 동상에는 이런 말이 쓰여져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라. 모든 이들 앞에서 진실을 부정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