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나온 지도 벌써 10여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양대 산맥인 아이폰은 11이 나와서 지금 판매 중에 있습니다. 삼성 갤럭시도 11을 내년 초에 출시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새로운 스마트 폰이 나오기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몇 년전 아이폰 5가 나올 때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이 납니다. 가장 먼저 아이폰 5을 손에 쥐기 위해서 진 풍경들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은 온라인으로 미리 주문을 하는 것이 가장 먼저 새로운 스마트폰을 갖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불과 2-3년전까지만 해도 매장에서 줄을 서며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아이폰 5는 이미 팔기 9일 전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침낭을 가져와서 아예 길밖에서 잠을 자면서 기다린 것입니다. 마치 노숙자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식사도 길거리에서 했습니다. 그나마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번갈아가며 자리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없는 사람은 화장실 갈때만 자리를 맡기고는 일주일 내내 그 곳을 지킨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리를 미리 여러 개 맡았놓고 자리 당 100불씩에 팔기도 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를 사기 위해서 왜 이렇게 난리들입니까? 몇 주 지나면 편하게 살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9일씩이나 길바닥에서 자면서 기다리는데도 얼굴 표정이 아주 밝습니다. 행복한 모습들입니다. 드디어 애플 매장에 들어가자 두 손을 치켜 들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얼마나 좋으면 그러겠습니까?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아이폰 5가 나오기만을 1년 이상 기다린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기대가 있으면 기다리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아이폰 5가 처음으로 공개된 난 날 재미있는 실험을 한 것이 있습니다. 방송국의 앵커가 길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새롭게 나온 아이폰 5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먼저 것과 비교했을 때 느낌이 얼마나 다른 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속임수였습니다. 아이폰 5는 아직 시중에 나오지 않을 때입니다. 구형을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구형 아이폰을 들고는 무조건적인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먼저보다 훨씬 가볍습니다. 더 튼튼해 보입니다. 떨어뜨려도 망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계를 작동시켜보더니 “속도가 아주 빨라졌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폰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새롭게 느끼고 있는 지 모릅니다. 기대가 앞서면 똑같은 것도 보아도 훨씬 좋아보이는 것입니다. 

  새로운 전화기 하나를 기다리면서도 이렇게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다릴 때 어떤 행복이 우리에게 올까요? 이사야 40:31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에 나오는 ’앙망’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카와’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기다리다, 기대하다, 바라보다, 소망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이 단순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아주 간절한 기다림입니다. 새둥지에서 새끼새가 어미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고 오면 입을 쫙쫙 벌립니다. 작은 아기새의 입이 얼마나 커보이는지 모릅니다. 먹이를 받기까지 입을 다물지 않습니다. ‘앙망’은 바로 이렇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를 구하기 위해 일주일을 길거리에서 밤을 새워가며 기다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데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어떤 은혜가 우리에게 올까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두 가지 큰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첫 번째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인생의 앙금같은 피곤을 풀어주십니다. 세상 사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입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나면 온 몸이 다 뻐근하고 맥이 풀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한국에는 어린 아이들도 얼마나 힘들어 하는 지 모른다고 합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어린 아이가 학원을 몇 군데 다니고는 저녁이 다 되어서 집에 들어왔습니다. 책 가방을 던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나 피곤해. 말 시키지 마!”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입니다. 피곤함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힘든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많이 했다고 힘든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인 피곤은 하루만 쉬면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정신적인, 심리적인 피로가 찾아오면 우리는 잘 헤어나오지를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기대가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소망이 없는 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잠깐 열심을 내다가 중단해 버리고 맙니다.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이고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꾸 핑계거리만 보입니다. 방법을 찾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피곤함을 주는 것입니다. 핑계거리를 찾는 사람은 일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피곤합니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방법을 찾는 사람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일할 거리를 계속 찾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피곤하지가 않습니다. 의욕과 열정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에 ‘광수 생각’이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어떤 환자가 죽을 상이 되어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의사가 묻습니다. “어떤 증상 때문에 오셨습니까?” “선생님, 제가 요즘 증상이 아주 심각합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찔러도 아프고, 팔과 다리를 찔러봐도 아픕니다. 온 몸이 손가락으로 찌르기만 하면 무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가 내가 죽는 것은 아닐까요?” 의사가 아주 신중하게 환자를 검진을 합니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립니다. “음… 심각하군요. 선생님은 손가락이 부러지신 것입니다.” 원인은 머리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팔에도, 다리에도 이상은 전혀 없습니다. 원인은 손가락이 부러진 것입니다. 현실이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피곤의 원인은 다른데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시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정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결코 내려 놓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우리의 피곤은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대를 채우시는 분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주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당뇨 환자들이 많습니다. 제가 교제를 나누는 덴버의 목사님들도 두 분 중에 한 분은 당뇨병을 앓고 계십니다. 보통때는 아무 이상을 느끼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힘을 잃고 몸을 가누기조차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주머니에서 얼른 사탕을 하나 꺼내서 먹습니다. 그러면 금방 기운이 회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차를 운전하다가 이런 경우가 생기면 아주 위험합니다. 그래서 차에도 항상 캔디를 넣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삶에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에너지가 떨어지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차는 개스가 주입이 되지 않으면 작동이 되지 않습니다. 셀폰도 배터리가 충전되어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셀폰을 쓰기 위해 우리가 매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배터리를 충전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이 다 떨어지면 살 수 없습니다. 숨을 쉬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합니다. 숨쉴 힘마저 떨어지면 그때 죽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세 가지 힘을 주십니다. 첫 번째는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힘을 주십니다. 독수리는 높이 나는 새입니다. 일반 새들은 1,000피트 이내의 하늘을 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독수리는 일만 피트 창공으로 올라가서 날아다닙니다. 그만큼 강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주시는 두 번째 힘은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않는 것입니다. 뛰는 것은 걷는 것보다 에너지가 훨씬 많이 소비가 됩니다. 그만큼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주시는 힘은 걸어가도 피곤치 않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걸어간다는 것은 매일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재미 없는 하루하루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모이면 아주 시끄럽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슬립오버를 할 때 밤이 늦었으니 조용히 하라고 타일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한 시간도 더 웃고 떠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에너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있으면 일상 생활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일상생활에 감동이 넘치는 새로운 힘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