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가들의 회심과 하나님의 열심
이 아데미 축제에는 에베소 사람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적인 축제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그러나 아데미 신전에 들어가려면 아데미 우상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했다. 신전에서만 우상에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에베소의 각 가정에도 이 아데미 우상을 반드시 소장해야 했다. 외국에서 여행을 오는 사람들도 아데미 우상을 사 가지고 가는 것이 꿈이고 소망이었다. 그러기에 아데미 우상 산업은 에베소의 경제를 지탱해 주는 핵심 산업이 되었던 것이다. 아데미 신전 건물의 1층은 당대 최고의 은행이 성행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이 신전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데메드리오는 에베소에서 아데미 우상을 만드는 큰 공장을 운영하는 대표적 상인이었다. 그는 에베소의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들이 만든 아데미 우상이 팔리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바울의 복음 전도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것은 절대 신이 아니다라고 외쳤던 것이다. 이 말씀에 도전과 은혜를 받은 마술가들이 마술책들을 길거리고 가지고 나와 불사르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눈에 보이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는 결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들을 믿고 따르던 시민들이 갑자기 아데미 우상을 사지 않자 데메드리오는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곧 자기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수많은 시민들을 모았다. 그리고 바울과 그 동역자들에게 위협을 가했다. 아데미 여신을 무시한다는 죄목은 에베소 전 도시에 분노의 불길을 타오르게 만들었다. 아데미의 영광을 회복시키지 않으면 에베소는 망하게 될 것이라고 선동을 했다. 도시의 곳곳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그들은 오직 한 가지 구호를 외쳤다. ‘에베소의 신 아데미! 에베소의 신 아데미!’ 온 도시가 삽시간에 큰 소란에 빠졌다. 시위대가 불어나자 그들은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그곳에 바로 에베소의 유명한 원형극장이다. 2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이었다. 지금도 에베소 시가지에 있는 원형극장은 거의 원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시위대는 바울의 동역자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그 극장안으로 끌고 갔다. 흥분한 군중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순간이었다. 시위대는 극장 안에서 두 시간 동안 같은 구호만을 계속 외쳤다. ‘에베서의 신 아데미!’ 광란의 도가니였다. 바울은 마침 그들의 손에 붙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피하려고만 하지 않았다. 그 광란의 현장인 원형극장으로 제발로 가려고 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제자들이 극구 만류를 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마치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들어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두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그 광란의 극장안에 먼저 들어가셨다. 당시 로마에서 파견된 에베소의 행정관이었던 서기장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가 광기를 부리고 있는 시위대를 잠잠케 만들었다. 그는 로마와 에베소를 연결시키는 최고의 관리였던 것이다. 에베소에서 시위가 일어나서 불상사가 벌어지면 로마 정부는 그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먼저 아데미가 얼마나 위대한 신인가를 역설했다. 군중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아준 것이다. 그런 후 이 시위가 불법임을 알렸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고소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주동자를 처벌한다고 강경하게 발언을 했다. 결국 시위대는 바울의 동역자들을 풀어주고는 해산을 하게 된다. 서기장은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는 바울에게 하나님이 미리 보내주신 사람이었다. 에베소에서의 복음 증거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열심이었던 것이다.

사도 요한 기념교회 및 무덤
에베소는 주님의 가장 사랑받던 제자인 사도 요한이 목회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말년의 유배지 밧모섬은 에베소에서 약 60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날씨가 화창한 날을 에베소에서 밧모섬이 어렴푸시 보인다고 한다. 요한은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자리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은 제자이다. 초대 교회 전통에 의하면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에 와서 살게 된다. AD 64년 바울이 로마의 성밖에서 순교 당하자 그를 대신하여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다. 하지만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핍박을 받고 밧모섬에서 28년간 유배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그 후 도미티안 황제가 피살당하자 요한도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에베소에 돌아와 성도들을 돌보다가 주님 곁으로 간다. 12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순교를 당하지 않고 자연사를 하는 사람이 바로 요한이다. 죽기 직전까지 얼마간은 아야솔록 언덕에서 은둔하며 요한복음 기록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그 언덕에 묻으라는 유언을 남기게 된다. 그 후 4세기 경 기독교가 로마의 종교로 공인된 후 요한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처음으로 목재로 된 교회를 세우게 된다. 기독교 중흥을 이루었던 6세기 유스티안 황제가 그 목재 교회 자리에 성 요한 교회를 큰 규모로 증축하기에 이른다. 당시 교회의 크기는 가로 110m, 세로 140m에 6개의 돔으로 지어졌다.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교회 다음으로 비잔틴 제국 내에서 두 번째로 큰 교회였던 것이다. 바로 그 교회 한 쪽에 소박한 요한의 무덤이 놓여 있어서 그 교회를 방문하는 이들로 하여금 주님을 가장 사랑했던 제자 요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누가의 무덤
에베소에는 유적지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의 무덤도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누가는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에서 감람나무에 목이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시신은 요한이 시무하던 에베소 교회 밖에서 장례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지금도 에베소 유적지 반대편으로 조금만 가면 ‘누가의 묘’라고 선명하게 인쇄된 한글 간판이 보인다. 그 간판에는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다. “본 건물은 이오니아식 건축양식을 따라 사방 16개의 기둥을 세워 16m의 길이로 건축되었다. 비록 현재는 잔존하는 건물의 일부만 보이나 원래 이 건물은 로마시대에 유명용사나 건강의 신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었다. 이후 비잔틴 시대에 그 구조를 변형시켜 서쪽을 입구로 하고 동쪽을 머리 방향으로 하여 예배처소로 사용하였다. 1860년 영국 고고학자 T. J. Wood가 오테이온을 발굴하던 중 귀가 길에 본 건물의 일부인 십자가와 황소모양이 그려진 비석을 보고 누가의 무덤이었음을 판명하였다.” 이 무덤은 본래 의료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이었던 것을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된후 누가의 무덤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누가의 유해는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 가져와 묻었다가 그 후 이곳에 안장했는데, 지금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로 이장되어있다. 이곳이 누가의 묘라고 주장하는 것은 십자가와 황소의 그림이 부조된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베소는 초대교회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분명하다.

마리아의 집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실 때 제자 중 유일하게 예수님 곁을 지킨 사람은 사도 요한이었다. 주님은 그 요한에게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부탁한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19:26-27). 이런 이유로 요한이 에베소로 목회를 하러 올 때 마리아도 함께 오게 된 것이다. 서기 431년 에베소에서 개최된 제3차 세계 공의회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기를 요한이 마리아에게 산 위에 집 한 채를 지어 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집의 장소는 잊혀져 가고 폐허가 되어 찾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1878년 캐더린이라는 독일 수녀가 꿈 속에서 계시를 받아 ‘성모 마리아의 생애’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 책 속에 마리아의 집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1891년 나사렛의 한 신부가 탐사반을 조직하여 오늘날의 마리아의 집을 발견하게 된다. 집터 모양은 캐더린이 기록한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였다. 1961년 교황 요한 23세는 마리아의 집의 위치에 대한 논쟁을 종식시키고 현재 마리아의 집을 공식적인 성지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그 후에 대부분의 교황들은 즉위를 하면 공식적으로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 지금도 에베소의 마리아의 집은 카톨릭 교회의 성지로써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