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나그네가 길을 걷다가 우물에 빠졌습니다. 우물 밑에는 독사가 또아리를 틀고 있어서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위로 올라가려니 사자가 아가리를 벌리고 나그네가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려갈 수도 없고 올라갈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겨우 우물 벽에 매달려 떨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힘이 달려서 곧 떨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칡넝쿨 하나가 보여 그것을 붙잡고 몸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멍에서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나와 그 칡넝쿨의 뿌리를 갉아 먹는 것이 아닙니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넝쿨 뿌리는 다 쓸려 우물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 것 같았습니다. 이때 바로 옆에 있는 벌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서 꿀이 한 방울 떨어지려는 찰나 혀를 대고 맛을 보며 “아 달다!”라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라고 톨스토이는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가 바라본 인생은 끝이 보이는 시간과 연속된 고난을 순간적인 행복감으로 잠시 잊으며 견디는 존재라고 바라본 것입니다. 인생은 기본적으로 고난의 연속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도 요즈음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을 겪고 있는 분들이 여럿이 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남에게만 있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내 삶에 닥친 고난이 되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고난을 겪으면 사실 가족 모두가 그 고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고난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합니다. 너무 큰 아픔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왕 우리에게 다가온 고난이라면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는 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픔을 최대한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7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고난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난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다가온 고난을 우리가 고치지도 못합니다. 처음에는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왜 이런 고난이 내게 왔는지 이해가 되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실은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첫 번째 반응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고난은 더욱 더 큰 무게로 우리 자신을 짓누르게 됩니다. 고난이 왔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고난이 왔을 때 우리 자신이 피해자라고 무조건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싶은 욕망이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건강하고 삶에 문제가 없을 때는 참 당당하고 용기가 흘러넘칩니다. 다른 누구의 도움이나 인정을 그렇게 받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고난 한 가운데서는 남에게 동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웃들은 당연이 위로와 동정을 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동정은 잠시의 만족만 줄 뿐입니다. 아픔은 하루 24시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것이 내 책임입니다. 내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아픔이 온 것입니다.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깨어 있었다면 미리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준비해도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항상 피해자인 것 만은 아닙니다. 고난의 종류가 다를 뿐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고난은 다양한 색깔로 다가오는 법입니다.

셋째, 고난의 시간에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살아왔습니다. 만만하지 않았던 이민 생활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삶이 안정도 되었습니다. 여유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바쁘기만 했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 우리 생각을 어지럽혔습니다. 고난은 달리기만 하고 살아왔던 우리 삶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과 같습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광활한 대지를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어서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물끄럼이 뒤를 돌아다 봅니다. 내 영혼이 따라오고 있는 보기 위해서입니다. 육체와 영혼이 같이 가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은 육체만 정신없이 달려갔던 것입니다. 내 영혼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넷째, 삶의 모든 조건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진 것 보다는 갖지 못한 것에 마음을 쏟고 살아왔습니다.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고 애를 쓰다보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흑인 빈민촌에서 온갖 험한 꼴을 보며 살아왔습니다. 이미 틴에이저때부터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부터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할 조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매일 일상생활에서 작은 감사할 일들을 찾았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빵 한 조각을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오늘도 만날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는 하루에 최소한 5개의 감사거리를 찾았습니다. 그가 가진 모든 조건들에 감사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하루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갖고 교회에 나갔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인생의 큰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작은 감사가 그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고난을 겪으면서 옆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 가족들이 없었다면 내가 이 아픔을 견뎌낼 수 있을까? 매일 매순간 염려해 주고 돌봐주는 가족들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감사 하나만으로도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고통은 클지라도 내 마음에 감사로 인한 평강이 찾아올 것입니다.

다섯째,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결국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성공과 즐거움도 모두 한 때뿐입니다. 다윗은 세공사에게 자신이 매일 끼는 반지에 들어갈 금언 하나를 새겨 넣으라고 했습니다. 세공사는 솔로몬 왕자를 찾아갔습니다. 지혜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솔로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공사에게 ‘모든 것은 지나간다’를 글귀를 새겨 넣으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보고는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다윗왕의 놀라운 무공도 지나갈 것입니다. 그가 이루어 놓은 왕국도 영원히 보존되지 않습니다. 슬픔과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세월이 흐르면 다 잊혀지고 말 것입니다. 결국 지나가는 일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픔만 생각하고 아무 것도 안한다면 고통의 세월이 흐른 후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존 번연은 10여년 간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순회 설교가였습니다.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람이 영어의 몸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감옥에서 천로역정이라고 하는 역사에 남는 대작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도 밧모 섬에서 귀향 생활을 하면서 요한계시록이라는 놀라운 성경을 저술하게 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갈 것입니다. 지나갈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내가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섯째, 새로운 관점에서 고난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고난이 오기 전에는 배우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많이 배워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 말씀이 얼마나 새로운지 모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감동이 되는 지 모릅니다. 고난이 오기 전에는 예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난 중에 드리는 예배는 성령 충만함이 있습니다. 병상에 있는 분들을 종종 찾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 분들의 가장 큰 소원은 주일에 예배 드리러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을 때는 느껴보지 못하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바울이 모든 환난과 고난을 겪으면서 도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영적 무기가 바로 이 확신이었습니다. 바울은 배부른 곳에 처할 줄도 알았습니다. 배고픈 상황을 견디는 법도 알았습니다. 고난에도 즐거움에도 평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나 혼자 겪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도 나와 같이 아픔을 겪고 계십니다. 그 분이 나에게 고난을 극복할 힘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