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피부의 흑인 여인이 한 사람 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아주 어둡고 불행했습니다. 그녀는 1954년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부 미시시피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것도 가족과 이웃들의 축복받은 탄생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미혼모의 사생아였습니다. 그녀는 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매질을 당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홉 살 때 사촌 오빠에게 성 폭행을 당했습니다. 14세에 미숙아를 출산했습니다. 그 아이는 태어난 지 2주 만에 죽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마약에 찌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삶이었습니다. 살고자 하는 의욕이 전혀 없었습니다. 음식은 눈에 보이는 데로 먹었습니다. 몸무게가 237파운드까지 나갔습니다. 그녀는 사생아였고 흑인이었습니다. 가난했고 뚱뚱했고 미혼모였습니다. 거기다 마약 중독까지 되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1년에 1억 5천만 불을 벌고 있습니다. 그녀의 재산은 10억불이 넘습니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이 되었습니다. 타임지는 20세기를 빛내는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그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미국 내에만 2200만의 시청자가 보는 토크쇼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 105개 국에서 1억 4천 만 명이 그녀의 말 한마디에 웃고 울었습니다. 그가 추천하는 책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그가 자라온 어린 시절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에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적기 시작했던 감사일기 때문이었습니다. 절망스런 나날을 살던 어느 날 노트에다 감사한 일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 가운데 감사한 일 다섯가지를 찾아 기록한 것입니다. 그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적는 것이니 감사의 내용이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그가 적은 감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내지 않게 참을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써 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일상 중에 일어나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작은 감사가 오프라 윈프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매일 매일 감사하다 보니 인생이 밝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사라져 갔습니다. 절망스런 인생이 희망이 가득 찬 인생으로 변해 간 것입니다. 그녀는 이 감사일기를 통해 두 가지를 배우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삶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고 살아야 하는 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현재 주어진 삶에 충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소중한 것은 절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이 제일 소중합니다. 매일 보는 이웃과 교우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내가 매일 먹는 음식이 소중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합니다. 내가 가진 것의 의미와 가치를 알면 결코 불행한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삶의 초점을 어디에다 맞추고 살아야 하는 지를 알면 결코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인생의 목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생기면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의욕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이 모든 삶의 축복은 바로 감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2019년도의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연휴도 중요하고 가족들과의 여행도 필요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가족과 교우들과 같이 나누어 먹으면서 사랑을 나누는 것도 소중한 추수감사절 행사일 것입니다. 하지만 올 한해 정말 감사할 일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고 찾아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또한 추수감사절 하루만 감사할 일을 찾아서도 안 됩니다. 매일 감사할 수 있는 결심이 서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매일 감사할 수 있으려면 감사하겠다는 결심부터 있어야 합니다. 감사할 조건을 찾아서 감사할지를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형편이 좋을 때 ,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감사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힘든 일에서도 감사할 일을 찾아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부흥사가 집회 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어느 뚱뚱한 흑인 여자가 아이를 다섯이나 데리고 옆에 앉았습니다. 이 흑인 여자가 아이들과 함께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자기는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이럴 경우는 무슨 감사를 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고는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옆의 이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어떻게든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를 알았습니다. 다리오 왕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사자 굴에 집에 넣기로 왕이 어인을 찍었습니다. 이 음모가 자기를 겨냥한 것 인줄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하며 기도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의 결심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이 그 어려운 위기 속에서도 감사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결국 그 위기는 다니엘을 바벨론의 총리로 세우시려는 위장된 축복이었습니다. 감사하기로 결심하는 사람 앞에 인생의 장애물이 물러갈 것입니다.

매일 감사하는 사람이 되려면 영혼이 건강해져야 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감사하기가 어렵습니다. 늘 불평과 원망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쉽게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사울로부터 당할 수 있는 모든 고난을 다 당합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갑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응답을 지체하시는 동안 다윗의 내면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있습니다. 다윗의 영혼을 강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울이 없어진다고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된다고 장애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일이 우리 앞에 닥칠는지 모릅니다. 다윗은 왕의 된 후 어떤 어려움 속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평생 감사하는 생애를 산 것은 바로 이 강한 영혼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는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매주 잔디를 깍고, 청소를 하고, 막힌 하수도를 뚫는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내가 집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개스빌이 많이 나온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내가 따뜻하게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집에 빨래가 쌓이고 다림질을 할 옷들이 많은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내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려면 영혼이 강해져야 합니다. 영혼이 강해지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남들은 불평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감사의 조건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감사의 결심을 하려면 오늘보다는 내일의 희망이 더욱 커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을 참고 견디면서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620년 11월 하순 뉴 잉글랜드 플리머츠에 101명의 청교도들이 도착을 했습니다. 그들은 그 해 겨울 몇 개월 동안 51명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풍토병으로 폐렴으로 죽어가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보아야만 했습니다. 살아남은 50명중에서도 몸이 성한 사람은 6-7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나머지 환자들은 위해 나무를 해오고, 음식을 만들고, 병간호를 하는 온갖 궂은 일들을 다 감당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그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앞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분도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청교도들은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에 대한 이 믿음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해 청교도들은 스콴토라는 인디언을 통해 옥수수를 심는 법, 물고기를 잡는 법, 사냥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 스콴토로 인해 청교도들은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아팠던 사람들도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들을 길렀습니다. 드디어 그 해 1621년 가을 이 땅에서 처음으로 풍성한 곡식을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이웃의 인디언들을 초청했습니다. 어린아이까지 온 청교도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청교도의 대표인 월리엄 브레드포드는 감사절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그 날 눈물과 감격으로 처음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이 감사의 결심이 오늘날 미국을 만든 것입니다. 매일을 감사하기로 결심하는 추수감사절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