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추수감사절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서 메이저 할러데이 중에 하나입니다. 추수감사절이 생긴 이유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이 땅에 청교도들이 들어와서 죽음을 넘나드는 고비 속에 첫 곡식을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배가 고프다고 그 곡식을 그냥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열매를 붙들고 그들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신대륙에서의 지난 1년을 돌아보았습니다. 아픔과 고통도 있었지만 오직 감사한 일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첫 열매를 붙들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매년 그 때가 되면 그들은 지난날을 잊지 않고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시간이 얼마간 흐르자 정부에서는 이 날을 공식적인 추수감사절로 제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메이저 할러데이 가운데 또 하나는 메모리얼 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의 현충일과 같은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 죽은 사람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 외에 초대 대통령을 기념하는 워싱턴 버쓰데이, 프레지던트 데이도 있습니다. 링컨을 기념하는 날도 있고, 미국을 발견한 콜럼부스를 기념하는 날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공식적인 기념일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나라들 만이 아닙니다. 회사도, 단체도 자체적인 기념일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기념일이 있습니다. 가족들의 생일부터 시작해서 부부의 결혼 기념일,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기일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이렇게 많은 기념일들이 있는 이유는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과거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과거가 아닙니다. 그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결혼을 했기에 자녀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기에 이 땅에 우리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친 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편안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기념은 과거를 지금의 우리와 계속 연결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기념은 결코 우리에게서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수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념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줍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 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기념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서 가야 할 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에도 반드시 기념이 필요합니다. 기념이 될 것이 없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평생 신앙에 기념이 될 만한 것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땅에 기념식만 좇아 다녀서는 안됩니다. 영원한 신앙의 기념을 따라 다녀야 합니다. 신앙에서 영원한 기념을 만들어야 할 분명한 이유 가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몇 년 전 한국 방문하는 중에 가장 감동스러웠던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랜 친구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고등부 시절 신앙으로 맺어진 아주 친한 친구입니다. 결국은 그 친구도 저도 소명을 받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사역하는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교회를 얼마나 아름답게 지었는지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서울 성북구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소문이 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주변에 사는 이웃들도 자기 지역의 자랑이라고 소문을 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서 주일 낮 설교를 했습니다. 그 전날 토요일부터 저를 데려다가 아주 풍성하게 대접을 해주었습니다. 교회 근처에 있는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잠도 같이 잤습니다. 밤늦게까지 지나간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가 이렇게 될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친구는 집도 제대로 없었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쓸 것도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여러 날을 같이 지내기도 했습니다. 저희 집 역시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친구는 이런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자네 그 라면 국물 생각나나? 라면 하나 가지고 국물만 많이 만들어서 자네 식구들이 다 먹던 것 말이야!” 그때 저는 갑자기 40년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둘이서 지하 기도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사실 저나 그 친구나 서로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밤에 다시 우리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기념이 필요합니다. 보기만 해도 기억이 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듣기만 해도 다시 과거의 은혜로 돌아갈 수 있는 기념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신앙의 기념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힘이 없는 부모라도 자식에게서는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가 무엇을 해주었느냐에 상관없이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순리 중에 하나입니다. 부모 없이 태어난 자녀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낳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아십니다. 날마다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도 아십니다. 죄의 유혹을 쉽게 물리칠 수 없다는 것도 아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말을 안 듣는다고 자녀를 포기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녀가 실패한다고 도와주기를 거절하는 부모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포기해도 부모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녀의 연약함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때로는 그 일을 할 실력도 능력도 모자란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다릅니다. 오직 자녀의 성공에 대한 기대만 가지고 있습니다. 실패할 때 돌아오는 아픔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반듯하게 서 주기만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수없이 넘어졌습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도 도와주시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오히려 왜 애굽에서 나오게 했느냐고 대들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가장 섭섭할 때는 “그럼 왜 날 낳았습니까?”하면서 대들 때입니다. “왜 낳아서 이 고생을 시키느냐”고 부모를 원망하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속은 너무 상합니다. 자식이지만 섭섭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요단강을 또 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어떤 일이 있어도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실패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닮은 영광스런 존재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우리 안에 계속 쌓이게 됩니다. 결국 세상은 우리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과정에 나타났던 신앙의 기념은 바로 끝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앙의 기념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을 영원토록 경외하기 위해서입니다. 켈리포니아에서 처음 교회를 개척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몽골에 파송한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 분에게는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처음에 그 선교사님은 캐나다 켈거리 의대에서 연구 활동 중이었습니다. 그때에는 겨우 주일 예배만 참여하는 연약한 신자였습니다 그것도 바쁜 일이 있으면 빠지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수요성경공부에 갔다가 어느 청년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유학을 온 학생인데 그 때만 해도 중국이 아주 통제가 심한 때였습니다. 그 학생이 중국에 있을 때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학생은 공산주의를 아주 신봉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매일 새벽 세 시가 되면 뒷 뜰로 나가 항아리를 열었다가는 닫는 일을 매일 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하루는 어머니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저 항아리가 뭐죠. 왜 어머니는 매일 새벽 저 항아리를 열었다가 닫는 겁니까?” 그때 어머니는 아들의 질문을 받고는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지난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조상 때부터 예수를 믿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화가 되면서 믿는 사람들을 투옥하고 사형을 시켰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드러내놓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안에 성경이 보이기만 해도 잡아가기 때문에 저 항아리 속에 성경책을 넣어놓고는 새벽마다 그것을 꺼내서 읽고는 다시 넣어둔다는 것입니다. 이 아들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도 예수를 믿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간증을 그 선교사님이 듣고는 자기는 도대체 왜 사는가라는 심각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 부부는 둘 다 의사입니다.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고 사회에서 존경 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결국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유산입니다. 우리 자녀에게 남겨줄 신앙의 유산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