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일한 4선 대통령 루스벨트는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비결은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 준데 있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대통령 관저 안의 작은 집에 거주하면서 잡일을 돌보던 부부와의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그 부부의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창 밖을 내다보라는 대통령의 전화였습니다. 그 집 창문에 메추라기가 앉아있으니 얼른 밖을 내다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 메추라기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집의 아내가 메추라기에 관해 대통령에게 물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메추라기를 보여주려고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건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백악관에 들릴 일이 생기면 예전부터 그곳 주방에서 일하던 사람에게 아직도 옥수수 빵을 잘 만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의 대통령부부는 그 빵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만들지 않는다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맛있는 줄 몰라서 그런다네. 내가 대통령을 만나면 잘 말해주겠네” 얼마나 따뜻한 관심이요 사랑인지 모릅니다. 이 큰 나라의 대통령이면서도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따뜻한 마음이 그의 말씨와 얼굴에 배여 있었다고 합니다.

  루스벨트가 이런 존경 받는 대통령이 된 것은 그 아내 엘레네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루스벨트는 골수염으로 다리 한쪽을 쓰지 못하는 지체부자유자였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루스벨트는 자주 실의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정가에서도 그는 더 이상 주목 받는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때마다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저는 당신의 다리, 당신의 숨결,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할 뿐 아니라 당신의 전 인생, 당신의 미래까지도 사랑해요.“ 루스벨트의 마음속에는 이때부터 아내 엘레네의 사랑과 정성의 보물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육신의 아픔으로 인해 마음마저도 차가워졌던 그의 마음이 따뜻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 그는 마음속에 채워졌던 이 보물을 사람들에게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의 관심과 사랑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6:45). 마음에 보물을 쌓고 있는 사람은 이웃들을 유익하게 하는 보물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주변에 힘들고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로도 위로하고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인생에는 작지만 존재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남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사랑의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악을 쌓고 있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아픔을 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에 독이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그 독은 마음에 쌓은 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절대 못된 열매를 맺는 법이 없습니다.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도 못합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는 절대 열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찔레가 포도나무같이 보여도 찔레에서 포도를 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악은 매우 자발적입니다. 그러나 선은 언제든지 수동적이고 비자발적입니다. 악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 속에서 계속 자라나도록 되어있습니다. 죄는 연습이 없이도 얼마나 익숙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선은 그렇지 않습니다. 애쓰고 수고해야 선을 길러 나갈 수 있습니다. 선을 마음에 쌓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성탄절이 있는 12월입니다. 주님이 탄생하신 그 밤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이렇게 찬양을 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용서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기를 지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렇게 이 땅에 평화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세상 최고의 보물이 무엇일까요? 바로 온 세상의 주인이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최고의 가치가 어떤 것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을 마음 속에 보물로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를 통해서도 진정한 성탄절의 평화가 흘러나올 것입니다.

책과 영화로도 소개되었던 안요한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학생시절에 사고로 두 눈을 다 잃고 얼마나 비참하고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인생을 저주하고 죽으려고 했던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두 눈은 잃었지만 예수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에 의미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목사가 되어서 수많은 맹인들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이 목사님의 삶이 너무 아름답고 사회에 기여하는 공로가 커서 여기 저기에서 개안 수술을 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분의 소식을 듣고 무료로 수술을 해주겠다는 병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이 모든 것을 거절을 했습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눈을 잃고서 만난 주님이 나의 두 눈보다 더 큰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내가 가진 이 보물을 죽는 순간까지 다른 맹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두 눈을 다시 뜨지 못한다고 해도 한없이 행복합니다.” 주님을 영원히 보물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너무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교회와 목장을 통해서도 마음의 보물이 쌓여져야 합니다. 온 세상 가장 귀한 보물이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요 목장입니다. 엘리사가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친 사건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런데 먼 이방나라의 군대장관이 어떻게 엘리사를 알고 이스라엘까지 찾아올 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붙잡아온 어린 여종 때문이었습니다. 이 소녀가 나아만에게 엘리사를 추천한 것입니다.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식한 것은 왕들과 선지자들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아주 작은 시골 동네에 사는 여종조차도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엘리사를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녀의 추천에는 의심이나 주저하는 흔적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인이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왕하5:3). 우리 교회와 목장이 이런 평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여러 가지 인생의 문제 때문에 갈등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나는 도와드릴 수가 없지만 당신을 도울만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우리에게 그 사람을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교회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목장은 단순히 교제만 하고 헤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서로의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곳입니다. 아픔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곳이 목장입니다. 어린 시절 배가 아파 쩔쩔매던 때가 있었습니다. 약도 제대로 없던 시대입니다. 병원도 죽을 병이 아니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배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병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손은 약 손”이라는 말이 생긴 것 같습니다. 목장은 바로 할머니 손 같은 곳입니다. 

  목자의 삶 공부에서 자기 목장에 대한 간증을 하신 분이 있습니다. 올해 그 가정에 큰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장 식구들이 하나에서 열까지 얼마나 섬기고 돌보아주는 지 너무 감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 본 친척들이 지금도 목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인기독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바로 이런 목장들이 있기 때문이야!" 이것이 믿음의 보물입니다. 주변 이웃들이 우리를 보고는 여운이 남아야 합니다.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회만 주어지만 목장에 한 번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번 만나고 나면 더 이상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것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 해도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보고 또 보아도 날마다 새로운 것이 생명의 신비라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 세상의 생명도 그럴진대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을 또 만나고 싶지 않을까요? 우리 교회에, 목장에 영혼을 끌어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이 바로 마음에 쌓여진 보물입니다. 이 아름다운 보물을 12월에는 이웃들과 마음껏 나누는 은혜가 넘쳐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