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성탄절에 세상에서 가장 현명해진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wise men’ ‘현명한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처음부터 현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론 그 당시에 공부도 많이 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지위나 직급도 꽤 높았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세상 도처에 널려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그때만 현명했던 것이 아닙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현명한 사람들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을 현명하게 만든 이유가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에게는 간절한 믿음의 추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성탄절을 맞이한 사람들은 두 부류가 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첫 번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베들레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 역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바로 동방박사들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닙니다. 동방은 당시에 주로 이란, 이라크 지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약 1,000마일 떨어진 곳입니다. 그렇게 먼 곳에서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은 믿음의 추구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들이 보여준 믿음의 추구는 세 가지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첫 번째는 결단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구약 성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 안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느브갓네살왕, 베사살왕, 다리오왕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던 사람들입니다. 성경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왕궁을 중심으로 해서 벌어졌습니다. 아하수에로 왕 때 에스더의 이야기는 대화의 단골요소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벨론과 페르시아 왕궁에는 구약 성경에 관심이 있거나 믿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동방박사들 역시 이들의 후손이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그때의 역사기록을 읽으면서 하나님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관심을 보이는 특별한 분야가 있습니다. 주유소를 하시는 분은 어디를 가나 주유소가 눈에 먼저 들어옵니다. 모텔을 하시는 분은 처음 간 지역에서도 모텔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을 합니다. 슈리페어를 하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저를 볼 때마다 구두만 쳐다봅니다. “목사님, 뒷굽이 많이 닳았는데요. 시간 되시면 한 번 오세요.” 목사는 가는 곳곳마다 교회만 보입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별을 연구하던 천체학자들입니다. 성경에는 하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서 동방박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민수기 24:17입니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여기서 ‘별’은 통치권, 왕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규’역시 왕의 보좌나 왕이 가진 옥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같은 말입니다. 세계를 다스릴 왕이 이스라엘에서 나온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바로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를 증거하는 구절입니다. 

  어느 날 박사들이 밤하늘을 연구하던 중 성경에 예언 된 이상한 별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이 순간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는 데서 멈추면 그것은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지식은 우리 영혼의 방향을 돌리지 못합니다. ‘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별이 나타났다.’ 고 아무리 외쳐도 하루 밤만 지나가면 그것은 끝나고 맙니다. 믿음은 그 별을 따라가는 결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바다 깊은 데로 나갔습니다. 밤새 고기를 못 잡은 곳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엄청난 고기가 잡혔습니다. “야 정말 대단하다. 나보다 바다를 더 많이 아시는 분이네. 오늘 운이 엄청 좋은데!”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주님은 죄를 지적하신 적이 없습니다. 죄책감이 들만한 어떤 말씀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곧 결단을 하는 고백입니다. ‘이제는 내 인생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데로 나를 이끌어 주십시오’ 동방박사들은 곧바로 짐을 꾸려서 별을 쫓아 길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짐을 미리 준비해 놓았는지도 모릅니다. 결단은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깨닫는 순간 결단은 바로 일어나야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결단은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믿음의 추구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시장 어귀에서 매일 안타깝게 소리를 지르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곧 멸망합니다. 빨리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할아버지의 말을 듣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할아버지는 매일 같은 자리에 나와 외쳤습니다. 그 모습을 늘 지켜보던 한 젊은이가 이렇게 묻습니다. “할아버지 아무도 듣지 않아요. 이제 그만 하시고 집으로 들어가세요.” 그 말을 듣고는 할아버지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이봐요. 젊은이. 나도 알아요.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거. 하지만 내가 외치기라도 해야 내 믿음을 지킬 것 같아 그렇게 한 것이요. 내가 그렇게 안 하면 나도 이 동네 사람들과 똑같이 타락해 있을 것이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가정도 평안하고 사업도 잘 된다고 기도까지 중단하면 안됩니다.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믿음은 좋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먼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닙니다. 여행 중에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누가 여행 경비를 지원해 준 것도 아닙니다. 도중에 어떤 어려움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오랜 시간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값을 지불하는 것만큼 동방박사들은 큰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 믿음의 추구는 방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 생활이 잔잔한 호숫가에 떠 있는 유람선이 아닙니다. 믿음은 곧 영적 전쟁입니다. 비바람이 불어옵니다. 폭풍우가 우리가 탄 배를 전복시키려고 합니다. 이제 좀 잘 믿어 보려고 하는데 가정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내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막혔던 일이 풀려야 합니다. 그런데 일은 점점 더 꼬여만 갑니다. 이제는 봉사도 하고 열심히 교회 일도 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앞에 나서자 말자 마음에 불편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잘하느니 못하느니’ 섭섭한 말을 듣습니다. 갑자기 섬기려는 마음이 싹 사라지고 맙니다. 예배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마음에 한 없는 기쁨이 넘쳐납니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나왔습니다. 누가 내 차를 긁어놓았습니다. 그런데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이름을 남겨 놓은 것도 없습니다. 은혜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래!” 믿음이 성장할 때 반드시 있는 일들입니다. 이 방해를 극복하지 못하면 믿음은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박사들을 인도하던 별이 항상 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별을 관찰할 수 있는 천체망원경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별을 보고 떠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별은 그들의 눈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헤롯 왕궁에서 나왔습니다. 서기관들이 알려주는 베들레헴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베들레헴에 거의 다가왔을 때 그 위에 별이 밝게 비추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사라졌던 별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별이 없는데도 그들은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별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데도 주님을 찾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렇지. 별은 무슨 별이야!” “내가 뭐 열심을 낸다고. 가만히만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교회에서 목자 시키면 교회 안 나온다는 분도 있습니다. 아무나 목자를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섬기는 교회에서 가장 존귀한 일입니다. 사실은 때가 된 것입니다. 아직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 것도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별이 사라졌다고 박사들이 가던 길을 돌아섰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최초의 성탄 예배자가 결코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지구상에서 가장 현명한 자의 이름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던 별이 사라질 때도 있습니다. 아마 캄캄한 인생의 터널을 지날 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두운 터널로 들어갔다고 별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별이 없어진 것도 아닙니다. 별은 반드시 나타납니다. 잠시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별이 보이지 않는 동안에는 생명 되신 하나님 말씀을 믿으면 됩니다. 별이 안 보이자 박사들이 믿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바로 이 말씀입니다. 별은 야곱에게서 나온다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온 것입니다. 박사들처럼 이 능력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믿음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눈이 보이는 것은 우리를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절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 모두를 믿음을 간절히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