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은 텍사스 대학 MD 암센터를 비롯해서 유명 암 전문병원들이 여럿 있습니다. 미 전역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환자들이 모여드는 도시입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한 가닥 희망에 의지해서 먼 길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짧게는 한 주, 두 주 길게는 한 달, 두 달 치료를 받고 돌아갑니다. 문제는 그렇게 단기간 묵게 되면 아파트 렌트를 할 수 없습니다. 호텔이나 모텔에서 묵어야 하는데 체류비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단기 체류 암환자들을 돕는 민간 시스템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형편에 따라 무료로 지낼 수도 있고, 식사까지도 무료로 제공되는 것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치료 받는 일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환자들이 삼시세끼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기부한 아파트, 누군가가 기부한 돈 그리고 누군가의 자원봉사로 이런 모든 일은 가능할 것입니다. 

스스로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환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단체들은 미 전국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10여 년전 덴버에서 목회하고 있는 한 목사님 딸이 켈리포니아 샌디에고에서 2-3주에 걸친 수술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도 같이 가서 딸이 수술을 하고 회복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숙식이 문제였습니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때 알아본 것이 ‘특별 배달 샌디에고’(Special Delivery San Diego)라는 비영리단체였습니다. 이곳에 연락을 했더니 호텔 숙박뿐만 아니라 식사까지도 배달을 해주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때의 고마움이라는 것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비영리 단체는 벌써 30년 째 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CNN이 주변의 의로운 사람들을 발굴해서 보도하는 ‘CNN 영웅’중 하나로 소개된 이 단체는 1990년대 초반 루스 헨릭스라는 여성이 시작한 것입니다. 식당주인인 루스와 단골손님인 어느 에이즈 환자와의 인연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1989년 당시 미국에서는 에이즈가 무섭게 번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에만 환자가 10만 명에 달하고 이들 중 6만여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즈음 몹시 여위고 병색 짙은 남성이 루스 식당 단골이 되었습니다. 에이즈를 앓고 있다고 밝힌 그는 매일 그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1년 반 쯤 지난 어느 날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어나서 식당에 올 기력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스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주소라도 알아두지 못한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는 결심을 했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에이즈 환자들을 돕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배달해 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의 뜻에 식당 단골 다수가 적극 동조를 했습니다. 그렇게 자원봉사단을 꾸리고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어 매일 75명에게 점심과 저녁 식사를 배달했습니다.

몇 년 후부터는 암이나 신장질환 등 다른 만성질환환자들로까지 음식배달 서비스를 확대했습니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들이 돌 본 환자는 6,000여명이나 되었고, 총 100만개의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몇 년째 식사 배달 서비스의 도움을 받고 있는 한 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특별배달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이런 분들이 있어서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고 감격해 하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복 받을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복을 받지 않으면 누가 복을 받겠습니까? “복 받을 행동을 해야 복을 받지!”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합니다. 복을 받을 행동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 밖에 없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복을 받을 사람은 앞장서서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노블리스’는 원래 닭의 벼슬을 의미합니다. ‘오블리제’는 달걀의 노른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닭의 사명은 자기의 벼슬을 자랑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닭은 알을 잘 낳아야 합니다. 이것이 본래 말의 뜻입니다. 현대적 의미로는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데 쓰여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명예가 바로 노블리스요, 의무가 오블리제인 것입니다. 하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유래는 더 숭고합니다. 14세기 영국과 프랑스가 백 년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프랑스의 ‘깔레’시는 영국에 끝까지 저항을 하다가 결국은 1347년 항복을 하게 됩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그 저항에 대한 책임을 물었습니다. 깔레 시민 6명이 목에 밧줄을 매고 대표로 처형을 당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때 깔레에서 제일 부자인 ‘생 피에르’가 선뜻 나섰습니다. 시장인 ‘장데르’도 자기가 죽겠다고 했습니다. 부자 상인인 ‘드 위쌍’도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드 위쌍’의 아들마저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에 감격한 시민 세 사람이 나섰습니다. 6명이 아니라 한 명이 많은 7명이 나선 것입니다. 가장 먼저 나선 부자 ‘생 피에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비를 뽑으면 인간인 이상 행운을 바라기 때문에 내일 아침 처형장에 재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의를 한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정해진 시각에 6명이 처형장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앞장섰던 ‘생 피에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이 그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이미 자살한 시체로 발견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으면 죽겠다는 사람들의 사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영국 왕비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남편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애원했습니다. 영국 왕은 모든 처형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후 깔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단어의 상징으로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누구보다 먼저 헌신하는 사람들은 복지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복 받을 사람은 스스로 자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넘어뜨리면서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부에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불과 17,8세의 소년이었습니다. 전쟁에 나간 형들에게 음식과 옷을 가져다 주려고 싸움터로 갔던 것입니다. 심부름만 하고 돌아가면 그 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골리앗과 싸우기로 자원을 한 것입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놀라운 패턴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사람과 반드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다윗이 용맹으로 골리앗을 이긴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물맷돌을 다섯 개 가지고 나갔습니다. 네 개가 실패하고 다섯 번째에 가서 골리앗을 맞춘 것이 아닙니다. 네 개는 써보지도 않았습니다. 그 엄청난 거인 골리앗을 이기는데도 돌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자원을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을 비롯한 모든 군사들이 뒤로 물러섰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앞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남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은 대부분 어려운 일입니다. 넓은 길이 아닙니다. 넓은 길은 가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좁은 길은 모두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때 좁은 길을 자원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선택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넘치는 복을 부어주십니다.

  마지막으로 복 받을 사람은 힘든 일에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고국 방문을 계획했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오랜 전 고향을 떠났습니다. 구브로라고 하는 지중해 섬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죽을 고생을 해가면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이제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에게 고국 구경구 시킬 겸 민족의 대 절기인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입니다. 마침 그때 엄청난 구경거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온 예루살렘이 술렁거렸습니다. 스스로 왕이라고 지칭하는 예수라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시몬은 평생에 한 번도 볼 수 없는 구경거리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 곁을 바짝 따라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너 이리와”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가 아닌 줄 알았습니다. 시몬은 꼼짝 없이 예수님이 지시던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모처럼 방문한 고국에서 그는 끔찍한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골고다 언덕까지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온갖 후회가 밀려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가 그렇게 축복된 자리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간 일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아주 신실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바울이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바울을 도왔던 사람입니다.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큰 일군들이 됩니다. 지난 2천년 역사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없을 정도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힘든 일에 선택된다는 것은 운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나와 내 가정에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