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을 방영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가끔 치타가 사냥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표범과 비슷하게 생긴 치타는 지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사슴 떼가 풀을 뜯고 있는 것을 치타가 발견을 합니다. 치타는 그 사슴 중에 사냥할 목표로 한 마리만을 미리 정합니다. 수풀에 숨어 있던 치타가 갑자기 달려들면 사슴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도망을 갑니다. 사슴 중에는 미처 도망을 가지 못하는 놈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슴을 잡으면 쉬울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치타가 다른 것은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처음부터 목표로 한 그 사슴만을 따라가서 잡습니다.

  인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깊은 연구로 권위를 인정 받은 ‘나폴레옹 힐’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 오랜 연구 결과를 ‘성공의 법칙’이라는 책에 밝혀 놓았습니다. 그는 전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들과 성공한 사람들 5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한결 같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자기가 꼭 이루기를 원하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무서운 열정으로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어떤 어려움과 난관에도 그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치타가 사냥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 이 모든 법칙들은 성경에서 온 것입니다. 믿음의 성취를 단지 세상의 성취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오직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사도 바울은 이것을 ‘푯대를 향하여’라는 말로 표현을 해 놓았습니다. 2020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앞에 펼쳐질 멋지고 아름다운 날들을 기대하면서 나의 푯대를 정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바울의 푯대를 향한 축복이 우리의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푯대를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의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인생의 많은 성취를 맛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태어남 자체가 축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중에 가장 출신 성분이 좋았습니다. 정통 유대인입니다. 거기에 로마 시민권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를 지배하던 민족입니다. 지금의 군대 중대장인 백부장 정도만 되어도 식민지 하나를 통치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스승 밑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최고 학부를 졸업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언어에도 뛰어난 재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문학에도 남다른 조예가 넘쳐났습니다. 그는 성품 또한 강인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 목표로 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루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최고한 자질을 가진 사람도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습니다. 목표를 잘못 세우면 남을 해치는 일에 사용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열심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죽이고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당대 최고가 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마음껏 잡을 수 있는 권한을 얻기 위해 시리아의 수도인 다메섹까지 달려갔습니다. 다메섹에 가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올 공문서까지 받아냈습니다. 그 당시 누구도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나라까지 가서 뜻을 이루려는 사람은 바울이 유일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세운 목표를 이루는데 집요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목표를 이룬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꿈 너머의 꿈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하늘의 빛을 쳐다보다가 그만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핍박하던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님의 질문에 바울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 주님을 핍박하는 지 자신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하니까 한 것입니다. 단지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최고의 권력자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성공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꿈 너머의 꿈이 없는 사람은 성공한 인생이 아닙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이 꿈 너머의 꿈을 주십니다. 그것은 주님의 이름을 이방인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꿈은 대단한 소리가 났지만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꿈은 조용했지만 수 많은 영혼들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이 길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얼마나 확신에 찬 고백을 하는 지 모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내가 가진 꿈만으로는 이런 멋진 삶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가 가진 꿈 너머의 꿈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꿈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인생의 푯대를 붙잡아야 합니다.

  두 번째 푯대를 향하는 신앙을 가지려면 지난 모든 일들을 잊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표가 있는 데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일에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잊어버려야 할 첫 번째 지난 일은 잘못한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합니다. 바울은 보통 나쁜 일을 많이 한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그 일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사람들은 스데반을 끌고 바울에게로 갔습니다. 옷을 벗겨서 바울의 발 앞에 던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원하는 대로 했다는 뜻입니다. 스데반에게 가장 앞장서서 돌을 던진 사람도 바울입니다. 물론 모르고 한 일입니다. 아직 복음을 깨닫기 전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바울의 회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의 행동이 너무 극단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커다란 잘못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마저도 회개했다면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앞을 향해 달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잘한 것도 잊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 화려한 출신성분도 내려 놓았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지식도 던져버렸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목표만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미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미쉘 콴이라는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있습니다. 그가 올림픽 경기 해설을 하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얼음은 미끄럽습니다.” 아버지가 수도 없이 해주었던 말이라고 합니다. 얼음은 미끄럽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전혀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경고입니다. 어제까지 잘했다고 오늘도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제의 일에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처음 하는 자세로 겸손 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푯대를 향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가야 합니다. 모든 경기에는 상이 있습니다. 상은 무슨 상이냐고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상은 다 좋아합니다. 지난 12월 31일 민속 잔치를 교회에서 했습니다. 그때 다양한 경쟁을 통해서 우승한 사람에게 상이 주어졌습니다. 상은 모든 일에 동기 유발을 하게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A를 받으면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묻습니다. 상이 있으면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해 성과를 올린 후에는 보너스를 기대합니다. 보너스라는 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도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부르셨을 때는 그 부름에 맞는 상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부름의 상은 3단계를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는 결심입니다. 모세는 왕족의 지위를 포기했습니다. 모든 인생의 영화를 거절한 것입니다. 이것은 용단이었습니다. 가만히만 있어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복들을 던져버린 것입니다. 인생의 더 큰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로서의 지위를 버린 것은 하나님의 부름이 더 큰 가치를 가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모세는 기꺼이 값을 지불했습니다.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에는 축복과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데 칭찬과 격려만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고난과 아픔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자리를 절대 포기하면 안 됩니다. 바로 그 참는 자리에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일시적인 것보다는 영원한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받는 비난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애굽의 보화는 눈에 보이는 재물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받는 아픔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재물입니다. 애굽의 보화는 지금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보화는 나중에 받는 것입니다. 상은 나중에 받을수록 큰 상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상이 가장 큰 상입니다. 이 상을 받을 준비를 하면서 2020년도를 새롭게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