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두 번째 교회인 서머나 교회는 한 마디로 말하면 고난 당하는 교회라고 부를 수 있다.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많은 핍박과 고통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실은 주님의 칭찬만 있지 책망이 없는 교회라는 것이다. 고난이 그들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난 앞에서 서머나 교회는 겸손할 수 있었다. 고난은 그들을 세상에 곁눈질하지 않게 하였다. 서머나 교회에 고난은 오히려 위장된 축복이었다. 

고난 당하는 교회
초대교회 당시 서머나 교회가 당했던 고난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환난이었다. 이것은 외부의 압박에 의해 받는 시련을 가리킨다. 서머나는 로마 제국 안에서 황제에게 가장 충성스런 도시였다. 로마 황제는 곧 신이었다. AD 26년 디베리우스 황제를 위해서 황제 신전을 최초로 건립할 정도로 로마 정부가 가장 믿음직스러워했던 도시이다. 당시 로마의 황제 숭배 정책은 아주 교묘했다. 다른 종교를 핍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드시 황제 숭배를 먼저 하도록 했다. 모든 시민들은 1년에 한 번 황제의 신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래야 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증명서만 있으면 다른 종교 생활에서 제약을 받지 않았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런 법에 대해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달랐다. 황제 신전에 가서 “로마 황제 시저는 나의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 한 마디 고백이 1년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자격을 준 것이다. 신실한 기독교인은 이 한 마디를 못했던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황제를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황제에 대한 고백 증명서를 받지 못했다. 그것은 곧 로마의 적이었다. 로마는 적들에게는 관대함이 없었다. 서머나 교회는 로마 정부의 적이 되고 말았다. 온갖 핍박이 몰려왔다. 그러나 교인들은 타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핍박을 당하면 당할수록 기독교인은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서머나는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 최고의 기독교 도시로 성장해 갔다.

두 번째 서머나 교회의 고난은 가난이었다. 서머나 자체는 부유한 도시였다. 로마의 절대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인들의 삶은 가난하기 그지 없었다. 황제 숭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변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가난은 결코 믿음을 막지 못한다. 가난할 때 믿음은 더욱 성장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주님만을 믿고 살아간다. 주님은 서머나 교인들을 이렇게 칭찬하셨다. “네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계2:9). 진짜 부자는 돈이 많은 것이 아니다. 주님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부자인 것이다. 한자에 ‘어목혼주’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 눈알과 진주를 섞어놓으면 처음에는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확연히 구분이 되는 법이다. 물고기 눈알은 금방 썩고 진주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진정한 부자는 주님을 가까이서 섬기는 사람들이다.

서머나 교회의 세 번째 고난은 유대인들의 훼방이었다. 훼방은 중상모략이라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있지도 않은 말을 악의적으로 퍼트리고 다녔다. 매주일 성찬식을 하는 것을 보고는 기독교인은 사람의 피와 고기를 먹는 식인종이요 귀신들이라는 소문을 낸 것이다. 예배 후에 형제 자매들이 서로 인사하고 포옹하는 것을 보고는 성적으로 타락한 혼합종교라고 공격을 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되면 가정을 파괴하는 불한당이 된다고 소문을 낸 것이다. 중상모략은 지금도 예수를 잘 믿으려고 하면 받을 수 있는 고난이다.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공격이 늘 있기 때문이다. 잔디밭에는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잡초가 늘 자라고 있다. 약도 뿌리고 뽑기도 한다. 그래도 며칠 지나면 여전히 생겨난다. 잡초를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잔디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키우는 것이다. 내 영혼이 건강하면 중상모략은 힘을 쓰지 못한다. 서머나 교회는 끝없는 유대인들의 훼방속에서도 건강하고 신실한 교회로 성장해 나갔다. 주님은 이런 서머나 교회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서머나 교회의 순교자, 폴리갑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이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는 이 교회의 감독 폴리갑이 순교하기 60년 전의 일이다. 주님의 칭찬대로 서머나 교회는 환난, 가난, 훼방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하게 믿음을 키워나간 교회였다. 하지만 교회에 대한 박해는 점점 심하여져만 갔다. 폴리갑은 사도 요한의 직계 제자였으며, 서머나 교회를 영적으로 책임지던 감독이었다. 서기 156년부터 서머나에는 대대적인 박해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서머나의 총독이던 스타티우스는 11명의 기독교인들을 원형 경기장에 몰아넣고 야수의 먹이로 희생시켰다. 이때 폴리갑은 군인들에 의해 체포된 상태였다. 그도 곧 사형에 처해질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총독은 폴리갑의 인격과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던 그를 살리기 위해 신앙을 부정하라고 권고했다. 그때 폴리갑의 나이가 86세였다. 폴리갑은 자신의 살려주려고 회유를 하는 총독과 군중들 앞에서 이렇게 결연하게 말했다. “지난 86년 동안 나는 예수님을 섬겼소.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나를 버린 일이 없소. 어떻게 그를 모른다고 하여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욕되게 할 수 있겠소!” 라고 거절하였다. 그 말을 들은 군중들은 분노하기 시작했고, 폴리갑을 사자밥이 되게 하라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총독은 좀 더 시간을 벌기 위해 이미 경기가 끝났다고 선언을 한다. 이에 이성을 잃은 군중들은 물러가지 않고 그를 장작더미에 올려 화형을 시키라고 외쳐댔다. 결국 총독은 군중들의 요구를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로마 군사들은 장작더미에 폴리갑을 올려놓고 불이 붙였다. 폴리갑의 순교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날의 일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불길이 크게 솟아올랐을 때 우리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불꽃은 마치 바람을 맞은 돛처럼 아치형태를 이루어 순교자 폴리갑의 육체를 담처럼 에워쌌습니다. 그 한 가운데 선 폴리갑의 몸은 전혀 불타는 육체 같지 않았습니다.” 폴리갑이 순교를 하던 당시 군중들은 이렇게 외쳤다. “이 사람은 우리 신의 파괴자이다. 그는 기독교인들의 아버지다” 지금 생각하면 기독교인이 대한 최대의 찬사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가는 곳에 우상이 파괴된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폴리갑 기념 교회
소아시아의 일곱 도시 중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유일한 도시가 바로 서머나이다. 단지 도시의 이름만 서머나에서 이즈미르로 바뀌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23년 오스만 터키 시대를 끝내고 터키 공화국이 되면서 이즈미르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BC 800년 경에 살았던 그 유명한 그리스 최대의 서사시인인 호머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호머는 서양 문학의 효시가 되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쓴 사람이다. 이즈미르는 ‘에게해의 진주, 아시아의 사랑, 아시아의 꽃, 아시아의 면류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규모면에서도 이스탄불, 앵카라 다음으로 가는 터키 3대 도시 가운데 드는 도시가 바로 서머나인 것이다. 지금은 터키가 완전한 회교국가이기에 천년 비잔틴 제국의 기독교 유적들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그 중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유적이 바로 이 서머나, 이즈미르에 있는 폴리갑 기념교회인 것이다. 아직도 소수의 크리스챤들이 합법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는 것은 폴리갑의 순교가 아직도 서머나에는 신앙의 흐름을 이어가게 만들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폴리갑 기념교회는 서기 400년대 비잔틴 시대에 성대하게 세워졌다. 하지만 현재 교회는 오스만 터키가 지배하고 있던 18세기 후반에 크지 않은 교회로 지어졌다. 200년이 넘은 관계로 교회의 이곳 저곳이 많이 낡아져 있다. 종탑도 녹이 많이 슨 상태이지만 보수 작업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교회 안에는 폴리갑의 화형을 묘사한 성화와 폴리갑의 생애와 관련된 성화가 그려져 있어서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성화들은 프랑스의 화가 ‘레이몽 페레’가 그린 것인데 그 중 한 그림이 잔잔한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불길에 싸인 폴리갑을 향해 한 사나이가 칼을 들고 달려들고 있고, 칼은 든 사람의 뒤에는 또 한 사람의 순교자가 손이 묶인 채 체념한 표정으로 화형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화형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화가 자신인 페레라고 한다. 화가 자신도 폴리갑의 뒤를 잇는 순교자로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자세히 보면 폴리갑의 눈길은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 페레 자신의 눈길은 땅을 향하고 있도록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다. 아직 폴리갑의 순교 정신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순교의 그림자라도 밟아야만 한다는 믿음의 소원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