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목자/목녀 수련회에서 교재로 사용했던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사막에 숲이 있다’라는 책입니다. ‘인위쩐’이라는 중국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985년 20살 때 그는 아버지가 끄는 마차를 타고 모래 언덕을 넘어 시집을 가게 됩니다. 말이 결혼이지 아무도 살지 않는 사막 한 가운데 움막을 처 놓고 살고 있는 바이완샹이라는 청년에게 시집을 온 것입니다. 그가 살던 곳은 황사의 진원지인 네이멍구의 마오우쑤 사막이었습니다. 그래도 전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한적한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황사가 불기 시작하면서 나무도 풀도 살아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자연히 사람들은 그 지역을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바이완샹이라는 청년 한 사람만 그곳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도 다른 지역으로 가고 싶었지만 능력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정착할 의욕도 열심도 없었던 것입니다. 결혼한 지 40일 만에 처음으로 사람 구경을 할 정도로 적막한 곳이었습니다. 인위쩐은 자기를 시집 보낸 부모님을 원망하며 날마다 울었습니다. 몇 번이나 짐을 싸서 그곳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은 바람 부는 모래 언덕에 서서 울고만 있었습니다. 떠나가는 아내를 잡지도 못하는 남편이 너무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매번 주저 앉곤 했습니다.

  그 지역을 떠나지도 못하고, 남편을 버릴 수 없다고 판단한 인위쩐은 사막을 변화시키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살 수 있는 곳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인근 마을에 가서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풀씨와 묘목을 사왔습니다. 여름 내내 6미리밖에는 비가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양동이로 물을 길러다 주었습니다. 낮에 물을 주면 증발하기 때문에 밤새 물을 날랐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묘목들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30여년 동안 끊임없이 나무를 심고 물을 주었습니다. 너무 지쳐서 사막 한 가운데 쓰러져 잠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드디어 풀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도 하루가 다르게 커갔습니다. 풀이 자라는 곳에 양떼를 방목했습니다. 나무 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자 사막에는 점차 흙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밭을 일구었습니다. 옥수수와 콩, 수박, 참외 농사를 지었습니다. 토끼도 키우고 닭도 키웠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그곳을 사막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초목이 우거진 사람 사는 곳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지난 30여년간 사막을 옥토로 바꾼 면적이 여의도의 8배에 해당하는 면적입니다. 이제는 고향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사막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믿기 때문입니다. 떠날 때는 죽음의 그림자가 그들을 덮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그들의 얼굴에는 소망과 기쁨만이 충만합니다. 그들은 힘을 합쳐서 주변의 사막을 점점 사람 사는 땅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것을 바로 부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땅이 생명의 땅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막이 변하여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떠나는 곳이 바뀌어 사람이 모여드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바뀝니다. 늘 피곤하고 지쳐있던 사람들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혼자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웃과 같이 사는 법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목표가 내가 아닙니다. 우리가 목표가 됩니다. 내가 잘사는 것이 우선 순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됩니다. 모든 일에 활력이 넘쳐 흐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삶에 주시는 부흥의 역사입니다. 올 한 해를 우리에게 이런 영적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해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영적 부흥이 일어나는 두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영적 부흥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깊은 갈증에서 시작이 됩니다. 우리 신체에는 ‘탈수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몸에 물이 공급되지 않아서 생기는 병입니다. 먼저 입술이 마릅니다. 혓바닥이 깔깔해집니다. 두통이 생깁니다. 좀 더 심해지면 몸의 모든 관절이 뻑뻑해집니다. 그런대도 물을 마시지 않고 3일만 가면 사람은 죽습니다. 다른 병이 전혀 없는데도 탈수증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 몸에 ‘갈증’이라는 경보장치를 달아 놓으신 것입니다. 건조한 지역인 덴버에서는 더 많은 물을 매일 마셔주어야 합니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령한 수분인 말씀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채워지지 않으면 툭하면 화를 냅니다. 근심 걱정으로 편할 날이 없습니다. 죄가 찾아옵니다. 죄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고칠 능력이 없습니다. 인생의 깊은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남을 이기려고만 합니다. 양보하는 미덕이 생기지 않습니다.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늘 힘들고 피곤하다는 생각만 합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의 고통이 심해집니다. 영적인 경보기가 울리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갈증을 느낀다는 사인입니다. 이때는 말씀의 수분이 채워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의 고통은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할 ‘갈등’이 아닙니다. 채워주어야 할 ‘갈증’이라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목이 마르면 우리는 물을 벌컥벌컥 마십니다. 입 밖으로 흘러 넘치게 마십니다. 셔츠가 다 젖을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영혼이 목마른 자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7:37-38) ‘목이 마른 사람이 우물물을 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갈증이 느껴져야 물을 찾습니다. 영혼이 갈급해야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누가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겠습니까? 말씀에 대한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면 생수의 강이 우리 안에서 흘러 넘칠 것입니다. 올 한해 말씀을 듣는데 더 집중해야 합니다. 주일 예배, 금요 예배, 새벽 예배 등 시간과 정성을 들여 참여하고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성경 1독 프로그램에도 꼭 참여해서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7-8년 전 멕시코 오하까 선교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곳 교인들을 모아 놓고 하루 7시간도 말씀을 전했습니다. 4일 동안 말씀을 전했는데 25시간을 전했습니다. 하루 평균 6시간은 한 것입니다. 그래도 교인들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하루는 아주 깊은 산골 교회에 갔습니다. 저녁 8시에 모이는 예배였습니다. 한 시간 설교를 하고는 기도하고 내려와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가지를 않습니다. 선교사님이 제 곁으로 오더니 “목사님, 더 하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는 다시 강단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을 더 말씀을 전했습니다. 끝난 시간이 밤 11시였습니다. 그래도 집에 돌아가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집집마다 가져온 음식을 꺼내놓고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 12시에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교회는 지금도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영적 부흥이 일어나려면 은혜 받기로 작정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주고 받는 모습을 살펴보면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로 먼저 주고 나중에 받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Give & Take 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받고 나서 나중에 줍니다. Take & Give 를 말합니다. 사람들이 누구를 더 좋아하겠습니까? 누가 더 성공할 가능성이 크겠습니까? 얼핏 보면 ‘주고 받는 것’이나 ‘받고 주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게 그거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효과 면에서 보면 이 둘은 완전히 다릅니다.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보수 이상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더 많이 주면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받고 나서 주겠다는 것입니다. 받지 않으면 주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주고 나서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받기 전에 열심히 일합니다.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누구에게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하겠습니까? 더 많은 보수를 받고 싶다면 먼저 보수 이상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사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가 있어야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인가 채워져야 그 다음에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을 먼저 축복하셔야 주님의 일도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이 잘 되고 형통해야 믿음 생활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먼저 주님께 나오는 사람입니다. 형편과 상관없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미 감사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무슨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나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듣기 전부터 말씀에 나를 온전히 맡기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