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년 보스턴의 어느 작은 교회에서 한 교사가 아이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열정적으로 가르쳤습니다. 반 아이들 중에는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구두방에서 일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선생님의 가르침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 19세기말 미국과 유럽을 뒤흔든 세계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디엘 무디 목사님이십니다. 그 후 어느 날 무디가 영국 런던의 한 집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말씀에 감동을 받고 주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프레드릭 메이어였습니다. 메이어는 곧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무디와 함께 복음 전도 사역에 뛰어들었습니다. 메이어의 설교를 듣고 채프먼이라는 사람이 감동을 받고는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채프먼은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던 한 야구선수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선수는 보스턴에서 150만명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빌리 선데이였습니다. 빌리 선데이가 샬롯이라는 도시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말씀을 전해도 그날 따라 아무도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실망스런 표정을 가까스로 참고 집회를 끝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청중 뒷쪽에서 어린 소년 하나가 강대상 앞으로 나오더니 예수를 영접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직 12살 밖에 되지 않는 소년이었기에 그 집회의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빌리 선데이가 크게 실망하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년이 바로 전세계 2억명에게 복음을 증거한 빌리 그래함 목사가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많은 사람이 큰 열매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 지 모릅니다. 한 사람이 나라를 살릴 수 있고, 교회도 반석 위에 올려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바로 그런 한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구약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만났던 구약의 두 인물이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지킬 율법의 기초를 놓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북극성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온 나라가 갈길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를 보면 길이 보였습니다. 엘리야의 말을 들으면 힘이 생겼습니다. 

로렌스라는 학자가 송사리류의 물고기를 가지고 실험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는 물고기 한 마리의 뇌 부분에 손상을 가했습니다. 그러자 그 물고기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어댔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다른 물고기들이 잠시 어리둥절해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한 물고기의 행동이 다른 물고기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물고기조차도 한 마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북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대가 바로 아합왕 시대입니다. 아합은 이세벨과 더불어 온 나라를 바알 우상의 본거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선지자는 엘리야 한 사람이었고, 바알의 선지자는 무려 850명이었습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상황을 역전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온 세상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흔들어댄다고 해도 북극성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목표를 향해서 반듯이 갈 수 있습니다. 당시 엘리야가 바로 바로 그 북극성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당시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걸출한 가문출신도 명문대학 출신도 아니었습니다. 길르앗에 있는 디셉이라는 곳에서 엘리야가 살았습니다. 디셉은 길르앗 지방에서도 아주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특히 지금의 난민촌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외국에서 도망온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아주 깡촌 중에 깡촌입니다. 그곳에서는 어디서 왔는 지도 묻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했는 지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엘리야의 배경에 대한 아무 기록이 없는 것입니다. 어느 지파 출신인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의 부모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남들에게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주 평범한 촌부가 바로 엘리야였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눈이 그 평범한 촌부에게 머물러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조건을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은 곧 가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가졌느냐를 보시지 않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가질 것인가를 보십니다. 우리 안에 숨겨진 가능성을 보고 일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디엘 무디와 프레드릭 메이어, 채프먼, 빌리선데이, 빌리그래함은 지난 150년간 놀라운 복음 전도의 역사 계보를 이어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뒤에서 이들의 사역을 가능케 했던 거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에드워드 킴볼이라는 주일학교 선생님입니다. 당시에 많이 알려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 후에 무슨 일을 했는 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주일학교 선생님들 중 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자기 반에 무디가 들어왔을 때 성경책을 한 권 사주었습니다. 그러나 글자를 모르던 무디는 창피함에 그 다음 주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킴볼 선생님은 그가 일하는 구둣방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한 자 한 자 읽을 수 있도록 격려하며 가르쳐주었습니다. 무디는 1년 후에 드디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킴볼이 했던 전부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뒤흔들만한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한 사람만 소중하게 보면 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한 사람을 눈여겨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엘리야는 시골벽지 출신의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눈여겨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를 눈여겨 보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의 믿음때문입니다. 당시 아합왕은 이스라엘 정치사에 가장 악한 왕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합의 악행은 그가 이웃 나라의 공주와 정략 결혼을 하면서 더욱 기세를 떨치기 시작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북서쪽에 위치한 시돈은 해상 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이 시돈과 야합을 했습니다. 시돈 왕의 딸인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세벨은 잔인하기로는 아합을 훨씬 능가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의 가장 큰 악행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뿌리채 뽑아버린 것입니다. 그 대신에 바알 우상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세라 신을 들여왔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을 모두 파괴했습니다. 선지자나 제사장은 모두 죽였습니다. 온 나라가 암흑천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숨을 쉴 수조차 없었습니다. 결국은 대부분의 백성들이 신앙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힘든 고통 속에 현실과 타협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엘리야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아무리 강한 도전에도 신앙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앙의 불꽃을 더 타오르게 했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습니다. 과거에도 살아계셨고 지금도 살아계신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계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떤 세상의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엘리야의 신앙고백은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죽을 때까지 섬기겠다는 결심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바알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삶의 목표를 잃은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바알을 따라갔습니다. 형편에 따라 삶의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 삶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에는 많은 도전이 다가옵니다. 죽을때까지 아무 문제없는 편안한 신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앙에 대한 회의도 다가옵니다. 믿음 생활하다가 위로받기 보다는 상처를 더 입을 수도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급박한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경쟁에서 져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해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격이 잘못되어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없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주인을 잘못 만나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주인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오늘 엘리야처럼 하나님만을 일평생 섬기겠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