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믿음이 좋다고 소문난 사람이 상습 침수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 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홍수가 날 것이라는 예보가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그때 긴급 구호 차량이 그 집에 와서 섰습니다. “어서 이 차에 타세요. 곧 홍수가 날 겁니다” 구조 대원이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그 집주인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싫소.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실 것이오.” 곧 물이 현관에까지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에 구조 보트가 다가왔습니다. “어서 배에 타세요. 잠시라도 지체하면 물에 빠져 죽습니다.” 구조원은 긴급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는 얼굴에 미소까지 띠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싫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실 것입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곧 더 큰물이 밀려오더니 현관 지붕을 덮어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굴뚝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이번에는 구조 헬리콥터가 왔습니다. “이 밧줄을 잡으십시오. 안전하게 끌어올리겠습니다. 온 동네가 다 물에 잠기고 말 것입니다.” 조종사는 마이크로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싫소. 하나님께서 나를 반드시 살리실 것입니다.”

  그는 결국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하늘나라에 도착한 그는 베드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불만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당연히 살려주실 줄만 알았습니다.” 베드로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차와 보트와 헬리콥터를 당신을 위해 보냈는데 도대체 무엇을 기대한 것이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듣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믿음의 선진들에게 꿈으로, 환상으로, 직접적인 말씀으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지금은 더 이상 그런 방법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만약 지금도 하나님이 성경에 말씀하시던 방법으로 음성을 들려주신다면 성경은 66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계속해서 새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만들어져서도 안 됩니다. 우리 신앙에 큰 혼란만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구원 역사에 필요한 하나님 말씀은 완성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네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말씀 속에는 수 많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매일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105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말씀을 보아야만 내 앞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어야만 빛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단 하나를 가지고 갑니다. 믿는 사람들의 관 속에는 반드시 성경이 놓여있습니다. 장례식에서 viewing을 할 때 사자의 두 손 위에는 평상이 그분이 늘 보고 묵상하던 성경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저도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날 제가 쓰던 성경책을 꼭 가지고 가고 싶습니다. 이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있기에 우리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으면 우리는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절대 들고만 다녀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이 성경에는 엄청난 보화가 이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통로는 말씀을 가지고 전하는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1-12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두신 목적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성도들이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함입니다. 설교를 들으면 우리가 온전해 집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사모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제일 먼저 설교에 감동이 없습니다. 설교에 은혜가 되지 않으면 봉사하는 것도 기쁨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배가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찰스 스펄젼 목사님은 1800년대 중 후반 세계 최고의 설교가였습니다. 그의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였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 당시 매주 만 명이 모였습니다. 미국에 있는 교회들이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영국으로 왔습니다. 그는 그의 설교를 배우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스펄젼은 그들을 지하 기도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기도실에는 뜨거운 불을 뿜으며 기도하는 400명의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방문객들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분들이 제 설교의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설교의 능력은 이 분들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설교는 단순히 기술이 좋아서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운 것이 많아서 좋은 설교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잘해서 설교가 우리 귀에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설교에는 반드시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설교를 단순히 듣기 위해서 교회에 오면 안 됩니다. 설교자를 위해 뜨겁게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설교에 불을 지피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음성은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의 감동입니다. 로마서 8:16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를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인지 아닌지도 아십니다. 우리가 바른 길을 갈 때는 성령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내 마음도 평안해집니다. 성령의 감동이 우리 마음을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길을 갈 때 성령은 탄식하며 기도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우리 눈에 티끌 하나만 들어가도 눈이 불편해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손가락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시 하나만 박혀도 불편해합니다. 신경이 쓰여서 다른 일을 하지 못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아주 민감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기쁘게 한다면 하나님의 음성은 선명하게 들려올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음성은 내적 음성 혹은 양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옵니다. 로마서 9:1-2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물론 성령의 감동과 양심의 소리는 구분이 갈 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양심과 성령이 같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테네시 네쉬빌에 밴더빌트 대학이 있습니다. 아주 우수한 명문 대학입니다. 이 학교에 들어오는 모든 신입생들은 학교 생활 내내 정직하겠다는 선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언문에 서명을 합니다. 그 선서를 강당의 큰 로비에 붙여둡니다. 그 선서 옆에는 메디슨 세랫 교수가 했던 말이 같이 걸려있습니다. 메디슨 교수는 수학과 교수로 학생들에게 평생 정직성을 가르치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시험을 주려고 합니다. 하나는 삼각함수이며 다른 하나는 정직에 대한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두 가지 시험에서 모두 합격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중 한 가지를 실패해야 한다면 삼각함수를 실패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삼각함수는 실패했어도 세상에서 성공한 좋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직에 대한 시험을 실패한 사람치고 이 세상에서 좋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양심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비록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는 실패할 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보다 크게 성공하지 못할 수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연속해서 시련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직에 대한 시험에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앙 양심에 정직한 사람을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은 멈춘 적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하지 않아서 못듣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만 한다면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