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에 단골 후보로 오르는 메릴 스트립이라는 여배우가 있습니다. 여우 주연상 후보에 무려 19번이나 올랐습니다. 평생 한 번도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지 못한 배우들이 대다수입니다. 하지만 메릴 스트립은 3번이나 수상을 했습니다. 골든 그로브 상 후보에도 무려 29번이나 올라갔습니다. 그 중에 8번이나 수상을 하게 됩니다. 아카데미와 골든그로브에 이렇게 많이 후보로 올라간 경우는 메릴 외에는 없다고 합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가 ‘철의 여인’,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등 유명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는 아주 뛰어난 연기력으로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20세기 최고의 배우라고 비평가들조차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견디기 어렵고 힘들었던 무명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배우의 꿈을 키워왔습니다. 성악을 전공한 그는 이미 배우로서의 기본 자질은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도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면서 하루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습니다. 숙박비가 없어서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호텔, 식당의 종업원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는 27살에 다시 한 번 영화 ‘킹콩’ 오디션에 도전을 합니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좌절을 겪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작자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이 배역을 맡기에는 당신은 너무 못생겼습니다.” 배우가 되겠다는 평생의 꿈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제작자를 쳐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울먹이며 그 자리를 뛰쳐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제작자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영화에 출연하기엔 내가 너 못생겼다니 유감입니다. 하지만 당신 말은 그냥 수천 개의 의견 중 하나일 뿐입니다. 나에 대한 좀 더 친절한 의견을 찾아야겠습니다.” 그는 오디션 장을 나오면서 땅을 보고 걷지 않았습니다. 높고 찬란한 하늘을 보았습니다. ‘못생겼다’는 한 마디는 잊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자기를 정확하게 평가해줄 수 있는 수천 개의 다른 의견들을 기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 지난 날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아카데미상 트로피를 18개나 갖고 있습니다.”
그때 눈을 들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배우가 되는 길도 포기하고 낙심과 절망 중에 평생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고개를 숙이면 내 주변만 아주 작게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얼마나 넓은 하늘이 보이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도 고개가 한참 숙여져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눈을 들어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롯이 삼촌 아브라함을 떠날 때의 일입니다. 롯은 단순히 조카가 아니었습니다. 아들과 같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집으로 데려다가 키웠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을 같이 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아무도 아브라함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롯만은 아브라함 편이었습니다. 망망대해를 향해 떠날 때 아브라함의 손을 굳게 잡고 같이 갔습니다. 미래의 꿈을 나누었습니다. 하란에서도 같이 했습니다. 가나안도 같이 왔습니다. 흉년을 맞아 애굽으로 갈 때도 롯은 그림자처럼 아브라함 곁에 있었습니다. 아들과 같다는 것만으로 롯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롯은 아들이며 동시에 친구였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였습니다. 험난한 인생길을 같이 가는 동역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바로 롯이었습니다.
그런 롯이 드디어 아브라함 곁을 떠났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갔습니다. 얼마나 허망한 지 모릅니다. 한쪽 팔이 잘려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힘이 빠진 것입니다. 아무 다툼 없이 초목지의 분쟁은 잘 해결이 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 보는 앞에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서로 얼싸 안고 사이 좋게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롯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의욕도 열정도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달려온 인생 길에 피곤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 것입니다. 너무 믿었던 사람이 갑자기 곁을 떠날 때 이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가 떠나는 것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을 지도 모릅니다. 이제 식구라고는 아내 사라 밖에 없습니다. 물론 하인들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 힘이 되어 줄 사람은 롯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첫 마디가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있었습니다. ‘너 있는 곳’은 롯을 떠나 보낸 자리, 슬픔과 아픔의 자리, 서운함과 아쉬움의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롯의 자리는 너무나 컸던 것입니다. 그래서 허전했던 것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면 불과 몇 미터 반경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보면 얼마나 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는 지 모릅니다. 무한한 창공입니다. 몇 년전 캔자스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차를 가지고 덴버에서 서쪽으로만 가보았지 동쪽으로는 거의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김영민 집사님이 네브라스카에서 모텔을 하실 때 초원지기들과 심방을 한 번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 외에는 동쪽으로 갈 일이 없었습니다. 덴버를 벗어나자 망망한 평지가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정말 볼 것이 없는 운전 길이었습니다. 저는 덴버로 돌아오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덴버까지 100마일이 남았다는 사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서쪽으로 산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도 눈이 덥혀있는 산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 덴버에 있는 산은 아닐 거야! 100마일이나 남았는데 그게 보이겠어!”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분명 이 덴버 외에 동쪽으로 가는 길에 산은 없다고 들었는데 그럼 어떻게 된 거야!” 덴버로 오는 내내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70마일이 남았습니다. 처음 보았던 그 산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50마일 남았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30마일 남았습니다. 이제는 점점 뚜렷해졌습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는 산이었습니다. 눈이 덮인 봉우리는 파이크스 픽이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100마일 밖도 분명히 보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시대는 얼마나 공기가 청명했을까요? 지금보다 훨씬 멀리 보였을 것입니다. 동서 남북으로 100마일씩 보인다면 얼마나 넓은 땅에 그의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고개를 숙일 때 보는 것과 고개를 들었을 때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과 하나님의 차이입니다. 롯이 아브라함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힘을 의지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격려도 필요하고 위로도 필요합니다. 급할 때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제 변할지 모릅니다. 롯이 자기 곁을 떠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삶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어떤 변화가 올 지 장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롯은 떠나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힘들 때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동서남북을 쳐다보게 하십니다. 하늘을 지으신 분이 누구입니까? 동서남북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메릴 스트립이 영화 제작자에게 모멸감을 느꼈을 때 그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배우가 되려는 꿈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준비해왔던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어버릴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는 그 순간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내가 못생겨서 그 영화에 출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 대한 수천 개의 의견 중 하나 일뿐입니다. 나는 남아 있는 수 천 개의 다른 의견을 들을 것입니다.” 단지 영화 제작자에게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있는 자신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땅만 바라보면 그 하나의 의견이 전부 다 인 것처럼 보입니다. 못 생겨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것은 수 천 개의 견해 중 오직 하나 일뿐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보십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그 하나님을 믿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눈을 들어 하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