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세 번째 교회인 바가모 교회는 한 마디로 말하면 사탄의 권좌가 있었던 도시에서 오직 복음 하나를 붙들고 끝까지 버텼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너무도 강한 악한 영의 세력을 믿음으로 이겨냈던 성도들도 있는 반면, 그 힘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모습도 같이 공존했던 교회이다. 주님에게서 칭찬도 받았지만 책망도 받았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버가모는 오늘날 베르가마(Bergama)라 불리고 있는 에베소에서 약 6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이다. 에베소나 서머나처럼 해안 도시는 아니기에 무역이나 상업이 크게 발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대 페르가몬 왕국의 수도로서 BC 231년부터 AD 133년까지 소아시아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 안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도시이다. 당시 시민들의 자부심 역시 대단했다. 로마의 저술가 플리니는 버가모를 가리켜 ‘아시아의 가장 유명한 도시’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탄의 권좌
버가모는 페르가몬 왕국의 수도로서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페르가몬 왕국은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이었던 리시마쿠스가 세운 왕국으로서 잘 알려져 있다. 리시마쿠스는 높이가 천 피트가 넘는 버가모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도시의 중심부를 세웠다. 군사기지로서 어느 누구도 쉽게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버가모의 모든 유적들이 남아 있다. 성벽이나 신전들이 리시마쿠스 후에 통치를 했던 유메네스 2세와 아탈로스 2세가 건설한 것들이다. 이렇게 부유하고 막강하었던 버가모 왕국의 마지막 왕인 아탈로스 3세는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가 없었다. 이미 그때는 로마 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때였다. 로마에 맞섰다가는 버가모의 멸망이 불가피한 것을 간파한 아탈로스 3세는 BC 133년 로마에 왕국을 아무 조건 없이 양도를 했다. 그 이후 왕국이었던 버가모는 로마의 속국으로서 한층 더 발전된 성장을 이루어가게 된다. 

버가모의 중심부가 세워진 언덕 위(아크로폴리스: 언덕 위 도시)에는 최고의 신인 제우스 신전을 비롯해서 아테나 신전, 헤룬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 에메테르 신전 그리고 아스클레피온 신전 등 6개의 그리스 신전이 세워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집트의 세라피스 신전과 로마 황제들의 신전도 여러 개가 건설되었다. 가히 이방 종교의 중심지라고 불릴만 했다. 사도 요한은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2:13). 바가모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요, 사탄이 사는 도시였다고 주님도 인정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런 도시에서 믿음을 지켜나갔던 버가모 교회 성도들의 결연한 자세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아스클레피온 의과대학 병원
버가모가 고대 사회에서 유명해진 이유 중에 하나는 아스클레피온이라는 의과 대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이 대학에 있었다. 해부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갈렌이라는 의사도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활동했다. 아스클레피온 의과대학 병원은 BC 4세기에 건립되었지만 지금 남아 있는 대부분의 유적들은 AD 2세기 로마의 황제인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건축되어진 것들이다. 의과대학 병원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실상은 치료의 신인 아스클레피온 신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 신전 안에는 아스클레피온의 숭배대상인 ‘살아있는 독사’를 담고 있는 비밀상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지금도 뱀이 지팡이를 감고 올라가는 로고가 모든 병원과 의료협회들의 상징이 된 것은 바로 이 아스클레피온 신전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혀 있다가 1967년에 발굴된 길이 하나 있다. 바로 버가모의 아크로폴리스를 올라가면 아스클레피온 신전으로 가는 대리석으로 잘 닦여진 길이다. 도로의 길이가 무려 820m가 되며 폭도 18m로 꽤 넓고 긴 길이다. 신전 가까이에 이르는 40m의 길에는 양쪽으로 이오니아식 기둥들을 줄지어 세움으로써 화려하게 장식을 해놓았다. 이 길의 이름은 ‘성스러운 길’이라고 불렸다. 

세계 각처에서 버가모의 이 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환자들이 이 성스러운 길에 들어서게 되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이 과정에서부터 치료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당시 환자들은 이 길을 걸으면서 죽음의 신 ‘하데스’로부터 멀어지고 건강과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온에게 가까이 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아스클레피온에 들어서면 하데스의 신이 더 이상 침범할 수 없다는 믿음이 환자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했던 것이다. 아스클레피온 신에게는 특별한 호칭이 하나 더 붙는다. ‘아스클레피온 소테르’라고 불렀다. ‘소테르’는 구원주를 말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병에는 모든 사람이 약하다. 병만 낫는다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실한 믿음을 가진 버가모 교인들은 달랐다. 아무리 병이 낫지 않는다고 해도 주님의 이름을 저버리지 않았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질병의 위협 앞에서도 오직 몸과 영혼을 다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바로 버가모 성도들이었던 것이다.

세라피스 신전
아스클레피온 신전에서 아크로폴리스로 가다가 보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신전 유적이 하나 나온다. 붉은 벽돌로 지어져서 붉은 궁전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건물이다. 건물의 길이가 260m이며 폭이 100m가 될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나다. 현재는 건물의 상층부가 붕괴되어 하늘이 다 열려있지만 높이는 19m나 될 정도가 대형 신전이다. 이 신전은 이집트의 신인 세라피스를 모신 신전인데 로마시대에 지어졌다는 것이 흥미롭다. 로마시대에 로마 속국에 이집트 신전을 세운 것은 특이할 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라피스 신전이 기독교가 공인되고 난 다음에는 버가모 교회로 사용되어졌다는 것도 놀랄만한 일이다. 물론 지금도 교회가 이슬람 사원이 되기도 하고, 이슬람 사원이 시대가 바뀌면서 교회로 사용된 일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실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전의 교회는 건물로써 남아 있는 유적들이 거의 없다. 교회 건물을 짓도록 로마 정부가 허락을 해줄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가정교회로서 가정이나 정해지지 않은 특정 건물을 매주 바꿔가면서 모였을 것이다. 요즈음 다시 기독교를 탄압하고 있는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교회 모습들이 그 당시 초대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버가모 도서관
버가모에 남아 있는 유적 중에 특히 눈을 끄는 것은 당대 세계 2대 도서관으로 유명했던 도서관 유적이다. 고대 사회 최고의 도서관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 당시 장서가 무려 50만권이 될 정도록 세계의 모든 책들이 모여있었다. 당시의 서적들은 이집트에서 생산되는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집트가 이 파피루스의 수출을 금지하였다. 다른 지역에 책이 모이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이미 도서관을 세우고 그 규모를 키우고 있었던 버가모는 크게 당황을 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양피지였다. 송아지나 어린 양의 가죽으로 가죽 종이를 개발해 낸 것이다. 그만큼 책에 대한 갈망이 버가모 사람들에게는 대단했던 것이다. 이 양피지를 그 당시 헬라어로 ‘페르가멘트’(Pergment)라고 불렀다. 이것은 당시 버가모 도시의 이름인 페르가몬에서 유래된 말이었다. 이렇게 양피지로 만든 책들이 무려 2십 만권이나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이 버가모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주님은 버가모의 가장 큰 자랑으로 안디바라는 사람을 소개하고 계신다.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2:13). 버가모에 있어서 주님의 가장 큰 자랑은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에서도 믿음을 끝까지 지킨 안디바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큰 자랑은 돈도, 명예도, 대형 건물도, 세계 제2의 도서관도 아닌 믿음을 끝까지 지킨 믿음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