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성경에 나오는 사울왕입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 가운데 가장 힘이 없는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그의 가문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높은 직위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농부 출신입니다. 공부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왕의 수업을 쌓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성령을 부으셨습니다. 왕으로서의 능력도 권위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남다른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는 사울 한 사람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자자손손 대대로 은혜가 넘쳐나도록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그를 통해 인류 구원의 역사가 펼쳐질 것입니다. 단지 왕이 된 것만 좋아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을 사람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중단되었습니다. 사울이 은혜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왕이 된 후 불과 몇 년까지만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 후로 그는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갑니다. 왕이면 무엇 하겠습니까? 그의 마음에는 평강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진정한 기쁨도 즐거움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무너뜨리는 적으로 보였습니다. 그 두려움을 없애려고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결국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전쟁터에 죽고 맙니다. 결국 그는 은혜를 잃어 버린 대표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은혜 없는 삶은 삭막하기 때문입니다. 은혜 없이는 우리 인생이 풀리지도 않습니다. 은혜 없이는 감사도 없습니다. 마음에 평강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더 큰 은혜를 사모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얼마든지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실 준비를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더 이상의 은혜를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은혜 조차도 귀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점점 은혜를 소홀히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은혜를 감사하지 않고 소홀히 여기면 은혜는 사라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은혜를 잃어 버리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교만하면 은혜를 잃어 버립니다. 사울은 왕이 된 후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불과 600명이 수십만의 대군을 물리친 것입니다. 나라는 더욱 부강해졌습니다. 사울의 왕권 역시 탄탄대로를 걷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에게 명령을 하신 것이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을 정벌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말렉은 애굽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광야 지역에 살던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이 40년간 광야를 지날 때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치른 최초의 전쟁도 아말렉과 싸운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로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아말렉은 싸움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전면전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게릴라 작전을 폈습니다. 이스라엘이 행군하는 가운데 가장 후미 부분을 쳤습니다. 뒤떨어져서 걸어오는 병약한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가장 기분 나쁜 것이 뒤통수를 치는 것입니다. 40년 내내 이런 못된 짓을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말렉을 절대 용서하시지 않겠다고 그 당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사울이 왕권이 강화되자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울은 곧 군사들을 소집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보병만 20만 명입니다. 마병과 전차대수를 합치면 25만은 되는 대군입니다. 경우 600명을 데리고 두려워 떨던 때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아말렉이 벌벌 떨게 되었습니다. 싸움은 해보나마나였습니다. 아말렉은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이스라엘에게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군대가 이렇게 강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울이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릅니다. 그의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그의 이름이 온 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이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바늘 구멍 같은 틈만 있어도 뚫고 들어오는 존재입니다. 한 번 교만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면 그 구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승리한 그 전쟁터에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사울이 세웠습니다. 이 모든 승리가 자기 능력에서 왔다는 것을 보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실 거의 모든 나라가 큰 승리를 거두었을 때 승전비를 세웁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누구도 승전비를 세우지 않습니다. 왕이나 유명한 장군을 기리는 기념비를 만들지 않습니다. 오직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비석들입니다. 그 큰 능력과 기적을 행했던 모세의 기념비도 없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했던 여호수아를 기리는 비석이 없습니다. 기적은 모세가 베푼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을 깨뜨려 물을 내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능력으로 가나안을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울이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있습니다. 교만해진 것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교만하면 결국 모든 은혜를 빼앗기고 맙니다. 사울은 이때부터 은혜를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 번째 탐심이 넘치면 은혜를 잃어버립니다. 사울에게 아말렉을 치라고 하신 것은 징벌적 차원입니다. 그들의 영토를 빼앗는 것도 물자를 탈취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하나님께 대항했던 아말렉을 심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동물까지도 진멸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 죽였습니다.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들, 기름진 것들, 어린 양들은 모두 남겼습니다. 그 좋은 것들을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탐심입니다. 탐심은 10계명 가운데 마지막 계명입니다. 하나님이 탐심을 경계하게 하심으로 10계명의 결론을 지으신 것입니다. 탐심은 다른 사람의 것을 취하고 싶은 통제되지 않는 욕망을 가리킵니다. 탐심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것도 탐심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손에 넣을 때까지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것은 탐심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만약 무엇인가가 갖고 싶어 편하게 잠도 자지 못한다면 그것은 탐심입니다. 사울은 전쟁을 치르면서 평원에 널려져 있는 양떼, 소떼 생각만 했습니다. 사람은 물론 동물까지도 진멸하라는 하나님 말씀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울의 마음 속에서 자라나고 그 마음을 가득 채운 탐심이 은혜의 자리를 빼앗고 만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는 유한한 것에 집착할 때 은혜를 잃어버립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태도를 보고는 얼마나 근심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을 지적하자 사울은 온갖 이유를 다 갖다 대었습니다. 좋은 동물들을 다 끌고 온 첫 번째 이유는 백성들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백성들이 원해서 그렇게 했다고 둘러댔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가장 좋은 동물들도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핑계라는 것은 사울 주변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사실 숨겨진 이유는 다른데 있었습니다. 아직 왕권이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에게 아직도 사울이 왕이라는 생각이 뿌리지 내리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왕을 세운 첫 세대가 지나가야 사울의 왕권은 견고하게 설 것입니다. 사울은 백성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의 인정에 목말라 했습니다. 사울은 왕의 직위에 엄청난 집착을 보였습니다. 백성들의 인기에 목말라 했습니다. 한 번 올라간 자리에서 내려 올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을 왕이 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왕에서 내려오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백성들이 왕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손이 비어 있는 자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 하나님은 무엇인가를 주시려고 하는데 우리 손이 모두 채워져 있다면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손에 짐을 가득 든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에는 손잡이가 하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면 손에 든 것을 반드시 내려 놓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두 손에 무엇인가를 든 채로는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내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고집도 집착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