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소개하는 장면들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부르기 위해서 이름을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 사건들은 성경에만 나오는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사건들입니다. 문제가 없는 삶은 없습니다. 파도가 없는 바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잔잔했던 바다에 갑자기 돌풍이 불어올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 순간마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다릅니다. 첫 번째는 ‘여호와 이레’라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다’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현장에 하나님은 이미 양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필요를 미리 아시고 준비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닛시’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나의 깃발, 나의 승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골리앗과 같은 거인이 버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지는 것 같습니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살롬’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평화’라는 뜻입니다. 걱정 근심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때로는 세상을 사는 것이 두렵고 무섭기도 합니다. 지난 주 수요일 세계보건기구인 WHO는 코로라 바이러스의 세계적인 대유행(팬더믹)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온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떨리는 우리 마음을 진정시키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가 ‘여호와 삼마’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견고한 성을 세웠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위험한 자리에 있다 해도 하나님이 거기 계시면 누구도 흔들 자가 없습니다. 다섯 번째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라파’입니다. 이것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먹지 못하는 광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몸의 못고칠 질병을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녹아 내리는 마음의 아픔을 회복시켜 주실 분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섯 번째가 ‘엘 샤다이’입니다. 이 뜻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성경 전체에 ‘엘 샤다이’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말이 48번 나옵니다. 그런데 고난과 고통의 책인 욥기에 무려 31번씩이나 나옵니다. 결국 인생의 고난과 고통을 체험하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의 세계적인 공포와 불안 속에서도 하나님이 전능한 분이라는 것을 믿으면 두 가지 은혜가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첫 번째 작은 내 뜻을 내려놓고 원대한 하나님을 뜻을 쫓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기 전의 과정은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를 보여줍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지 10여년이 지난 후 자식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솟아올랐습니다. 고민 끝에 그가 세우려고 했던 후계자가 엘리에셀입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가나안에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엘리에셀이라는 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는 점점 들어갑니다. 85세, 75세가 되었습니다. 이미 경수는 끊어졌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조바심이 낳던 사라가 세운 계획이 바로 하갈을 첩으로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갈은 아이를 임신하자 마자 사라와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는 사라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게 됩니다. 아브라함 집안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이 다시 나타납니다. 하갈을 위로하시고 아브라함 집으로 다시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드디어 아브라함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가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일단 집 안에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리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온통 관심이 아이에게로만 갑니다. 그 기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 이스마엘이 아니었습니다. 사라에게서 태어나는 약속의 자녀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이 계속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이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이스마엘이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오. 애굽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어머니 하갈이 애굽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4천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맙니다. 이스마엘은 인간의 뜻으로 낳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이스마엘만 보고 있었다면 지금의 아브라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나안에 세울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도 99세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사라 나이도 89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 나이에 무슨 아이를 낳습니까? 그래서 꿈을 접었습니다. 이스마엘이 하나님이 뜻이 아닌 것은 압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동안에 아이는 쑥쑥 자라갑니다. 앉고, 일어서고, 뛰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 아이가 아브라함의 모든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저 이스마엘이나 잘 키우는 것이 아브라함의 인생 목표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한 번 세우신 꿈을 포기하실 분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완전히 포기한 99세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그리고 곧 사라에게 아이가 생깁니다. 이삭은 이렇게 태어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더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를 낳는 것입니다. 그 자녀를 통해 가나안을 믿음으로 정복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을 믿으면 나의 작은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큰 뜻을 쫓는 은혜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전능한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영국의 헨리 8세는 16세기 영국의 절대적 군주였습니다. 대적들을 가차 없이 사형을 시켰던 사람입니다.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든 사람입니다. 스페인 공주인 캐서린과 결혼을 했지만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메리라는 딸 하나만을 두었습니다. 그는 곧 캐서린과 이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궁녀 출신인 앤 불린과 결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로마 교황청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헨리 8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교황청에서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영국에 새로운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성공회입니다. 영국의 국교입니다. 헨리 8세는 이제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자기 뜻대로 모든 법을 바꿨습니다. 그는 케서린과 이혼을 하고 앤 불린과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원하던 아들은 낳지를 못했습니다. 또 이혼을 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세 번째 부인에게서 드디어 아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름이 제임스입니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약한 아들이었습니다. 또 다시 결혼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무려 6명의 아내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들은 얻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왕비를 둘씩이나 사형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절대 여자가 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공주에게 왕권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던 것입니다. 하지만 병약한 제임스는 왕이 되자 마자 죽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공주 메리가 영국의 왕이 되고 맙니다. 이 메리가 바로 ‘Bloody Mary’라고 불리는 ‘피의 여왕’입니다. 아버지에게 원한이 많았던 메리는 거침없이 칼을 휘두릅니다. 아버지를 따르는 수많은 신하들을 참수합니다. 

  아무리 사람을 바꾸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카톨릭을 떠나 아무리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이름을 바꾸어 주느냐입니다. 하나님이 바꾸시면 반드시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가 되고, 사라는 만인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지금 세계 인구 70억 가운데 절반인 35억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그들의 조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들의 허리에서 수많은 나라가 나왔습니다. 그들의 신앙을 따르는 믿음의 후예들이 구름 떼처럼 나왔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운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이름을 바꾼다고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을 바꾸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은혜를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