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마요 클리닉의 찰스 마요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염려는 순환기와 심장에 그리고 모든 신경계통에 영향을 준다. 나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죽은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했다. 그러나 걱정을 많이 해서 죽은 사람은 수도 없이 만났다염려는 병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건강을 위해서 얼마나 신경을 쓰며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아무리 급한 일도 차후로 미룹니다. 오래 전에 준비한 여행이라도 기꺼이 취소를 합니다. 심지어 직장이나 비지니스도 잠시 멈추게 됩니다. 겅강을 위해서라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시간과 정성, 물질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염려는 이 모든 노력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염려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구조물을 가리켜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부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등이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BC 2,500년 경에 세워진 이집트의 피라미드입니다. 다른 구조물들도 모두 기원전 200-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구조물들 대부분은 원형 자체가 지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진으로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강의 범람으로 와해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피라미드가 유일합니다. 피라미드는 4-5천년을 버텨왔습니다. 그 비밀이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사막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피라미드가 사막이 아닌 다른 지역에 세워졌다면 지금까지 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사막이 다른 모든 곳과 구별되는 조건은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진이나 화재 같은 외부의 충격이 없어도 세상의 건축물들은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그 이유는 물 때문입니다. 모세관 현상으로 물은 아주 세미한 틈만 있어도 스며드는 법입니다. 결국 물이 들어가면 재질에 따라 썩기도 하고, 녹기도 하고 산화되기도 합니다. 결국은 건물은 점점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건축물의 최대의 적은 물, 습기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 장소 중 반드시 들리는 곳 중에 하나가 쿰란이라는 지역입니다. 사해와 맞닿은 유대광야 끝 자락에 있는 쿰란은 성경 사본이 발견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쿰란은 사해 북쪽에 있는 지역의 한 이름이지만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경사본이 발견된 것으로 지역 이름을 뛰어넘어서 사해 사본과 연결된 중요한 고고학적 명칭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안에는 광야에서 고립된 집단 생활을 자처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에세네파라고 부릅니다. BC 130년 경부터 AD 70년 사이에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대해 철저하지 못함을 비판하며 더 철저히 율법을 지키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집단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되었습니다. 철저하게 세속과 단절이 되어야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에세네파가 율법의 완전한 요구를 이루기 위해 세속과 단절하고 집단 촌락을 이루어 살았던 곳이 바로 쿰란지역입니다. 이 쿰란은 여리고 남쪽 8마일, 사해의 서북으로 1마일 지점에 있는 광야지역입니다. 지금도 이 지역에 가면 그들이 집단 생활을 했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2천 명이 넘게 생활할 수 있는 여러 개의 우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집단 거주지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서 1,100기 정도의 무덤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거주지 중앙에는 대규모의 모임을 할 수 있는 장소와 대형 식당 그리고 많은 식기류가 저장되어 있는 방, 작업장 등 다양한 유물들이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쿰란 공동체는 자신들만이 선민이라고 믿었으며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철저한 금욕주의를 실천했다. 욕심을 제거하기 위해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공동 소유제를 끝까지 유지하였습니다. 유대교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 쿰란 공동체는 BC 31년에 있었던 큰 화재와 지진으로 파괴되어서 흩어져 살고 있다가 BC 4년경 다시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건설하고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AD 68년에 로마의 장군이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킬 때 쿰란 공동체도 파괴된 것입니다.

1947년 어느 날 베드윈족의 양치기 소년인 모함메드 엘 하메드가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헤매다가 언덕 꼭대기에 있는 동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소년은 동굴 근처까지 올라가서 돌 하나를 동굴 안으로 던져 보았습니다. 양이 그곳에 있다면 돌이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양의 우는 소리 대신에 항아리가 깨지가 소리가 났습니다. 소년은 굴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동굴 안에는 질그릇 항아리가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소년은 혹시 보물 항아리가 아닐까 생각하고는 손을 집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양피지로 만든 두루마리가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닙니까? 고대 히브리어가 빼곡히 적혀 있는 이 두루마리는 성경 이사야 등이 적힌 구약의 필사본이었습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이 필사본이 골동품 상인에게 넘겨지고 결국은 고대 근동 성서학자인 트레버에게 전달되면서 무려 필사한지 2천년이 지난 사해 사본이 세상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정부와 고고학자들은 이 굴을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200개의 굴들을 정밀 조사를 하게 됩니다. 그 중 11개의 굴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필사본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850여 종류의 문서가 발견이 되는데 이것을 통틀어서 ‘쿰란 문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쿰란 공동체의 중요한 정신 중에 하나는 하나님 말씀을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쿰란 공동체가 살았던 유적지에서 발견된 것 중에 가장 큰 방은 공동 식당입니다. 두 번째로 큰 방에는 여러 책상들과 의자들만 놓여 있는데 그 방에서 양피지와 잉크가 같이 발굴되었습니다. 그 방이 바로 성경을 필사하는 방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필사하는 사람들은 매일 하는 일이 그곳에서 살면서 매일 성경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매일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쿰란 공동체는 성경을 필사해서 후손들에게 넘겨주는 것을 매일의 사명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AD 68년 로마 군대가 이스라엘 전 국토를 초토화 시키고 쿰란 공동체까지 밀어닥치자 지금까지 기록한 성경 필사본들을 항아리에 담아 동굴에 숨겨 놓았던 것입니다. 이 동굴들은 그들의 집단 거주지에서 불과 3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후손에게 전수하겠다는 그들의 간절한 마음과 소원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필사본들이 2천년이 지났지만 썩거나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보전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도 바로 물이 없는 메마른 광야였던 것입니다. 사해 지역은 아주 건조하고 비가 없는 지역입니다. 온도가 일년 내내 일정합니다. 얼마 전 사해 문서를 보관했던 동굴 안에 약간의 장비를 넣어두고 실험을 했습니다. 동굴 안에 습도나 온도에 변화가 있는지를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 습도나 온도가 일정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 멸망이라는 격변기에 자신들은 죽어가도 후손들에게 성경만은 남겨주려고 했던 에세네인들을 쿰란 지역으로 보내셨고 그 지역에 있는 굴들에 그 성경 사본들을 보관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습도나 온도까지 알아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간절한 소원대로 2천년이 지난 후 믿음의 후손들에게 엄청난 영적 보물을 안겨주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염려가 바로 습기 역할을 합니다. 질병이나 사고 같은 외부적 충격이 없는 데도 공연히 내부로부터 우리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염려요 걱정인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를 서서히 무너뜨려서 목숨이 다하기도 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적들로 걱정, 의심, 두려움, 절망이 있다걱정은 혼자 있지 않고 떼거리를 몰고 다니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습기는 곰팡이나 박테리아를 불러들입니다. 그래서 서서히 썩게 만들고 무너지게 합니다. 염려는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 실제보다 수적으로 많습니다. 걱정이 생기면 두려움도 따라옵니다. 절망감이 생겨서 밤잠도 잘 자지 못합니다. 둘째 염려는 실제보다 커 보입니다. 염려는 작은 것이라도 큰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셋째, 염려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염려는 흔들의자 같은 것입니다.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항상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넷째 염려는 할 수록 더 하게 됩니다. 염려는 먹이를 줄수록 자라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처음에 습기 정도입니다.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점점 커지고 많아집니다. 점점 자라납니다. 결국은 우리를 무너뜨리고 맙니다. 내 인생 구조에물에 엽려인 습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영적인 방수를 빈틈없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